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버린 시계
멈춰버린 시계
  • 홍성배 기자
  • 승인 2015.12.23 20: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어느날 갑자기 거실에 있는 괘종시계가 멈춰 섰다.

아무도 몰랐는데 노모가 발견하고는 손을 보라고 채근하신다.

바쁘다는 핑계로 하루 이틀 지나다 보니 일주일이 후딱 지나간다.

그 사이 시계가 멈춘 줄 잊어버리고 느긋하게 여유를 부리다 낭패를 볼 뻔한 일도 생겼다.

그러나 한 자리에 그대로 있는 시계는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면서 왠지 모를 안도감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살다보면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하는 경우가 많다.

우선은 내 자신이 좋을 때이다. 다정한 연인이나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할 때, 특별한 결과를 마주할 때 등이다. 행복한 지금 이 순간이 언제까지나 계속되기를 바라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특히 이 기쁨이 지속되지 못할 것임을 알고 있을 때는 더더욱 애틋하다.

회피하고 싶은 일이 기다릴 때도 마찬가지다. 12월은 새해를 기다리는 희망의 시기이기도 하지만 취직과 입시 등이 몰려있어 고통스러운 시기이기도하다. 모두가 좋은 결과를 거둘 수 있다면 좋으련만 결국 희비가 엇갈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처럼 더없이 행복하거나 아니면 불안한 결과가 예견될 때 시간을 멈출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문제는 시간은 쉼 없이 흘러가는데 사람들이 자신의 시계만 멈춰버리는 경우이다.

시계를 멈춘다고 시간까지 멈출 수만 있다면 그보다 좋은 것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가 필요한 시점에서 시계를 멈추고서는 시간도 멈췄다고 믿고 싶어 한다. 현실 왜곡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대입 원서를 앞에 두고 자녀와 이른바 ‘밀당’을 해야 하는 우리 집도 마찬가지다.

하루하루 시간은 흘러가지만 원서를 써야할 마지막 시간까지 서로 이 순간이 계속되기만 바라며 눈치작전이 치열하다. 그렇다고 현실이 바뀌지 않는데도 말이다.

#어느새 일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2014년 12월 23일은 개인적으로 잊혀지지 않는 날이다.

그날 오전 10시 제주지방법원 101호 법정에서 제주일보 제호를 비롯해 관련 권리 등을 포함한 이른바 ‘제주일보 상표권’에 대한 법원 경매가 이뤄졌다.

2012년 12월 경영 실패로 부도가 나고 파행 속에서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심점으로 해 제주일보 살리기에 나섰던 구성원들의 열망에 마침표를 찍을 순간만 남겨 놓았다.

‘반드시 제호를 낙찰 받아야 한다’는 구성원들의 이야기에 당시 회사의 경영층은 ‘얼마를 써내는 방식이 아니라 현장에서 가격을 올리는 호가 방식이어서 걱정 말라’고 장담했다.

‘모든 것이 끝나는 구나’하고 가벼운 흥분 속에 낭보만을 기다렸다.

그런데 경매현장에 나간 후배가 보내온 문자 메시지는 청천벽력 그 자체였다.

3명의 응찰자 가운데 우리를 대표했던 대리인이 가장 먼저 제주일보를 포기했다는 것이다.

제주일보를 지켜보자고 손을 맞잡았는데 2등도 아니라 가장 먼저 7억5000만원에 손을 떼다니….

이전에 검찰에 호소문을 제출할 때 ‘이번 경매에서 낙찰 받은 사람이 제주일보를 발행할 것’이라고 말했던 우리가 아닌가.

그날 경매는 8억9000만원에 낙찰될 때까지 계속됐다.

그 후 제주일보와 관련해서는 전용사용권이 3년 더 설정돼 있어서 걱정 말라는 확인할 수 없는 이야기뿐이었다. 낙찰금의 절반 정도는 역시 퇴직금의 일부로 돌아왔다.

아무런 말도 공식적으로 없었고, 구성원들이 문제를 공유하는 시간도 제대로 없었다.

제주시 태성로에서의 제주일보 시계는 그때 그렇게 멈춰서 버렸다.

어쩌면 모두가 시계를 멈추고 시간도 그대로 멈췄다고 생각하고 싶었을 지도 모른다.

홍성배 기자  andhong@jejuilbo.net

Tag
#N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