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고백
나의 고백
  • 뉴제주일보
  • 승인 2017.01.31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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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훈식. 시인

[제주일보] 그대를 생각하면 나는 잠을 못 이룬다. 되도록 그대 생각을 하지 않기로 작정한 후로 비교적 잠을 잘 자는 편이다. 그러나 안타까운 사실이라는 생각이 들면 한동안 멍하게 창밖을 내다보기도 한다. 창밖이라고 해봐야 가로등이 그냥 서 있는 그저 그런 풍경일 뿐, 나의 목마름에 도움이 되질 않는다. 가끔이지만 목마름이 현실이다.

이런 말도 쉬이 할 수가 없다. 그대 또한 나만큼이나 잠 못 이룰 소양을 다분히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말을 아껴야 한다. 용의주도하게 차츰 그대를 멀리 했다. 그대를 지능적으로 멀리 떠나보낸 것이다. 내가 스스로 멀어졌으므로 나의 현명함을 바보처럼 없애버리고 만 것이다.

내가 바라는 것을 그대는 가지고 있다. 둘이서 무슨 일이라도 하면 잘 될 것을 안다.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이 문제이다. 잘못되리라는 예상으로 멀어지기도 어려운데 잘 될 일을 일부러 멀어지기는 더욱 어렵다는 경험을 구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대가 내 비정함을 갈파하고 있음이 위안이다. 만나면 웃긴 하지만 그게 어디 그대의 전부이겠는가? 눈을 슬쩍 엿본다. 참으로 내 마음에 들게 생긴 눈길이다. 코도 귀엽게 생겼다. 입 또한 꽃잎처럼 예쁘다. 귀도 야무지게 생겼다. 손도 무척 마음에 든다. 반했어도 아득한 그리움보다는, 안타까운 작별이 그대를 위한 행복이기에 들려주고 싶어도 못 다할 말, 글로 고백했으나 글 또한 전할 수 없기에 혼자 쓰고 혼자 읽고는 슬며시 지워야 하는 것을.

창밖으로 겨울비가 아프게 내린다. 그대를 잊으려고 팝송을 듣고 있으나 온통 그대 생각으로 밤이 깊어간다. 평온을 위하여 나는 졸음을 구해야 한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면 안 되기에 졸음이 오도록 벙어리 바이올린처럼 조용히 잠을 청해야 한다. 그대를 기어이 떠나보냈으니 나는 자유롭고 한가하다. 식은 커피 한 모금을 입속에 오래 머금고 있어도 나는 너그럽다.

먼 훗날 아니, 그 후로 오랫동안 후회가 밀려와서 쩔쩔 맬 것이다. 이미 내 표정을 읽고 있는 그대도 쓸쓸할 것이다. 못 잊을 줄 알았으니 그나마 다행인가? 마음 갈피마다 그대는 내 안에 살고 있으므로 단풍이 물든 나무 뒤에서 웃음을 나눈 적도 있었으니까 그리움은 환상만이 아니다.

이제 독백도 위안이 되는가? 내 것이 아닌 것들로 이루어진 세상, 내 것은 오직 내 마음 뿐, 어쩌면 내 마음조차도 마음대로 해서는 자학이 되기에 스스로 달래고 침묵하는 나는 참 착한 시인이다. 시가 이 쓸쓸함을 달래고도 풍성하게 남았으니까.

그래도 미련은 끝이 없네. 이 어리석은 아쉬움 어떻게 달랠까? 내가 저지른 편견이 옳은 일이라는 판단이 설 때까지 새벽의 끝을 붙잡고 시상을 더듬을 수밖에. 모진 사연이 밤비에 젖어도 2월은 2월, 새봄이 올 것이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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