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범, 그리고 우근민
신구범, 그리고 우근민
  • 정흥남 논설실장
  • 승인 2017.02.16 18:0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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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일보=정흥남 기자]

‘엿같다.’

‘엿’을 사전에서 찾으면 ‘곡식을 엿기름으로 삭힌 뒤 자루에 넣어 짜낸 국물을 고아서 굳힌 음식’ 쯤으로 정의 된다. 우리가 다 아는 앞 뒤 어디를 보아도 ‘맛있는 말’이다. 그런데 이 ‘엿’이 ‘엿’을 배신했다.

실제 일어난 사건이다. 1964년 12월 서울시 전기 중학입시 시험이 치러졌다. 당시 문제 중 하나가 ‘엿기름 대신 넣어서 엿을 만들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다.

정답은 디아스타제(녹말을 분해하는 효소)다. 그런데 ‘무즙’도 답이 된다는 것이 화근(?)이 됐다.

‘무즙’을 선택, 시험에서 떨어진 학생의 학부모들이 이 문제를 법원에 제소했다. 학부모들은 나아가 무로 엿을 만든 뒤 각 교육기관을 찾아 엿을 들이댔다. 아예 솥 째 들고 나와 시위를 벌였다.

“엿 먹어! 이게 무로 쑨 엿이야. 이 엿 한번 먹어봐라! 엿 먹어라!”

이 사건으로 당시 서울시 교육감 등이 사표를 냈으며, 무즙을 답으로 썼다가 떨어진 학생들은 구제됐다. 이 엿 사건이 인구에 회자돼 지금의 의미로 굳어졌다.

신구범·우근민 두 전직 제주도지사의 최근 일련의 행보가 ‘엿’의 의미를 되씹게 만든다.

#부적절한 처신

비슷한 시기에 이뤄진 두 전직 지사의 처신이 연일 구설수다.

신 전 지사는 이달 초 한 강연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전두환, 전두환은 배짱 좋은 사람’, ‘국정농단 사태는 공무원들 책임’, ‘최순실 사태의 원인은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야당’ 등이라고 말했다. 국정난맥이 지금에 이르게 된 게 공직사회와 야권에게도 책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이는 적절한 표현이 아니다.

제 31대 민선 제주도지사인 그는 2014년 6월 당시 제1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로 제주도지사 선거에 출마했던 당사자다.

우 전 지사는 최근 부영그룹 고문을 맡기로 해 구설수다.

부영은 유네스코가 세계 지질공원으로 인증한 중문단지 해안 주상절리대를 코앞에 둔 곳에 대규모 호텔 건설을 추진했다. 또 투자진흥지구 지정으로 막대한 세제혜택을 입었다. 이 모두 우 전 지사 재직 때 이뤄진 것으로, 이 때문에 부영에 대한 특혜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부영의 중문단지 주상절리 호텔건설은 경관사유화 논란과 환경영향평가 절차문제로 건축허가가 반려된 상태다. 우 전지사의 부영 고문수락은 과거 선거를 치르면서 만들어 진 ‘우근민 조직’을 내세워 원희룡 제주도정으로부터 주상절리 호텔신축 허가를 얻어내려는 사전포석과 무관하지 않다는 소문이 벌써 돌고 있다.

1년 뒤 지방선거를 치러야 하는 원 지사는 ‘선거조직’을 갖추는 게 발등의 불이다.

#씁쓸한 건 도민들

신 전 지사는 2년 8개월 전 실시된 제주도지사 선거에 나서 민주당원을 포함해 9만9000명의 넘는 도민들의 지지를 얻었다. 그런 그가 당론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발언을 대놓고 했다. 민주당원을 비롯한 야권 지지층의 느끼는 배신감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공직자 윤리법은 재산등록의무자인 4급 이상 공무원의 경우 퇴직 후 3년간 ‘퇴직 전 5년간 소속부서(고위공직자는 소속기관) 업무와 밀접한 업무관련성이 있는 기업’에 취업하는 것을 제한한다. 여기서 업무관련성은 ‘인가·허가·면허·특허·승인 등에 직접 관계되는 업무’를 의미한다.

그런데 공직자윤리법에도 빠져나갈 수 있는 ‘구멍’이 있다. 2015년 3월 30일 이전 퇴직자에게 취업제한 기간을 퇴직 후 2년으로 하는 ‘단서조항’이 그것이다. 이 때문에 2014년 6월 퇴직한 우 전지사의 부영 고문직 수락이 실정법 위반은 아니다.

위법은 아니지만, 옳은 선택은 더더욱 아니다.

이들 두 전직 지사는 1942년생으로 모두 고희(古稀)를 넘겼다.

옛 성인들은 사람은 나이 들수록 시력은 잃어도 심력(마음의 힘, 통찰력)을 키우고, 혀라는 칼을 뭉툭하게 간수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나이가 들면 용기, 신념보다 지혜가 필요하다. 그렇지 못하면 노추라는 소릴 듣게 된다.

이들에게 묻게 된다. 과연 지금의 행태가 지혜로운가.

한순간이나마 이들을 ‘제주의 원로’로 여겼던 도민들의 기분이 엉망이다.

엿같다.

정흥남 논설실장  jhn@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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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입도민 2017-02-17 10:06:07
표현의 자유가 있는것은 분명히 중요하다 신구범씨든 우근민씨이든 정흥남논설실장이든, 개인이든 언론사이든.
신구범씨이거나 우근민씨는 이제 자연인으로 발언하고 행동하는 것은 그들의 선택인데 신문사 논설실장이 인신공격성으로 그것도 엿같다 란 저질스런 표현을 언론이란 도구를 사용하는것이 오히려 그두사람보다 더 저질스럽게 느껴진다. 제주도민의 기분이 엄망이다라는 근거는 무엇인가? 정흥남논설실장의 기분을 도민의 이름으로 표현한것이 아닌가하는 우려도 생긴다. 제주일보의 발전을 기원하면서 입도민이 표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