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암~" 약장수의 시대
"비암~" 약장수의 시대
  •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 승인 2017.02.12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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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일보=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비암~. 이것이 뭐냐 비암~. 애들은 저리 가라. 애들은 집에 가라.”

이어지는 음담패설과 그 입심이 행인들을 휘어잡는다. 어린 학생들은 저리가라고 한다. 요즘 말로 ‘18금(禁)’이다. 그럴수록 아이들은 바짝 다가가서 호기심으로 눈을 밝힌다. 이런 약장수가 1970년대 말까지만해도 시장과 시내 공터 등지에 흔했다.

아이들을 쫓아내는 척 했지만 그건 시늉뿐이었다. 이 약장수는 엉터리 약을 명약으로 속여 팔 뿐 아니라 아이들에게 사실상 음담패설과 궤변(詭辯)을 가르쳤다.

아이들은 이 약장수 말을 듣고 학교에 와서 “비암~, 이것이 뭐냐 비암~”하는 약장수 시늉내기를 했다. 아마 40대 이상이면 이 “비암~”의 추억을 다 갖고 있을 것이다.

사이비 약장수들의 궤변은 추억 속에 사라졌는가. 아니다. 형태·방식들이 달라졌을 뿐, 저질 불량품으로 시민을 현혹하는 궤변의 상거래는 여전하다.

▲궤변이란 무엇인가. 궤변이란 철학에서는 소피스트(sophist), 즉 ‘이치에 맞지 않는 말로 그럴듯하게 둘러대는 (사람) 것’을 말한다. 이를 논리학에서는 ‘얼핏 보기에는 옳은 것 같은 거짓 추론’이라고 한다.

사실 소피스트의 어원인 Sophist는 ‘현명한 사람’을 뜻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좋지 않은 말로 사용된다.

한 마디로 ‘말로 먹고 사는 사기꾼’이다.

말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 정치인이다. 말로 살고 말로 죽는다. 조리 있는 말뿐 아니라 임기응변에도 뛰어나야 한다. 선거에 이기려면 거짓말을 해서라도 유권자의 표심을 사야한다는 불문율도 있다. 정치인에게 공약(公約)과 공약(空約)의 구별은 무의미하다.

일례로 어떤 정치인이 “내가 당선되면 마을 포구(浦口)에 방파제 공사를 해주겠다”고 공약했는데, 누군가가 우리 마을은 바다가 없는 곳이라고 하자 “그러면 거기에 바다를 만들어주겠다”고 하는 것이 정치인의 말이다. 이런 게 궤변이다.

▲궤변의 꽃이 만발하고 있다.

그 가운데 압권은 헌법재판소의 언론보도와 관련한 탄핵 변론(辯論)이다.

대통령 측은 “북한 노동신문의 칭찬을 받는 기사로 탄핵결정을 하는 것이야 말로 헌법위반”이라는 주장을 폈다.

이게 무슨 말인가. 언론이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건을 보도를 했고, 이 보도 기사를 북한 노동신문이 칭찬을 했다는 것인데, 그렇게 북한을 좋아하게 하는 보도를 바탕으로 진행된 탄핵결정이니 헌법위반이라는 주장이다.

자칫하다간 언론 보도가 하루아침에 이적(利敵)행위가 될 판이다. 물론 이 주장의 핵심은 국회의 대통령 탄핵이 특검의 수사결과 헌법위반 사실이 증거로 말해지기 전에 언론보도를 근거로 소추되었다는 점을 강조하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북한 노동신문이 칭찬을 받는 기사’라는 색깔을 씌우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이런 식의 변론을 보면 아무리 그 목적이 다른 데 있다고 해도 “비암~” 약장수 행태를 연상케 한다. 법조계에서는 이런 도리(道理)에 맞지 않는 변론(辯論)을 궤변이라고 정의한다.

▲궤변의 시대다.
신문에 보도되는 이른바 대권 후보라는 정치인들의 말도 요즘엔 공약을 넘어 궤변화하고 있다. 이들의 말을 얼핏 들으면 그럴듯하지만 따져보면 이치에 맞지 않는 억지다. 궤변은 아무래도 대선을 앞두고 있어서 정치인들이 쏟아내고 있지만 제주지역사회도 뒤처지지 않는다.

성산읍 제2공항반대위원회 측은 원희룡 도정의 제2공항 추진 설명이 ‘궤변’이라고 하고, 제주교원단체총연합회는 이석문 도교육청의 공모 교장인사에 대한 해명이 ‘궤변’이라고 주장한다.

이 뿐만 아니다. 시민단체는 쓰레기 정책을 설명하는 제주시정의 논리가 ‘궤변’이라고 한다. 그 뿐인가. 우리 주위에도 ‘궤변’은 성찬처럼 쏟아진다.

궤변은 도리(道理)가 아닌 것을 도리에 맞는 것처럼 꾸며 대는 말이기도 하다.

이러다보니 지역사회가 누가 어떤 말을 해도 ‘마이동풍(馬耳東風)’증세다.

사람에게 인격(人格)이 있듯이 말에도 언격(言格)이 있다. “비암~”약장수의 시대가 다시 오는가. 말이 너무 품격이 없어지는 것 같다.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boo4960@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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