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이 너무 어지럽다’
‘상황이 너무 어지럽다’
  • 제주일보
  • 승인 2015.12.23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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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후. 작가 / 칼럼니스트

2015년 제주도민의 삶은 어떠했는가? 무능한 군주의 실정(失政)으로 인해 섬 전체의 예법과 도의가 송두리째 무너져버린 상태는 아닐까? 삶이 온통 팍팍하고, 이웃을 몰라보고, 과거의 상부상조(相扶相助)의 정신은 흔들리고, 제주도청 앞에서는 도정(道政)을 비난하며 피켓을 든 사람들이 판을 벌리고, 누구를 믿어야 하느냐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특히 제2공항의 입지 문제로 환경 훼손과 더불어 공동체 훼손에 대한 대책이 요구되고, 삶의 터전인 주민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보상과 이주 주민에 대해서는 여건을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역시 무능한 군주를 향한 질타가 아닐까.

‘혼용무도(昏庸無道)’는 교수들이 올 한해를 마무리하며 표현한 것이다. 사시이비(似是而非, 겉은 옳은 것 같으나 속은 다르다), 갈택이어(竭澤而漁, 연못의 물을 모두 퍼내 물고기를 잡는다), 위여누란(危如累卵, 달걀을 쌓은 것 같이 위태로운 형태), 각주구검(刻舟求劍, 판단력이 둔해 융통성이 없고 세상일에 어둡고 어리석다) 등을 놓고 교수 886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벌여 ‘혼용무도’가 뽑혔다.

나라의 상황이 마치 암흑에 뒤덮인 것처럼 온통 어지럽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각박해진 사회 분위기의 책임을 군주 혹은 지도자에게 묻는 말이다. 당나라 때 문필가 손과정(孫過庭, 648∼703)의 ‘서보(書譜)’에서 혼용무도를 집자(集字)했다. 당(唐)나라 초기의 서예가로 왕희지(王羲之)의 서법을 배워 초서를 잘 썼다.

‘교수신문’이 선정한 2015년 올해의 사자성어 혼용무도. 혼용은 어리석고 무능한 군주를 가리키는 혼군(昏君)과 용군(庸君)이 합쳐져 이뤄진 말로, 각박해진 사회분위기의 책임을 지도자에게 묻는 말이다. ‘혼(昏)’은 해가 져서 사방이 어두워진 상태를 뜻하는 글자로, 사리분별에 어둡고 품성이 포악한 군주를 가리킬 때, ‘용(庸)’은 보통사람의 평범함에 겨우 미칠까 말까 한 용렬한 인품을 뜻하는 글자로, 식견이 없고 무능한 군주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리고 무도(無道)란 사람이 걸어야 할 정상적인 궤도가 붕괴돼 버린 야만의 상태를 의미한다. ‘논어(論語)’의 ‘천하무도(天下無道)’에서 유래했다.

2015년 한국의 상황 역시 제주사회와 마찬가지로 연초 메르스사태로 온 나라의 민심이 흉흉했으나 지도자는 이를 통제하지 못하고 무능함을 보여줬다. 중반에는 여당 원내대표에 대한 청와대의 사퇴 압력으로 삼권분립과 의회주의 원칙이 크게 훼손됐다.

후반기에 들어서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으로 국력의 낭비가 초래됐다. 모두가 정치지도자의 무능력 때문이다. 특히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은 정부에 대한 불신을 키웠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민주주의의 후퇴이며 모든 다양성의 후퇴다. 모든 국가조직과 사조직이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고 있다.

공자(孔子)는 사람의 중요성에 대해 “문왕과 무왕의 (훌륭한) 정치는 서책에 넘치도록 기록돼 있다. 그러한 사람이 있으면 그 정치가 일어나게 될 것이고, 그러한 사람이 없다면 그 정치는 스러지게 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플라톤(Platon)은 일찍이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자기보다 못한 저질스런 자들에게 지배당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비록 공자가 말한 ‘그 사람’(其人)은 현재는 기약조차 무망한 일이라 할지라도, 플라톤이 말한 ‘저질스러운 자들’에게 지배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다가오는 총선에서 모두가 소중한 주권을 포기해서는 안 될 것이다.

교수사회가 올해의 사자성어로 ‘혼용무도’를 채택한 것은 하루빨리 우리사회가 어리석고 용렬한 자들의 지배체제에서 벗어났으면 하는 간절한 염원을 반영한 것이라 생각한다.

제주일보 기자  hy0622@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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