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거진 상록수, 고개 든 냉이꽃…봄의 길목에 들어선 성산읍
우거진 상록수, 고개 든 냉이꽃…봄의 길목에 들어선 성산읍
  • 뉴제주일보
  • 승인 2017.02.13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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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집의 올레이야기-6. 올레 제2코스(광치기~온평포구) -족지물~대수산봉(4.7㎞)
제주 올레 2코스에 있는 대수산봉 정상에서 바라본 성산읍지역 전경. 성산일출봉과 우도가 한 눈에 들어온다. 표고 137.3m, 둘레 2094m인 대수산봉의 정상에는 조선시대 주요 통신시설인 수산봉수가 있다.

[제주일보] # 족지물에서 철새들을 바라보며

조류인플루엔자(AI)로 인해 올레 2코스 일부 구간이 통제돼, 이 글을 쓰기 위해 다시 찾았을 때는 아예 마을 안으로 돌아 들어갔다.

‘족지물’은 그리 크진 않지만 동네 사람들은 물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휴식처를 제공하고, 남탕과 여탕으로 구분돼 목욕도 할 수 있으며, 맨 위통에서는 채소도 씻고 음용수로도 사용했던 용천수다. 출입을 통제하기 위해 쳐놓은 줄 위로 식산봉을 향해 사진을 찍다보니, 철새들이 한가로이 노닐고 있다. 저것들이 무슨 죄가 있을까마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제 구제역까지 돌고 보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돌아서 출발하려는데 문득 이곳 오조리 출신 강중훈 시인의 시 ‘부랭이’가 떠오른다.

‘가을 햇볕이 무진장 쏟아지는 고향길/ 우리 더러는/ 기억상실증 환자가 되자// 지금쯤 되새김 하는 부랭이/ 들풀에 누워/ 돌하르방으로 있을 시간// 허기진 눈 감을 수만 있다면/ 실안개 빗금 긋듯/ 귀만 열고 살면 되는 걸/ 우리 더러는/ 하늘빛 넉넉한 오후만 보면서 살자’ -강중훈 시 ‘부랭이’에서.

 

# 마을회관 앞 비석거리에서

골목길에 접어들어 마을 중심부로 걸어가며 보니, 옛 돌담은 거의 그대로이고 슬레이트 지붕도 그냥 남아 있는 곳이 많다. 올레길의 영향으로 민박집도 하나둘 늘어났다. 할망민박집! 얼마나 정감이 가는 이름인가?

제법 큰 팽나무 두 그루가 마당 앞에 있는 집을 지나면 마을 회관이고, 그 앞에 충혼비를 중심으로 10여 개의 비석이 늘어서 있다. 그냥 마을 거리에 있는 비석들이다. 동네에서 문장력이 제일가는 분을 뽑아 비문을 쓰게 했는지, 한 자 한 자 내공이 살아난다. 고향을 떠나 고생하며 어렵게 번 돈을 마을 발전을 위해 쾌척한 분들의 공덕을 기리는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 중 충혼비의 사연이 눈물겹다. 1971년에 오조리민과 향토예비군 일동이 육군소령 송원효를 비롯한 열 장병의 충정을 새긴 비다.

‘오호, 진충조국 하시다 쓰러진 본리 출신 장병들의 영혼에 대해 영원히 복을 빌고파 이 목석을 세우노니 충성의 얼은 삼척 지하이나마 평화로운 속에서 깊이 잠드시라.’

 

# 봄이 피어나는 길목

성산읍 일대의 마을에 들어서면 우선 나무가 우거져 있어 고향에 온 느낌을 받는다. 대부분 상록활엽수로 후박나무, 참식나무, 생달나무, 까마귀쪽나무, 동백나무 등속이다. 마당이나 우영팟에는 당유자, 하귤, 산귤, 금귤 같은 것들이 아직도 달려 있고 채소로는 무, 배추, 시금치, 브로콜리, 유채, 퍼데기나물, 마늘 등이 보인다. 울타리 너머 매화꽃은 이제 한물갔다.

