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지 마시오" 코미디는 "그만", 이제는 웃자
"웃지 마시오" 코미디는 "그만", 이제는 웃자
  •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 승인 2017.01.15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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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일보=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정월(正月)에 코미디같은 얘기부터 한다.

5·16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군사정부가 각급 기관에 내려보낸 첫 지시사항 중의 하나는 ‘근무시간에는 웃지마시오’였다.

이 ‘웃지마시오’는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말로 지시한 구두(口頭)지시가 아니라, 이른 바 ‘혁명정부’라는 곳에서 공문서를 통해 하달되었다고 한다.

정부 각 부처는 물론이고 제주도에도 도청과 각 사업소, 제주시·남북군에도 내려왔다. 그 때가 얼마나 무서웠던 시절인가. 깡패를 소탕한다면서 평소 좋지않게 보아온 사람들을 잡아다가 패고, 5·16도로 건설 노역장으로 끌고가던 때였다. 관공서에서는 웃는 사람은 커녕 웃음 비슷한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군청이나 읍사무소에 가보면 공무원도 무뚝뚝 민원인들도 무표정, 그야말로 엄숙 조용했다. 

지금 이 모습을 재연한다면 정말 웃기는 코미디가 될 것이다.

▲왜 이런 지시를 내렸는지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해석이 다르다. 하여튼 ‘웃지 마시오’란 지시만큼 당시의 시대상황과 정치문화를 상징적으로 말해주는 일도 없을 것이다. 인간의 자유정신을 감금하기 위한 독단의 가부장적인 규범이 그 속에 담겨있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웃지 않는다는 것은 경직되어 있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또 경직되어 있다는 것은 자율성과 다양성을 부정하고 획일주의에 따른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근무시간중에는 웃지마시오’했으니까 제3공화국 군사정부는 경직성으로 막을 연 셈이다. 그런 정권이 바로 그 경직성 때문에 막을 내렸다. 국민이 이 지시를 따르지 않고 웃으면서 제3공화국이 무너진 것이다.

▲웃는 것은 무엇이고 웃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에서 노수사(老修士) 호르헤와 젊은 수사 윌리엄은 웃음의 해석을 놓고 대결한다.

윌리엄은 웃음을 선(善)을 지향하는 힘, 신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우리 스스로를 해방시키는 ‘지혜’로 본다. 반면 호르헤는 웃음을 절대 신의 권위에 대한 인간의 도전, 육체의 허약함과 어리석음의 표현으로 본다. 이 두 사람의 대결에서 엄숙주의자 호르헤가 인본주의자 윌리엄에게 패배하는 것으로 중세사회의 종말을 예고한다.

이렇게 웃음의 해석을 달리하면서 세상은 변화했다.

▲웃고 싶어도 웃지 못하는 인간은 인간이 아니라 로봇이다.

이런 인간은 살아있는 독립된 개체가 아니라 동원의 대상으로서의 객체일 뿐이다. 이 동원의 대상으로서의 인간을 군사정부는 ‘근무시간에는 웃지마시오’라는 식으로 요구했던 것이다.

그러나 일하는 손이 생각하는 두뇌의 지시를 받지 못하는 타율의 로봇형 인간은 결코 고부가가치를 창조할 수 없다. 우리가 지난 날 ‘웃지 마시오’ 식의 개발독재를 통해 산업화를 이뤄냈다고는 하나 그로써 그만일 뿐이다. 그 개발독재의 추억은 잊어야 한다.

경직성과 획일성이라는 양(量)의 시대는 가고, 이제는 지난 시대의 약점이었던 유연함과 다양성, 창조성이 강점이 되는 질(質)의 시대다. 

우리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시스템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새 시대를 열었다. 하지만 정치문화 부문 만큼은 아직도 과거 ‘웃지 마시오’ 5·16 패러다임 속에 갇혀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우리 정치를 3류라 하는 걸까.

새해에는 많이 웃고 싶다. 웃음 연구가들은 웃을 일이 없으면 억지라도 웃으라고 조언한다.

그런데 웃을 일이 있어야 웃을 게 아닌가. 세상이 온통 ‘민나 도로보 데쓰’(모두가 도둑놈)이고, 소위 지도층이라는 사람들이 너무 상식에 안맞는 일들을 하니 어떻게 웃을 수가 있나. 하지만 웃자.

임진왜란 때 이항복(李恒福)은 선조(宣祖)대왕과 함께 왜군에 쫒겨 의주(義州)까지 피난갔다. 그 급박한 피난 길에서도 웃기는 말을 한마디씩 던져 일행을 곧잘 웃기고 힘을 되찾곤 했다고 한다. 우리 선인들은 웃으면서 국난을 극복해 왔다. 새해 전망이 매우 어렵고 경제 사회 지표들도 암울하다.

올해 구호는 “근무시간에는 많이 웃으시오”다.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boo4960@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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