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도 해맞이
마라도 해맞이
  • 제주일보
  • 승인 2017.01.17 18:33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미선. 수필가

마라도에서 해맞이를 하려고 집을 나섰다. 동행하는 K는 삼십여 년 동안 새해맞이 기도를 참여해 오면서 오늘처럼 포근한 날씨는 나의 병고도 씻어낼 것이라는 덕담까지 해준다.

섬 한 바퀴를 도는 데 한 시간 정도면 충분하지만 나는 2박 3일의 여정을 잡았다. 예전에 관음전에서 기도할 때, 갯바위를 때리는 하얀 포말이 목탁소리로 내 가슴에 자리하여 발길을 이끌었다.

가방을 내려놓고 해넘이를 본다. 나와 인연이 된 모두에게 감사기도를 올리다보니, 이곳으로 나를 이끄는 영혼적인 그 무엇이 있는 것 같다. 한 마리의 거대한 물고기가 은빛 물결로 비늘처럼 반사되는 바다의 그림은 해맞이 성공을 예고하는 듯하다.

마지막 뱃길이 끊기자 섬 전체가 고요하다. 내 삶을 일깨워주는 경전이 되고 성지로 보인다. 한밤중에 마당에 나왔다. 사위가 고요하여 죽음 같은 정적이 흐르고 별이 반짝인다. 나 혼자만 커 보이는 괴로움과 고통도 잊게 하는 이곳은 내게 낙원이다.

새해 첫날이다. 어스름에 새벽기도를 마치고 동산을 거슬러 오른다. 마라도 등대 앞의 해맞이 장소에 이르자 해녀들이 사발면과 커피봉사를 하고 있다. 언 가슴을 녹이는 따뜻함에 관광객들은 횡재한 느낌으로 기쁨이 배가 되고 있다. 해녀들은 십여 년 만에 포근한 날은 처음이라며 오늘은 일출을 볼 수 있겠다고 한마디씩 한다. 숨쉬기도 힘들고 거친 바람이 잦은 이곳에서 오늘 같은 날씨는 사분의 일도 주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어쩌면 이런 베풂으로 일 년 동안 목숨을 담보로 하는 해녀작업의 많은 수확과 안녕을 마음속으로 바라고 있을 듯하다.

사람들은 합장을 하면서 해맞이를 기다리고 있다. 배를 타고 숙박해야만 볼 수 있는 이곳에 저 사람들은 왜 왔을까. 저마다의 사연을 간직한 듯 미끄럼 방지를 위한 나무에 기대 서 있다. 전문사진가는 카메라삼각대를 설치하고 순간포착하려고 대기 중이다. 수험생 가족으로 보이는 관광객도 두 손 모아 기도 한다. 해가 바뀐 첫날에 떠오르는 해를 향해 기도하면 소원성취 한다는 속설 때문일까. 후유증에 시달려온 나도 올 한 해는 건강하게 살게 해 달라며 합장을 한다.

햇귀가 발그레 올라온다.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른다. 카메라 셔터 소리와 스마트폰에 소원을 저장하느라 활기가 넘친다. 여명의 황홀한 모습은 억새가 춤을 추게 하고 하늘과 바다는 장관을 연출한다. 잔잔한 수평선 너머 이상세계로 향하고 싶은 욕구가 가슴 밑바닥에서 솟구쳐 오른다. 붉은빛이 환상에 젖게 하며 온몸이 후끈해진다.

몇 점의 구름은 형제섬을 가져다 놓은 듯하고 그 사이로 떠오른 진주처럼 영롱한 해가 이글거린다. 이 순간은 거친 태평양이 아니고 물결조차 잠을 자고 있다. 어선들도 해를 향해 일렬로 멈춰 서있다. 만선의 꿈을 담은 한 폭의 그림이다.

아침 공기를 폐부 깊숙이 들이마시고 명상하며 걷는다. 살아 꿈틀거리는 망망대해, 이어도가 여기 가까이 있지나 않을까. 자연이 들려주는 소식에 귀를 기울이니 삶과 세상이 보이고 내가 보인다.

제주일보 기자  hy0622@jejuilbo.net

Tag
#N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상한가 2017-01-18 20:54:17
고미선 작가님 덕분에 마라도에서 해맞이를 한 듯한 착각이 들었습니다. 작가님의 사람에 대한 온기가 전해지는 따뜻한 글입니다. 앞으로도 좋은글 기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