엊그제 눈 내리고 기온이 급강하 했었는데, 오늘은 햇살이 눈부실 정도로 비쳐 완연한 봄 날씨다. 무밭이 유난히 뽀얗게 보여 다가가 보니, 온통 냉이 꽃이다. 자세히 봤더니, 개불알풀꽃과 광대나물꽃도 섞였다. 동백꽃은 엊그제의 추위로 꽃잎이 상했고, 가끔씩 유채꽃도 조금씩 피어 반긴다. 그도 그럴 것이 2월도 중순, 게다가 이곳은 성산포지역이 아닌가.

 

고성오일장 입구

# ‘고성’이란 이름이 무색한 마을

오조리에서 고성리로 접어든다. ‘고성(古城)’은 태종 16년(1416년)에 제주도안무사 오식(吳湜)과 전 판관 장합(張合) 등이 조정에 제주삼읍 정립에 대한 사의(事宜)를 올려 제주·정의·대정 삼읍으로 나눠 다스리게 됐을 때, 이곳이 정의현의 현청 소재지가 돼 성을 쌓았었기 때문에 나중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

그러나 관할지역이 너무 서쪽으로 쏠려 있어 불편한 관계로 얼마 안 가 지금의 표선면 성읍리로 이전했다고 한다.

지금은 여러 기관이 몰리고 높은 건물도 많이 늘어나 성산읍에서도 가장 번화가가 돼버렸다. 그러기에 예스러운 건 찾기가 힘들다.

다만 고성오일장만이 지금도 남아있어 다행이다. 매월 4일과 9일에 열리는 고성오일장은 총 사업비 10억원을 들여 현대화사업이 완료되면서 새로워졌다. 또 공연장을 활용해 전통문화 공연 등 다양한 이벤트를 열고, 올레 걷기코스와 연계돼 있어 올레꾼들에게 인기가 높다고 한다.

 

# 아담하고 전망 좋은 대수산봉

비닐하우스에 차양막을 씌운 올레꾼 쉼터를 지나는데, ‘걸으멍 놀멍 쉬멍 갑서! 기천냥 성금하시고 귤, 커피 하영 먹읍써예’라고 써 있어 들어갈까 하다가 기척이 없어 그냥 지나쳐 사진을 찍고 있는데, 한 젊은 올레꾼이 커다란 비닐봉지에 귤을 잔뜩 가지고 나와 ‘귤 드실래요?’ 한다. 나는 성의가 고맙지만 사양을 하고 얼마 없어 나타날 무인 판매대를 기대했는데, 아뿔싸! 판매대엔 귤이 다 떨어졌다.

어느덧 오름에 접어들었다. 거기서부터는 다른 식생을 보인다. 우묵사스레피나무가 나타나고 바닥엔 자금우가 깔렸다. 원래 소나무 숲이었는데 많은 수의 소나무가 말라죽다 드문드문 남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이곳은 그런대로 후박나무, 참식나무 등의 상록활엽수가 아래로 받치고 있어 자연스레 숲의 전이가 이뤄질 전망이다. 같은 종의 어린 나무들이 수없이 많다.

표고 137.3m, 둘레 2094m인 대수산봉의 정상에는 조선시대 주요 통신시설이었던 수산봉수가 자리하고 있다. 봉수시설이라고 해야 간단하다. 불을 자주 취급하는 곳이어서 산불을 염려해 봉긋이 솟은 봉우리 주변에 이 중 또는 삼중의 도랑을 파서 방화선을 구축한 모습이다. 이곳에서는 북동쪽으로 성산봉수, 남서쪽으로 독자봉수와 교신하던 곳이다. 정상엔 하얀 의자가 하나 놓여있어, 앉아서 찬찬히 주위를 둘러보는 즐거움이란! 우도나 성산일출봉, 섭지코지는 물론이고 돌아서면 한라산을 비롯한 오름 군락이 한 눈에 들어온다. <계속>

<김창집 본사 객원 大기자>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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