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은 차고, 이지러진다
달은 차고, 이지러진다
  • 제주일보
  • 승인 2017.01.11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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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진주. 중문고등학교 교사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30년 특별전 ‘달은 차고, 이지러진다’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오는 2월 12일까지 열리고 있다. 다양한 연령과 계층을 위한 워크숍, 강연, 작품 감상 프로그램, 일대일 공감 프로그램 등이 온·오프라인을 통해 소개되고 있다. 이번 전시는 작품이 탄생하는 시대적 배경-제작-유통-소장-활용-보존-소멸-재탄생의 생명 주기와 작품의 운명에 대해 집중적으로 고찰하기 위해 마련됐다.

교사연수를 통해 전문적인 연수도 좋지만 교양도 겸비한다는 일념으로 미술관을 견학하기로 하였다. 미술관 앞에서 여교사들의 다양한 포즈 사진촬영을 시작으로 우리의 작품완성뿐 아니라 다양한 작가와의 만남 시간이 시작되었다.

전문적으로 공부를 하지는 않았지만 작품을 통해 작가의 의도와 각자가 감상하는 눈높이에서 만남의 소중한 경험들을 하게 된다. 요즈음은 미술관마다 큐레이터라는 전문해설가들이 안내를 해 주어 더욱 미술 감상에 도움이 된다.

전시장 안에서 처음 만난 작품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백남준 작가의 다다익선이었다. 텔레비전 모니터 1003개가 중앙 5층 건물 높이를 꽉 채우며 놓여 있었다. 1980년대 우리나라의 미디어가 현재처럼 발전되기 전에 지속가능한 발전을 예측하며 시시각각 변모하는 사회 속에서 세계인들과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채널의 작품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2000년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그 작품은 여전히 시사하는 바가 많다. 작가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은 아니지만 그가 의도한 세계 속에서 다양한 사람과의 만남은 오늘 우리에게 계속 이어지고 있다. 비록 영상이 나오지 않는 모니터이지만 공유·공감할 수 있는 형태로 자신이 마음에 드는 작품을 선택하는 과정부터 작품 간 관계를 유추하는 감상을 토대로 자신이 새롭게 발견한 작품의 다양한 요소를 표현해 보는 재미있는 감상 시간이었다.

행운을 가진 사람들은 만남을 통해 소중한 기회를 얻는다고 했던가? 혼자보기에는 조금 어렵다고 느끼는 찰나에 김혜정 큐레이터와의 만남은 운명적이었다고 해야 할까?

목요일 힐링 프로그램에 참가하기로 한 학생들이 펑크를 내어 돌아가려다가 우리와 만났다고 했다.

우리나라의 초대국전에서 30년간 운영되었던 작품들을 소개해 주는데 가희 볼만하였다. 거기에 국전의 뒷이야기까지 덤으로 얻으니 작품 감상이 너무나 재미있었다.

박래현 작가의 노점은 미술책에서 봤던 작품이었는데 동양화의 평면성과 반추상성을 결합시킨 작품이다. 수직으로 병렬되는 그림은 형체의 단순성과 색채의 은은한 대비, 작품에 등장하는 여인들의 갈색 혹은 동갈색의 피부색은 과장되거나 생략된 형태의 표현과 이국적인 느낌이다.

재미있게 본 작품 중에는 김범 작가의 라디오 모양의 다리미, 다리미 모양의 주전자, 주전자 모양의 라디오다. 한국의 어느 가정에서나 한 둘 정도는 가지고 있었을 법한 전형적인 라디오, 다리미, 주전자를 각각 보여 준다. 새 제품이 아니라 손때가 제법 묻은 것이라 친숙함은 더해진다. 각각의 기능을 생각해보면 라디오는 청각, 주전자는 미각과 후각, 뜨거운 다리미는 촉각과 관련이 있다. 이들의 모양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까지 합치면 어렵사리 오감을 구현하고 있는 셈이다. 너무 명확하다고 느끼기에 우리는 이런 감각들을 쉽게 의심 없이 믿어 버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고정관념이 생겨난다. 작가가 은근슬쩍 바꾸어 놓은 사물들은 이 선명한 경계를 허문다. 사물들은 새로운 맥락을 찾으려고 맹렬히 진동하고 처음엔 그리도 친숙했던 것들이 점점 거북해진다. 그러다 문득 이 다리미가 정말 소리를 내긴 할까? 혹시 제목조차 가짜일까? 라는 의심이 들면 관객과 작가의 지적 게임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2017년 새해엔 교양프로그램으로 미술관에서 지적 성취감을 체험해 보면 어떨까?

제주일보 기자  hy0622@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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