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병원’ 알아봐 줍서
‘큰 병원’ 알아봐 줍서
  • 뉴제주일보
  • 승인 2017.01.18 19: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허영준. 수필가 / 시인

[제주일보] 서울 강남 S병원에 입원 중인 문중의 조카를 문병했다. 네 번째다. 이곳에 입원한 지도 한 달이 지났다. 상경한 가족들이 밤낮으로 번갈아가며 병실을 지키고 있다.

제주시에 살고 있는 조카는 두 달 전 시내 건강검진센터에서 진단을 받았다. “이상한 게 보이니 서울로 가보라”는 의사의 말을 듣고 크게 당황했다.

허겁지겁 서울의 대형병원을 수소문했다. 있는 인맥, 없는 인맥을 총동원해 봤으나 유명 종합병원의 ‘예약’은 어려웠다. 할 수 없이 무조건 상경해 신촌 S병원 응급실로 들어갔다.

여러 가지 검사 끝에 ‘췌장에 혹이 생겼으니 수술이 필요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수술 날짜가 문제였다. 한 달 후에나 가능하다고 했다. 제주로 돌아가기도 힘들어 다시 인맥을 찾기 시작했다. 어찌어찌해서 췌장 분야의 명의를 소개받았고, 강남 S병원으로 이송돼 무려 9시간이나 긴 수술을 받았다.

조카는 내게 “행운”이라고 했다. 그 행운이란 대형 병원의 명의를 만났다는 뜻일 게다.

올해로 타관 생활 46년. 서울에 살다보니 고향 친지들의 민원을 받을 때가 적지 않다. 1970~80년대는 주로 선생님 교류, 여권발급, 융자알선 등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주로 “어디 큰 병원 아는 데 있으면 도와 달라”는 내용이다.

​친지들이 원하는 ‘큰 병원’은 누구나 잘 아는 원남동 S대학병원, 일원동 S병원, 풍납동 H병원, 안암동 K대학병원, 신촌 S병원 등 10여 곳이다.

이런 병원들은 암 병원을 별도로 운영하고 있다. 우수한 의료진과 최신 장비, 월등한 수술실적과 믿음직한 시스템 등을 자랑한다.

그러니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환자와 가족들이 선호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부탁을 받는 내 처지는 참 난감하다. 그런 큰 병원마다 잘 아는 의사나 직원이 있을 리 없다. 그때마다 친목회 수첩을 뒤져 본다. 이제는 ‘김영란법’ 때문에 의료민원도 매우 힘들어졌다.

고향 사람들이 질병 치료차 육지(주로 서울)로 나온다 해서 바로 입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환자나 보호자는 친척집에서 신세를 지거나 병원 주변 숙소에서 당분간 투숙한다.

보도에 따르면 제주인들이 육지로 나와 병을 치료하는 데 쓰는 돈이 연간 8000억 원에 달한다는 통계도 있다. 어떤 방법으로 그런 계산을 했는지 자못 궁금하지만.

서울에서 지인들끼리 모여 식사를 할 때마다 병원에 문병 간 얘기들을 많이 한다. 대화는 자연스레 제주에도 ‘큰 병원’을 건립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모아진다.

1년 전 귀향했을 때 도청 근처 로터리를 지나다가 ‘영리병원 결사반대’라는 플래카드가 여기저기 걸려 있는 걸 봤다. 나는 영리병원(법인)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그저 영리병원을 허용할 경우 도내 100여 개 병·의원들이 큰 피해를 입게 된다는 소리를 들은 정도다.

잘 알려진 내용이지만 태국, 싱가포르 등 동남아 일부 국가에서는 외국인들에게 휴양 겸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병원을 세워 큰 수입을 올리고 있다는데, 우리나라 사정이나 국민 정서와는 어떻게 다른지 궁금하다.

우선 국립제주대학교병원에 기금을 유치해 우수 의료진을 확보하고, 의료장비 등을 현대화하는 일이 시급할 것 같다.

장기적으로는 도내·외 120만 제주인들이 정성을 모아 ‘큰 병원’을 건립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논의할 때가 왔다고 본다. 그리하여 “어디 큰 병원 알아봐 줍서”하는 간절한 전화도 줄어들었으면 좋겠다. 나의 새해 소망이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Tag
#N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