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의 다리 건너 푸른 들판으로
이해의 다리 건너 푸른 들판으로
  • 제주일보
  • 승인 2015.12.22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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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숙 서울가정법원 상담위원/숙명여대.가천대 외래교수

정이씨와 환이씨는 대학 동아리에서 만났다.

한 학년 위인 정이씨는 자신을 잘 따르며 열심히 대학 생활을 하는 환이씨의 밝은 모습이 좋았고, 환이씨 역시 열심히 공부하며 미래의 꿈을 키워가는 정이씨의 씩씩한 모습이 좋았다.

만나며 둘은 자연스럽게 결혼을 꿈꾸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아이가 생겼다. 양쪽 집안에서 결혼을 서둘러 정이씨와 환이씨는 결혼식을 올렸다.

아직 정이씨는 원하는 직업을 갖기 위해 여러 차례 시험을 보고 있는 중이었고, 환이씨는 대학원에 진학 중이라 서로 함께 지낼 생활의 터전을 마련하지 못한 터라 각자 원가족이 있는 집에서 지냈다.

아이가 태어났고 아이를 키우다 양육에 지친 친할머니는 아이를 외할머니 집으로 보냈다.

그 사이 정이씨와 환이씨는 서로 고생해 모은 돈을 가지고 서울에 작은 집을 전세로 마련했고, 시골에 있던 아이를 데리고 와서 함께 살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이에게 남다른 면들이 발견 됐다.

눈맞춤이 잘 안되고 아이 이름을 여러 번 불러도 답이 없었다.

자동차 몇 대를 일렬 배열하고 바퀴에만 유난히 관심을 보였다.

아무래도 아이의 발달이 더딘 것 같아 동네 소아과에 갔더니 소아정신과에 가보라고 하자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다시 소아정신과에 갔다.

발달 장애란다. 평생 발달이 느린 아이로 살아가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안그래도 넉넉지 못한 살림과 각자 원하는 직업을 가지지 못한 삶이 원망스러워 정이씨와 환이씨는 자주 다퉜다.

아이의 정신과 진단이 내려진 날 정이씨는 아이를 데리고 친정으로 가버렸다.

“이혼하자”, “안된다”, “아이를 보여달라”, “장애를 가진 아이 필요없다고 할 땐 언제고 이제와서 아이를 보여달라고 하냐!”

“그래 아이 안봐도 된다! 특별히 나눌 재산도 없는데 협의 이혼을 하자”, “누구 좋으라고 이혼하냐.”

서로의 실랑이는 양쪽 집안 싸움이 됐고 아이를 만나러 갔다가 아이를 보여주지 않는다며 문을 두드리고 그러는 과정에서 서로 몸싸움이 일어나 경찰이 출동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결국 환이씨가 법원에 이혼 소송을 시작했다.

서로 이리저리 다투는 사이 아빠와 아이는 일년 이상 만나지 못했다.

환이씨와 정이씨의 소송을 담당한 재판부는 재산 분할과 위자료 부분은 재판부가 맡지만 부모의 높은 갈등 속에서 현재 자녀의 심리적인 상태는 어떠한지, 이혼 과정에서 한쪽 부모를 만나지 못한 정서적 박탈감을 어떻게 메꾸며 면접교섭을 할 것인지, 이혼 이후 자녀의 바람직한 양육자는 누구인지, 앞으로 양육·비양육 부모의 역할을 어떻게 할것인지 코칭을 받는 시간은 심리전문가인 가사상담위원과 함께하라는 조정조치 명령을 가족에게 내렸다.

이렇게 나와 정이씨네 가족의 만남은 놀잇감이 있는 법원 상담실에서 시작됐다.

아이의 발달 상태를 점검하고 정이씨와 아이, 환이씨와 아이의 애착 정도를 파악하고 가족이 함께 만나 아이와 놀이하며 양육하는 부모, 그리고 헤어져 지내는 비양육 부모의 역할에 대한 안내와 실제 놀이지도를 받았다.

그러는 과정에서 정이씨와 환이씨는 문득 깨닫게 됐다.

‘우리가 서로 싸우는 동안에도 우리의 아이는 하루하루 커가고 있었구나. 그리고 우리도 서로 처음 했던 결혼이라 많이 서툴렀구나.’

‘서로를 많이 나무랐었구나, 아니 그 무엇보다 사랑하는 상대방을 행복하게 해주지 못하는 자기 자신이 싫어 너무 많은 짜증을 냈었구나.’

알면, 조금 편안해 진다.

편안해진 그 자리. 한걸음, 한걸음 내딛다 보면 이해의 다리에 닿게 된다.

그 다리 건너면 만나리. 건강한 푸른 들판을.

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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