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즐거웠던 대수산봉 내려와 이름만큼 평온한 '온평리'로
눈이 즐거웠던 대수산봉 내려와 이름만큼 평온한 '온평리'로
  • 뉴제주일보
  • 승인 2017.02.20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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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집의 올레이야기-7. 올레 제2코스(광치기~온평포구) -대수산봉~온평포구(6.4㎞)
제주 올레 2코스에 있는 대수산봉 정상을 내려와 온평리에 있는 혼인지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무밭을 두른 돌담들을 만나게 된다. 밭을 일구다 나온 많은 돌들을 모아 쌓은 돌담의 선이 무척이나 아름답다.

[제주일보] # 대수산봉에서 내려오는 길

전에는 올레길이 오름 동쪽 주차장에서 올라와 능선을 한 바퀴 돌고 남쪽으로 내리는 코스였는데, 지금은 정상에 올랐다가 산불감시초소 오른쪽으로 내려가는 길로 바뀌었다.

따라서 오름 능선을 돌아보고 가려면 감시초소에서 동쪽으로 가며 분화구를 살피고, 동쪽에 새로 만든 전망대에서 주변 경관을 즐기며 쉬고 가면 좋다. 이곳은 성산일출봉으로 떠오르는 해를 찍는 몇 안 되는 포토존이다.

내릴 때는 동남쪽 길을 따라 가서 오른쪽 공동묘지를 가로 질러 올레길과 만나든지 그게 자신 없으면, 다시 감시초소로 돌아가 올레길을 따라 내려간다. 내리는 초입에 ‘여기서부터는 ○○커피 박물관 사유지’여서 금연지역이며, 쓰레기 무단 투기를 금한다는 글을 붙여 놓았다. 입구에서 잠시 소나무 숲이고 다음에 삼나무 숲이 길게 이어져 편하게 걸을 수 있다. 어떻든 사유지를 걸을 때는 감사의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

숲을 벗어나면 키 작은 소나무들이 맞아준다. 모처럼 햇볕이 따스하게 느껴지고 파란 하늘 위로 구름이 한가롭다. 사이사이에 동그랗게 외담을 두른 작은 무덤들이 말을 걸 태세다. 이럴 때는 모든 잡념을 내려놓고 멍 때리며(‘아무 생각도 없이 멍해지다’의 신조어) 걸어볼 일이다. 그렇게 한참 걷다보면 들볶이는 삶에 치어 조금은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들이 모르는 사이에 제자리로 돌아온다.

개 짖는 소리에 정신을 차리니 밭을 두른 돌담이 다시 말을 걸어온다. 이곳은 주로 무를 생산하는 지역인데, 의외로 브로콜리 따는 농부들이 있어 잠시 바라보다 ‘수고헙서!’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섰다. 밭을 일구다 나온 많은 돌들을 모아 쌓은 돌담의 선이 구불구불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더욱이 무밭의 초록빛과 겨울 감자밭의 검은빛이 모자이크를 이루며, 겹겹이 둘러진 모습은 나무의 초록과 파란 하늘의 흰 구름이 한데 어우러져 한 폭의 수채화가 된다.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풀 아래 웃음 짓는 샘물같이/ 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 길 위에/ 오늘 하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 새악시 볼에 떠오는 부끄럼같이/ 시의 가슴에 살포시 젖는 물결같이/ 보드레한 에메랄드 얇게 흐르는/ 실비단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 -김영랑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

 

혼인지 전경

# 혼인지에서 잠시 머물다

그럭저럭 여유를 즐기며 걷다 보니, 어느덧 혼인지에 이르렀다. ‘혼례관’ 옆으로 들어가 전통음식점을 지나면 오른쪽으로 ‘신방굴’에 이른다. 고․양․부 삼신인과 벽랑국 삼공주가 합방을 했다는 신혼방이다. 답사할 때면 꼭 들어가서 확인(?)을 해보려는 사람들이 있어 여러 가지로 우스갯소리를 하는데, ‘신화는 신화로, 전설은 전설로 이해하라’는 말로 끝맺곤 한다.

오늘 ‘삼신인의 비인 삼공주의 위패를 봉안하고 매년 6월 10일에 제를 올린다’는 추원사(追遠祠)는 빼기로 하고, 나무 우거진 연못 주위를 돌아 나왔다. 아직 겨울이라 조금은 을씨년스럽지만 1년에 한 번씩은 다녀가는 곳이라 개의치 않고 입구에 새겨놓은 점필재 김종직(金宗直)의 ‘탁라가’를 다시 읽어본다.

‘먼 옛날 신인이 세 곳에 도읍하셔/ 해 돋는 물가에서 배필을 맞으셨다네/ 그 시절 삼성이 혼인했던 일은/ 전해 내려오는 주진의 일과 같네.’

# 제2공항 예정지의 한 곳 온평리

혼인지 사무실이 있는 곳에서 곧바로 나와 주차장을 가로질러 골목길로 접어든다. 과수원이 이어지며 몇 곳에 올레꾼들을 겨냥한 식당과 카페가 들어섰다. 그런 다음 일주도로에 들어섰을 때다. 여기저기 매달아놓은 현수막의 글귀가 가슴을 친다.

‘우리 마을 두 동강내는 제2공항 결사반대’, ‘생존권 위협하는 제2공항 결사반대.’

개발과 보존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개발을 택했을 때, 다른 쪽은 반드시 상처를 입게 마련이다. 막무가내로 밀어붙여도 별 저항 없이 수용해야만 했던 군정시대도 아니고, 지금은 머리를 맞대고 슬기롭게 대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얼렁뚱땅 밀어붙여 대충 넘어가려 하다 마을 사람들에게 상처만 남기고 아직도 시원히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강정 해군기지의 경우와 같은 일을 되풀이해서야 쓰겠는가?

꼭 필요하니 어쩔 수 없지 않느냐며 ‘저 사람들 왜 저래, 땅값도 오르고 좋지’ 하는 식으로 은근히 바라는 다른 마을 사람들은 잘 모른다. 순진한 농어민들이 머리에 왜 띠를 두르고 나서는지. 또 그 심정은 어떠한지.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일이다.

 

# 마을을 지나 2코스 종점까지

마을에 들어서면 온평리는 이름 그대로 평온한 느낌이 든다. 송악을 두른 울타리 너머로 과수원이 있고, 그 뒤로 상록활엽수가 그득하다. 동백나무를 비롯해서 후박나무, 참식나무, 녹나무, 게다가 삼나무와 팽나무까지….

그 중 한 집은 입구에 살아있는 나무문을 잘 다듬고 옆에 탑을 세워 장식을 해 놓았다. 울타리를 따라 수선화와 문주란을 심었는데, 때맞춰 수선화 꽃이 한창이다.

온평리의 옛 이름은 ‘열운이’로 혼인지 전설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연혼포(延婚浦)’ 역시 한자의 뜻 그대로 ‘(색시를) 맞이하여 결혼한 개 또는 마을’이란 뜻이다.(오창명, 제주도 오름과 마을 이름, 1998)

해안도로에 이르렀을 때 일부 복원해 놓은 환해장성과 만난다. 환해장성에 대해서 일부 그릇된 해석이 있으나, 다음 기회에 언급하려 한다. 더러 무너진 채 남아 있는 곳에 쌓아놓은 돌탑이 이채롭다. 앞바다에서 해녀들이 물질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드디어 2코스 종점에 도착했다. <계속>

<김창집 본사 객원 大기자>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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