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은 ‘영어만큼’ 중요하고 ‘영어보다’ 효과적이다
연극은 ‘영어만큼’ 중요하고 ‘영어보다’ 효과적이다
  • 뉴제주일보
  • 승인 2017.02.23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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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자. 세이레어린이극장 대표

[제주일보] 내 직업은 연극인이다. 아니다, 돈 버는 일로 연극예술강사를 하고 있으니 예술강사라고 해야 맞겠다. 10개월 계약직, 그것도 해마다 계약해야 하는 뜨내기강사다. 그래도 10년 넘게 예술강사를 해오는 건 단지 돈을 벌기 위해서는 아니다. 25년 넘게 하던 학원을 그만두고 예술강사에 전념하게 된 건, 아이들에게 연극을 가르치는 일이 그만큼 중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연극이 아이들 교육에 꼭 필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초등학교에서 연극이란 학예회 정도로 생각했던 분들에게는 다소 의외일지 모르지만 초등학교 기초과목에 연극이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성적이 최고인 지금의 학교교육에서 다소 뜬금없는 얘기로 들리지도 모르겠다. 10개월의 뜨내기 계약직 강사지만 연극교육이 특히 요즘 같은 시국에 꼭 필요한 교육이라는 것을 말씀드리려고 한다.

먼저 연극은 배려와 협동을 배우는 교육이다. 연극 한 편을 올리려면 구성원들의 배려와 협동이 없으면 좋은 작품을 올릴 수가 없다. 제작과정도 힘들고 아무리 실력이 없음을 감추려 해도 다 드러난다. 그게 연극이다. 아무리 뛰어난 배우 한 둘이 있다 해도 나머지 몇 사람이 믿고 받쳐주지 않으면 다 소용없다. 물론 연극뿐이 아니고 공연예술이 다 그렇다. 그렇기에 구성원들의 배려와 협동이 없으면 힘들다는 것이다. 연극은 최소 두 명 이상이 모여 극을 만들어가는 것이 기본이며, 이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서로에 대해 어떻게 배려해야 하는지, 어떻게 협동해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다. 요즘 아이들 너무 똑똑하다. 어떤 분야는 인터넷이나 컴퓨터를 만지는 일에는 우리가 따라갈 수가 없을 정도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똑똑하고 경쟁력이 우수하지만 사람 사이의 협력, 배려라는 점에서 보면 가히 절망적이다. 학교 폭력, 왕따 현상은 단지 한 사례일 뿐이다.

둘째 연극교육은 인문학적 상상력과 인간을 더 잘 이해하도록 도와준다. 요즘은 과학의 발달로 살기 편해지고 못하는 게 없을 정도지만 단순히 과학기술에만 의존해서는 의미 있는 혁신을 할 수 없으며 무엇보다도 인간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미래는 인공지능시대라고 한다. 인공지능으로 다 할 수 있지만 인간만이 예술의 원천인 감성을 가지고 있다. 인공지능은 감성을 흉내는 낼 수 있어도 진정한 감성을 가질 수 없다. 그거다. 우리가 교육에 있어서, 놓치지 말고 가르쳐야 할 것은 인간의 순수한 감성이다. 그런 면에서도 연극교육은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된다. 연극 공연 한 편을 준비하기 위해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대본을 여러 차례 읽게 되며, 이 과정에서 인문학적 상상력과 인간을 더 잘 이해하게 된다. 그동안 연극교육을 해오면서 확인한 결과, 아이들의 풍부한 감수성과 상상력을 확장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연극은 아이들의 다양한 취향을 자극하고, 자신이 무엇에 관심이 있고 잘하는 지를 발견하는 데 도움을 준다. 배우 외에도 미술이나 디자인에 관심이 있으면 무대 디자인을, 패션 쪽에 관심이 있으면 의상을, 기획에 관심이 있으면 연출이나 마케팅을, 음악에 관심이 있으면 음향을, 글쓰기에 관심이 있다면 대본을 맡으면 된다. 학교를 떠난 청소년을 지도하면서 가정에서도 인정을 못 받고 거칠기만 했던 아이가 연극 수업으로 그 고비를 넘긴 사례를 많이 봐왔다. 연극교육을 통해 무조건 부정적이기만 하던 그 아이가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고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부모나 친구를 이해하는 과정과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 심사숙고하는 모습을 봤을 때 역시 연극의 영향이 얼마나 지대한 지를 다시 느꼈다.

그런데 우린 많은 시간과 관심, 엄청난 돈을 아이들 교육, 특히 영어교육에 쏟아 붓고 있다. 물론 영어는 중요한 도구다. 하지만 한국말 잘한다고 소통 능력이 반드시 높지 않듯 영어를 잘한다고 글로벌 시대에 소통을 잘하는 것도 아니다. 미래의 인재는 글로벌 사회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고, 공감하며, 협조하고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 영어 잘하는 사람보다 더 인정을 받을 것이다. 이러한 능력 개발은 연극이 훌륭한 교육 수단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연극은 ‘영어만큼’ 중요하고 ‘영어보다’ 효과적이다. 그런데 요즘 예술강사들이 설 자리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아이들이 문화예술교육 받을 기회도 줄어든다는 말이다. 올해는 위탁기관도 바뀌는 바람에 이래저래 번거로운 일까지 생겨 강사들의 반발로 많다. 문화예술교육이 정상화되려면 더 시간이 필요한지 모르겠다. 다만 이런 파행으로 누구든 피해가 없기를 바랄 뿐이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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