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그루에 뭘 갈꼬?
이 그루에 뭘 갈꼬?
  • 뉴제주일보
  • 승인 2017.02.19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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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호. 시인 / 전 중등교장 / 칼럼니스트

[제주일보] “여보, 이 그루에 뭘 갈면 좋코맛씸(좋을까요)?” 선친비(先親妣)께서는 평생을 농부로 사셨다. 보리그루에 조를 갈거나, 고구마를 심으셨다. 옛부터 주로 이런 농사를 지으셨다. 양파씨앗이 재일교포들로부터 들어오면서 마늘을 심을까 양파가 수익이 더 나을까, 서로 의견을 나누시었다. 저녁시간, 여덟남매 아이들은 밥양푼에 둘러앉아 숟가락이 바쁘다. 그러면서도 다음 날 부모를 도와야 하는 어떤 일손의 미션(Mission)이 떨어질까 귀를 곧추 세운다.

박근혜 대통령, 일손이 묶이었다. 일손을 아주 그만두게 될 지, 다시 시작해도 좋다고 할 지…. 탄핵소추의 판결 귀추에 온 나라의 신경이 곤두서있다. 이 마당에 서로 자신이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고 난리들을 펴고 있다. 표(票)는 씨앗처럼 국민이 쥐고 있는데 자신의 밭이 더 거름지다고, 자신의 농사법이 더 수확을 높인다고 법석들이다. 우리나라의 민도(民度)는 쉽게 현혹되지 않을 만큼 높다. ‘말로는 그럴듯하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음(Plausibility)’이 어떤 것인지를 일러주지 않아도 누구나 다 알고 있다.

청와대-국회는 국가라는 수레의 두 바퀴이다. 수레바퀴는 둘레가 똑같아야 한다. 그래야 바르게 간다. 청와대 5년·국회 4년 주기(週期)의 수레는 아무리 곧장 끌어가려 해도 비뚤어진다. ‘대선-총선의 주기를 맞추어 놓지 않는 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영원히 이루어질 수 없다(이동진;오하이오주립대 석좌교수).’ 그런데 예전에 이 주기를 맞추는 개헌을 하겠다고 나섰던 어떤 후보가 있었다. 요즈음 여론의 변화추이에 들떴는가, 그는 그런 말을 해 본 적도 없다는 듯 태연스레 5년 대통령하겠다는 표정이다.

월전(月前), 공영방송에서의 패널토론. 패널리스트들은 각 정당의 국회의원들이었고 그들도 ‘개헌을 하고 대선(大選)을 치르자’고 입을 모았었다. 달포 지나지 않아 그들의 결론은 어떻게 된 셈인지 가닥도 없다. 그들은 말했었다. 70%의 국민들이 개헌을 원하고 있다고. 국민은 70%의 씨앗을 ‘개헌 밭’에 뿌리려는데 30%를 받더라도 대통령만 되면 그만 아니냐는 듯 그 마음이 뚜렷이 보인다. 마치 선택형 문제의 택지(Choices)처럼 표심(票心)의 판단에는 아랑곳 않고 무조건 자기가 정답이라며 찍으라는 식이다.

공론자가 있다는 것(公論者有)은 나라가 원기가 있다는 것(國之元氣也)이다. 공론이 있기는 하나 조정에서 나오다(公論在於朝廷)이면, 그것은 나라가 다스리는 것(則其國治)이다. 공론이 화려한 마을(閭巷)에서 나오다(公論在於閭巷)이면, 그것은 나라가 어지러워지는 것(則其國亂)이다. 만약 위로 조정에서 아래로 민간까지 함께(俱) 공론이 없다(若上下俱無公論)이면, 그것은 나라가 망하는 것(則其國亡)이다(栗谷 李珥 ; 代自參贊仁傑疏에서). 70%의 공론, 대한민국의 원기(元氣)이다. 무시되면 망한다.

“조카네 밭 조가 참 잘 되었네.” 올레 집 할아버지의 말씀에, “오촌님네 조밭이 아주 빽빽하게 잘 되었수다. 우리 밭은 안에 들어가 보면 조밭 그루가 성긴 곳이 많수다. 밭담 밖에선 그게 안 보입니다.” 선친의 대답이었다. 한 올레에 사는 이웃끼리 주고받는 칭찬·겸허의 대화이었다. 또한 선친비(先親妣)께서는 ‘뭘 갈꼬’에 대하여 일단 결정하고 나면, 그 작황이나 수익의 좋고 나쁨에 평생 ‘당신 탓’ 않으셨다.

“여보, ‘내 탓이오’ 살며

이 정국(政局)의 그루에

세론(世論)에 아니 끌려

우리 어떤 씨앗 갈까요?”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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