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도 바다도 같건만 다른 풍경, 서귀포시 첫 마을로 들어서다
길도 바다도 같건만 다른 풍경, 서귀포시 첫 마을로 들어서다
  • 뉴제주일보
  • 승인 2017.01.23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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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집의 올레이야기-3. 올레 제1코스(시흥~광치기) -목화휴게소~성산갑문(3㎞)
제주 올레길 1코스 시흥리에 들어서면 줄줄이 한치를 널어 말리는 풍경을 볼 수 있다. 한치가 안 날 때는 간혹 준치(?)가 걸리지만 올레꾼들에게는 심심치 않게 기념촬영의 대상이 된다.

[제주일보] #해녀상과 한치 말리는 풍경

목화휴게소 주변에서 몇 가지 주목할 것들이 있다. 먼저 이곳이 종달리 해안도로임을 알리는 해녀상이 그것이다.

지난해 우리 제주 해녀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는 경사를 맞았지만, 과거 조선시대에는 조공을 위해 달랑 소중이 하나 입고 추위를 무릅쓴 채 저승과 이승을 오가며 할당량을 채워야 했다. 일제강점기에도 제주 해녀는 온갖 수탈에 시달리며 원정 물질도 서슴지 않았다. 해방 후 역시 가난한 식구를 위해 숨을 참으면서 일해 온 결과, 비로소 그 가치를 인정받기에 이른 것이다.

얼마 전 겨울 이곳에서 성산일출봉 옆으로 솟아오르는 해를 찍었던 기억이 난다. 요즘 소라가 제값을 못 받고 곤란을 당하고 있다니, 하루빨리 저 해처럼 쨍하고 좋은 소식이 들리길 기원하며 발길을 옮긴다.

바로 서귀포시와 제주시의 경계를 알리는 표지석이 있지만, 그 길이 그 길이고 바다도 한가지로 보이는데 이어지는 풍경은 다르다. 줄줄이 한치를 널어 말리는 모습이다. 한치가 안 날 때는 간혹 준치(?)가 걸리지만 올레꾼들에게는 심심치 않게 기념촬영 대상이 되는 곳이다. 전에 한경면에 있는 자구내가 이 풍경으로 인기를 끌더니, 이곳도 바다와 함께 우도나 성산일출봉을 배경으로 찍으면 그만이겠다.

이곳 조그만 쉼터에서 한치를 구워 달래서 질겅질겅 씹으며 걷는 맛도 여행의 한 즐거움이다.

 

#전설 속 장사의 마을 ‘시흥리’

이곳 서귀포에서 처음 맞는 마을 ‘시흥리’의 옛 이름은 ‘심돌(力石)’이다. ‘탐라순력도’를 비롯한 대부분의 문헌에 그렇게 나온다. 이 마을에 장사가 많다는 전설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심돌 부대각’을 비롯해 ‘현씨 남매 이야기’, ‘심돌 강씨 할망’ 등 심상치 않다. 한번은 ‘심돌 부대각’이 강경(江景)에 장사를 나섰는데, 섬놈이라고 우습게 보는 20여 명의 동네 불량배들을 손가락 하나 까딱 않고 물리쳤으며, 돌아오는 길에 수적(水賊)을 만나서도 통쾌하게 소탕한 후 좋은 길로 인도했다는 이야기다.

마을 홈페이지에는 “시흥리라 불리기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채수강 정의군수 당시 ‘정의현의 첫 마을’이라는 뜻으로 쓰기 시작했는데, 시흥(始興)은 글자 그대로 ‘비로소 흥성하는 마을’이라는 뜻이며, 1914년에 정의군 좌면 시흥리에서 제주군 정의면 시흥리로 바뀌었다”고 나온다. 그러고 보면 오늘날 서귀포의 첫 마을이 시흥리가 된 게 당연해 보이고 올레길의 시작점이 된 것 또한 우연찮은 일이다.

