黃 권한대행의 ‘가야할 때’는 언제일까
黃 권한대행의 ‘가야할 때’는 언제일까
  • 신정익 기자
  • 승인 2017.02.16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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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일보=신정익 기자] 옛 선비들이 벼슬을 하면서도 늘 가슴에 품었던 경구(驚句)가 있다. ‘지족불욕 지지불태 가이장구(知足不辱 知止不殆 可以長久)’라는 구절이다.

중국의 노자가 쓴 ‘도덕경’ 44장에 나오는 말이다. ‘만족함을 알면 욕됨을 당하지 않고, 그칠 줄을 알면 위태롭지 않아 오래 갈 수 있다’는 뜻이다.

요즘 식으로 풀면 ‘주제를 알고 선을 넘지 말라’ 정도가 된다. 자신이 있을 자리를 제대로 알고, 떠날 때는 미련을 두지 않아야 한다는 얘기다.

시인 이형기는 ‘낙화(洛花)’에서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라고 읊었다.

꽃이 져야 할 때는 주저 없이 뚝 떨어져야 처연한 아름다움이 남는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자리에 연연해 떠나야 때를 놓치면 구차해진다. 마침내는 비굴하게 물러나거나 추하게 쫓겨나는 신세가 된다.

▲요즘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처럼 표정관리가 힘든 인사도 아마 드물 것이다. 대선후보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2위 자리까지 넘나들고 있다.

전대미문의 ‘최순실 게이트’가 수면 위로 떠올라 박 대통령의 탄핵과 하야가 여론으로 뭉쳐지던 지난해 11월만 해도 그는 대통령과 함께 국민들에게 ‘석고대죄’를 해도 모자랄 위치였다.

그런데 대통령의 ‘꼼수’에 말려든 정치권이 어영부영하면서 새 총리를 만들지 못한 상황에서 지난해 12월 9일부터 그는 대통령 권한대행이 돼 화려하게 무대 중심에 섰다.

황 권한대행의 최근 행보를 보면 ‘기름장어’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니다가 대선 가도에서 낙마한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의 얼굴이 자꾸 오버랩된다.

국정을 책임지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사람이 국민들이 궁금해 하는 사안에 대해서는 자신의 생각을 정확하게 밝히지 않고 눈치를 보는 모습이 너무 닮았다.

일각에서는 그에게 ‘신종 기름장어’라는 별칭을 붙이기도 한다.

지난 10일 국회 본회의장에서는 황 권한대행을 출석시켜 대정부질문이 이어졌다. 이날 의원들이 그에게 요구한 것은 단순하고 명쾌했다.

‘Yes or No’을 분명히 밝히라는 것이다. 그는 대선 출마 여부를 묻는 의원들의 질문에 ‘동문서답’으로 일관했다.

이날 그의 답변 모습을 TV로 지켜본 국민들은 답답함을 넘어 짜증을 낼 지경이었다. 왜 항간에서 ‘신종 기름장어’라고 하는지 그대로 보여주고도 남았다.

▲지난해 말부터 우리나라 축산업이 위기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조류인플루엔자(AI)가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나 했더니 이번에는 구제역이다.

이 와중에 황 권한대행의 상황인식과 판단에 상당한 문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나면서 국민들의 걱정이 크다.

지난 9일 구제역이 발생한 사실을 7시간 반이나 지나서야 ‘늑장파악’을 했다. 시간으로만 보면 반나절 이상을 국가 중대사를 놓친 셈이다. 박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과 겹친다.

이날 오전 관계장관회의에서 “백신 접종이 이번 주에 완료되도록 철저하고 신속하게 실시하라”고 지시했다. 그런데 한 시간 뒤 농림축산식품부는 “정부가 보유한 백신 물량으로는 일제 접종이 어려워 긴급 수입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대통령 코스프레’만 할 줄 알았지 국정 수행은 함량미달이라는 박한 평가를 자초하고 있다.

최근 발표되는 여론조사에서 그는 낮지 않은 수준의 호감도를 얻고 있다. 지리멸렬해진 일부 보수세력들이 활로를 찾기 위해 그를 마치 ‘구원투수’라도 되는 양 응원하고 있어서다.

눈여겨볼 점은 출마하지 말라는 응답은 호감도의 두 세배를 넘고 있다는 점이다.

‘패전처리투수’는 추가 실점을 하지 않고 경기를 마무리하는 것이 제 역할이다. 무리하게 승리 욕심을 내다 대량실점이라도 하는 날엔 팀을 슬럼프에 빠지게 한다.

황 권한대행 스스로 자신의 역할이 어디까지인지 자문할 때다.

신정익 기자  chejugod@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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