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은 추운 겨울이 있었기 때문이다
봄이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은 추운 겨울이 있었기 때문이다
  • 뉴제주일보
  • 승인 2017.01.26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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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하. 수필가

[제주일보] 그렇게도 기대했던 정유년 새해가 한 달이 지나고 있다. 닥작닥작 끼어있던 장롱 위의 먼지를 털어내고 맞이하고 싶었던 귀한 손님이었다. 긴 암흑의 터널 속에서 빠져나와 새롭게 맞이하는 광영한 밝기의 세상, 희망으로 세상 만물을 눈뜨게 하는 찬란한 빛으로 온 세상 햇살이 가득 펼치기를 고대했다.

세상은 아직도 휘몰아치는 혼돈의 밤이다. 권력의 달콤한 맛을 본 야욕은 어둠을 휘젓고 있다. 마치 굶주린 사자가 허허벌판의 초원을 바라보며 허연 이빨을 드러내는 것처럼. 그 울음소리가 무섭다. 멀리도 아닌 아주 가까운 데서 들리는 듯 온몸이 싸늘해진다.

국정농단의 중심에서 수사를 받고 있던 사람이 “여기는 더 이상 민주주의 특검이 아닙니다”라고 항변하는 대목에서 현기증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벗바리가 좋아 부정한 힘을 이용하여 세도가 빨랫줄 같았던 왕조시절에 살았던 자가 할 수 있는 말은 아니다. 걸귀가 들린 듯이 쉬지 않고 기업들의 돈을 뜯어내고 자신의 영달을 위해 살았던 사람이 아닌가. 민주주의와 역행했던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대국민 사과라도 해야 할 판에 고개를 꼿꼿이 쳐들고 고성을 지를 수가 있는가.

그의 머릿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는 지 궁금하다. 그런 사람과 친분이 특별했던 국가지도자에게 법과 원칙은 본디부터 없었던 모양이다. 믿음이 절망으로 바뀌고 이제는 얄밉고 칙살맞다.

민초들에게 국가지도자에 대한 희망과 기대는 한없는 신뢰이다. 믿음이 사라진 곳에는 무엇이 남아있을까. 어둠과 절망이 깊은 계곡을 지나 흐르는 또 하나의 강물이 아니던가. 이런 강에서는 어떤 희망의 배도 띄울 수가 없다. 우주를 왕복하고 별나라 여행을 꿈꾸는 최고 두뇌의 인간들일지라도. 20세기 최고의 완벽함을 자랑하던 호화유람선 타이타닉이 한낱 빙산에 무너진 것도 교만이었다. 최고의 법조인이라 불렸던 사람이 노구의 몸에 포승줄을 맨 채 구치소로 들어가는 모습에서 무엇을 보았던가. 유능한 두뇌 속에 들어 있던 것은 국민이 아니라 자신의 영달이었다. 자신의 출세를 위해 죄 없는 민초들이 흘린 피로 치장을 하고 그림자가 벗겨지는 순간 자신의 죄악을 법 테두리 안에서 합리화하는 인면수심의 결정체였다.

무릇 국가지도자들이란 믿음, 행복, 출세, 돈, 권력, 체면, 열등의식, 피해의식과 같은 영혼의 도둑들을 안방으로 들여놓아서는 안 된다. 그것들은 마당이나 현관 밖 정원에 두어 거실에서 바라보는 관상의 사물이어야 한다. 믿음이란 마음이 만들어낸 완성되지 않는 불완전 창작품이다. 믿음이 사랑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하인이 주인의 안방을 차지하는 것과 같은 무모한 것이므로 도둑과 같다. 도둑은 인간을 구성하고 있는 육신과 영혼을 흐트러지게 하고, 그 조화가 깨지는 순간 사랑이 사라지고 존재 또한 사라지고 말 것이다. 그래서 지도자는 외로움을 먹고 사는 사람이다.

시간은 여명으로 다가간다. 믿음이 사라진 곳에 절망이 있다면, 절망이 지나간 자리에는 새로운 희망의 햇살이 믿음으로 다가올 것이기 때문이다. 아침 햇살은 지긋지긋했던 어둠의 시간으로부터 해방시켜줄 것이다. 봄이 소중하게 느껴진 것은 추운 겨울이 있었기 때문이다. 추위가 없었다면 소중함을 감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한 바탕 거센 폭우가 퍼붓고 난 뒤의 하늘은 맑고 고요하다.

조금만 기다리자. 다윗의 반지에 새길 문구를 고민하던 세공사의 고민을 해결해 준 솔로몬의 ‘그것 또한 이제 곧 지나가리라’ 라는 지혜를 받아들이자.

아직은 귓불이 따가울 정도로 바람이 차갑고 매섭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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