 

#‘시흥리 해녀의 집’과 ‘조개박물관’

아침에 1코스를 걷기 시작했다면 바로 배가 출출해지는 시점이 바로 ‘시흥리 해녀의 집’에 이를 때다. 제주섬을 돌다보면 해녀들이 직접 운영하는 식당이 더러 보이지만, 이곳만은 그냥 지나치기 쉽지 않다. 바로 명물 조개가 들어간 맛있는 죽이 있는 까닭이다. 가끔 답사 때 이곳에 들르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 좋아한다. 반찬으로 나오는 톳무침이나 깅이범벅(게범벅)도 그만이다. 이번에 들렀을 때는 메뉴에 ‘오분자기죽’이 있어 ‘오분자기(떡조개)가 지금도 나느냐’고 물으니, 수조를 가리키며 지난해부터 조금씩 나기 시작했단다. 반가웠다.

같은 울타리 안에 ‘성산포 조가비 박물관’이라 돼 있는 온통 조개껍질로 치장된 집이 있다. 가보니 1~2층에는 세계적인 희귀 조개 1000여 종, 1500여 점이 전시 돼 있다. 국내 연안은 물론 세계 각지에 서식하는 조개류와 어류화석, 조개류 화석 등 다양하다. 조개는 지구상에서 곤충 다음으로 그 종류가 많아 무려 11만 종이나 된다. 아이들과 함께 오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여러 가지 진주 상품을 보고 나왔다.

 

성산포와 오조리를 잇는 한도교

#첫 햇빛 받는 마을 ‘오조리’

얼마 없어 바로 오조리다. 마을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첫 햇빛 받는 마을’을 표제로 해놓았다. 반농반어의 마을로 식산봉과 그 주변 갯벌과 자연 양식장이 자랑인데, 과거 수전소가 위치해 있었다는 점에서 이와 관련한 지명이 많이 남아 있다. 오창명은 그의 ‘제주도 오름과 마을 이름’(1998)에서 ‘고문헌에 나오는 오소포(吾召浦)나 오조포(吾照浦)는 오졸개의 한자 차용 표기로 그 뜻은 확실하지 않다’고 했다.

걷다 보면 오른쪽으로 오소포 연대가 나타난다. 이 연대는 수산진 직속으로 남쪽에 협자연대, 북쪽에 종달연대와 교신했으며 정의현 소속의 별장 6명, 연군(직군) 12명이 배치됐었다. 거의 밑 부분만 남았었는데 근래에 복원했고 옆으로 올레길이 지나게 되면서 성산읍 주민자치위원들이 그 주변을 쉼터 ‘연락의 언덕’으로 조성했다.

 

#성산ㆍ오조 갑문 ‘한도교’

식산봉도 바라보고 ‘해 뜨는 집’ 앞에 놓여 있는 테우도 살피다가 성산조선소 앞의 다리에 이르니, 멀리 성산항에 배가 수없이 몰려 있다. 바람 때문에 출항하지 않은 배들의 숫자가 성산항이 고기가 많이 잡히는 어업 전진기지임을 잘 증명해준다. 그리고 요즘 우도가 전국에 알려지면서 더욱 유명하게 됐다. 다리 오른쪽으로 관람로를 만들어 철새들도 살피고 식산봉과 저수지의 풍경을 즐길 수 있도록 해놓았다.

원래 성산포는 성산일출봉이 바다 속에서 솟아나면서 이뤄진 땅이다. 그러던 것이 파도에 의해 운반된 사력이 퇴적돼 점차 고성리 육지로 연결됐다. 그래서 전에 이곳 오조리에서는 바로 성산포로 건너갈 때 배를 타고 이동해야만 했다. 그러다 1994년에 두 곳을 잇는 다리를 만들면서 바다를 막고 수문을 달았다.

이 다리는 교대 2개, 교각 9개, 수문 24기, 갑문 2기로 이뤄졌다. <계속>

<김창집 본사 객원 大기자>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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