제주 돌담의 어깨 겯기
제주 돌담의 어깨 겯기
  • 뉴제주일보
  • 승인 2017.02.26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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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종태 시인 / 다층 편집주간

[제주일보] 제주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풍광은 참으로 다양하다.

봉긋봉긋 솟아 있는 오름의 능선에서부터, 겨울에도 초록을 잃지 않는 들판, 눈이 시릴 만치 푸른 바다 물빛, 들판을 뛰어다니는 조랑말의 건강함, 본토와는 사뭇 다른 언어에 이르기까지 제주의 매력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 중에서도 제주 현무암도 빼놓을 수 없는 매력 중의 매력이다.

현무암은 화산의 폭발로 인해 분출한 마그마가 지표 가까이에서 빠르게 굳어져 형성된 암석인데, 표면에 나 있는 크고 작은 구멍은 화산이 분출할 때 가스 성분이 빠져나간 자리라고 한다. 다공질인 까닭에 탁월한 정수 필터의 구실을 해서, 깨끗한 지하수를 제공하는 원천이 되기도 하고, 바람 많은 제주의 토양에 습기를 유지해주는 구실을 하기도 한다. 그 구멍으로 바람도 물도 거기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도 드나든다.

생김새부터 전형적인 촌부(村夫)를 떠올리게 한다. 그 거무튀튀한 색깔은 따가운 햇살 아래 고된 노동을 마치고 석양을 등에 지고 집으로 향하는 우리들의 이웃 김씨이거나 이씨 아저씨의 얼굴을 떠올리게 한다.

흡사 세상 모든 빛을 한데 머금은 양 묵직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숭숭 뚫려 있는 크고 작은 구멍들은 삶의 여유를 드러내는 듯하다. 바늘 구멍 하나 없는 오석(烏石)이나 먹돌에서는 느낄 수 없는 여유로움, 완벽을 욕심내기보다 빈 구석이 있는, 인간적인 허술함을 보는 듯하다.

뿐만 아니라 제주 돌담은 그 효용 면에서도 단연 탁월하다. 크고 작은 생활 용구부터, 돌하르방으로 대표되는 석조의 재료, 집을 짓는 건축 자재로, 네 땅과 내 땅의 경계를 가르는 밭담, 조상의 유택(幽宅)을 우마(牛馬)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산담,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한 잣담에 이르기까지 제주인들에게 현무암은 불가분리의 환경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제주 현무암으로 만든 맷돌은 그 성능이 매우 뛰어나서 내로라하는 부잣집이 아니면 쓸 수 없는 고급이었다고 전하기도 한다.

하지만 과거에는 이러한 돌을 다루는 장인들을 ‘돌챙이’라 부르며 천시하던 시절이 있었다. ‘돌’과 접미사인 ‘-쟁이’로 형성되었을 이 호칭은 가장 험한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낮잡아 이르던 말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진짜 돌을 잘 다루는 장인을 만나기가 쉽지가 않다. 예전에는 망치질을 거의 하지 않고도 아름답게 밭담을 쌓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그렇게 쌓은 담은 한 군데를 붙잡고 흔들면 좌우로 10여 m가 동시에 흔들리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만큼 잘 쌓았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이처럼 잘 쌓은 돌담은 서로 어깨를 겯고 있어서 아무리 강한 바람에도 무너지지 않는다. 스크럼을 짜고 시위하는 듯한 포즈로 아무리 강한 태풍에도 흔들릴망정 쓰러지지 않는 강인함이 있다. 실제로 태풍이 불 때, 블록으로 쌓은 담장은 와르르 무너져 내리지만 돌로 쌓은 담장은 누가 건드리지 않는 한 바람에 무너지지 않는다. 돌과 돌 사이 바람에게 드나들 수 있는 통로를 내어준 까닭일 것이다.

이렇게 쉽사리 무너지지 않은 모습은 제주도민들의 단합된 힘을 표상하는 듯하다. 바람 많은 섬에 살면서, 역사의 태풍 앞에서도 서로의 어깨를 겯고 버팅겨온 힘이 바로 제주 현무암을 닮은 것이 아닐까.

오늘도 좌우로 늘어선 돌담을 사열하며 올레길을 더듬어 집으로 간다.

제주를 제주다움으로 가꿀 수 있는 돌담을 건축법 규정에 포함시켜 제주의 정취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생각하면서 그 길을 걷다보면 바람의 길을 드나드는 구멍에서 세상의 소식이 들려온다.

그 구멍을 통과하여 멀리서 봄이 오는 모양이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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