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백리의 삶 (2)
청백리의 삶 (2)
  • 김종배 상임 논설고문
  • 승인 2015.12.27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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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만의 청빈한 생활은 제주도지사 시절에도 변함이 없었다. 최승만이 거의 강제하다시피 제주도지사로 발령된 것은 1951년 8월4일이었다. 이기붕 국방장관을 만난 최승만은 다시 세 가지 이유를 들어 거절했지만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제주에는 피난민들로 넘쳐났고 구호물자를 둘러싼 부정부패가 횡행했다. 최 지사는 도정방침을 ‘공명정대 청렴결백 민폐일소’에 두고 부정부패 척결에 나섰다.

그때 얻은 최 지사의 별명은 ‘벤또 지사’였다. 벤또 지사는 그의 강직한 성품을 보여주는 일화 가운데 하나이다. 그는 초도순시 중에 신임 도지사를 환영한다고 주민들과 학생들을 동원해서 일주도로변에 세워놓은 것을 보고 불같이 화를 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읍.면에서 마련한 점심은 당시로선 구경하기 힘든 것이었다. 점심은 요기만 하면 되는 것이지 음식을 낭비할 필요가 있느냐고 야단쳤다.

일선기관들의 관행은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최 지사는 그때부터 간단히 먹을 수 있는 토스트를 만들어 도시락에 넣고 다녔다. 아무 때 아무 곳에서나 먹을 수 있고, 냄새도 나지 않아 먹기 좋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는 도시락을 길섶에서 먹은 뒤 순시에 나서곤 했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벤또 지사였다.

그의 강직한 성품은 일 처리에서도 묻어났다. 임시청사로 사용하고 있는 관덕정은 공간이 좁아 직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기가 쉬웠다. 어느 날 낮술로 불콰해진 얼굴로 책상에 엎드려 졸고 있는 공무원들이 눈에 띄었다. 모두 파면 조치했다. 주위에서는 업무를 보다보면 주민들이 권하는 술을 거절하지 못해 그런 것이니 경징계로 넘어가기를 바랐지만 최 지사는 완강했다. 또 사소한 행정사무를 외부에 알렸다는 이유로 아끼던 비서조차 해임할 만큼 주변관리에도 예외를 두지 않았다.

최 지사의 청렴결백한 성품은 재임 중에 치른 넷째 딸 결혼식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6.25 때에 부인과 세 딸이 납북되어 넷째 딸만을 두고 있었다. 딸을 박순천 전 국회의원의 큰아들에게 결혼시켰지만 아무도 모르게 혼사를 치렀다. 직원들에게는 서울 출장간다면서 결혼식을 치르고 돌아온 후에야 소문이 조용히 돌았을 정도였다.

그의 사임도 제주사회에 신선한 충격이었다. 도지사 대부분이 타의에 의해 경질됐지만 최 지사의 경우는 스스로 물러났기 때문이다. 최 지사는 재임 만 2년이 되는 1953년 8월 정전(停戰)이 되고 피난민 구호업무가 정착되기 시작하자 사임을 생각했다. 자신의 천직이라고 여긴 학교로 다시 돌아가고자 했다.

최 지사는 이임식에서 “아무런 공적없이 떠나게 돼 도민들에게 송구스러울 뿐”이라는 말로 마지막까지 겸손한 자세를 잃지 않았다. 그는 후임 도지사로, 나중 최장수 도지사(5년7개월 재임)로 기록된 길성운 총무국장을 추천하고 물러났다. 퇴임 후에는 이화여자대학교 교수와 부총장, 인하대학교 학장 등을 지낼 만큼 중앙 학계에서 왕성하게 활동했다.

1990년대 초 취재차 방문했던 서울 이태원동 그의 집은 방 세 칸이 전부였지만 빈한(貧寒)하기 그지 없었다. 그는 이미 1984년에 작고한 상태였다.

두 차례에 걸쳐 최승만 전 지사의 청렴한 삶을 재조명했던 것은 역대 제주도지사 가운데서도 사표(師表)가 될 인물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

그동안 제주도는 원희룡 도지사까지 37대의 제주도지사를 거치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몇몇 도지사를 제외하면 도민들로부터 진실한 존경을 받고 있는 도백을 두지 못하고 있다. 특히 제주출신 도지사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사심없는 도정과 청렴한 자기관리로 공직사회를 일벌백계로 다스린 도백을 보기가 쉽지 않았다. 민선 지사가 취임한 후에는 더더욱 어려워졌다. 선거공신과 당파에 휘둘리는 모습들을 쉬 볼 수 있었다. 모든 것을 내려놓지 못한 과욕과 잘못된 주변관리 때문이다. 내려놓으면 가볍다는 진리를 알고 있지만 가슴 속에 깊이 담지 못해서이다. 청렴은 지도자의 가장 기본이 되는 덕목(德目)이다.

김종배 상임 논설고문  jongbae10@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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