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살아야 하는 이유, 하나 더 있다
오래 살아야 하는 이유, 하나 더 있다
  •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 승인 2017.01.08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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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일보=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늙지 않고 오래 살고 싶은 마음이야 동서고금(東西古今)이 따로 없다.

메소포타미아의 신화에도 ‘가시에 찔리면 젊음을 되찾는’ 식물이 등장하고, 진시황(秦始皇)은 불로초(不老草)를 구해 서복(徐福)선단을 제주도에 보냈다.

이들이 제주에 와서 한라산 ‘시러미’를 따고 갔다는 말도 있고, 서귀포 정방폭포 암벽에는 ‘서불과지(徐市過之)’라는 각자(刻字)를 남겨 놓았다는 말도 전해진다.

그런데 이 옛날 얘기에서 감탄할 대목이 있다.
진시황이 한라산에 불로초가 있고 제주사람들이 장수(長壽)한다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하는 점이다.

그로부터 2200년이 지난 지금, 그 때 진시황의 예견은 정확하다. 제주도가 장수(長壽) 고령사회가 된 것이다. 2015년 말 현재 제주도내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약 8만4000명이나 된다. 하지만 2040년에는 고령인구가 약 22만6000명이 될 것이라한다.

▲장수의 원인이 여러 가지겠지만 제주사람들은 오래 살아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보고 싶은 ‘그 날’이 오지 않았는데 어떻게 눈을 감을 수 있으랴.
우선 4·3의 해원(解寃)이다.
4월이 오면 제주사람들은 잠들지 못한다. 4·3때 죽은 사람도 그렇지만, 살아서 빨갱이 낙인을 받았던 지난 날 생각에 이 섬이 잠들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4·3유족회 사람들은 ‘4·3의 완전한 해결의 날’까지 눈을 감을 수 없다고 한다.

▲두 번째는 국토 통일이다.
6·25가 난 1950년 그 해 8월, 전도에 학도(學徒)돌격대가 결성되고 2000여 명이 해병대에 입대했다. 한국 해병 3, 4기다.  중·고등학교를 다니다가 자기 키만큼 큰 M1 소총을 지급받고, 몇 발 쏘아본 후 인천에 상륙했던 ‘소년병’들이다. ‘통일의 날’이 오기 전에 눈을 감을 수 없다고 한다. 3, 4기 상임부회장 김형근씨, 전 서귀포시장 강창수씨 등은 나이 90을 눈 앞에 두고도 전우들이 피 흘린 곳, 도솔산을 찾아간다.
해병대만이랴. 제주농고(현 제주고)를 다니다 육군 일등병으로 이 전쟁에 나가싸우다 육군 대령까지 진급했던 고남화씨(고씨중앙종문회장) 등 육군 ‘소년병’들도 있다.

▲세 번째는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이다.
4·19혁명이 나던 1960년, 그 해 5월 1일 제주대학과 각 고등학교 공동주최로 관덕정에서 4·19혁명 희생자 위령제가 열렸다. 그 때 민주주의를 외쳤던 젊은이들은 이제 80을 앞뒀다.
하지만 오늘도 그 때처럼 ‘진정한 민주주의의 날’을 희구한다.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의 정부를 보고 싶어 한다.

▲네 번째는 대한민국의 융성이다.
1960년대 기근의 시절. 대학을 다녔던 이들은 요즘 박근혜 대통령 탄핵사태가 곤혹스럽다.
그 가운데에는 제주 상청회(常靑會)가 있다. 4·19 이듬해 5·16이 발생한 후 5·16 장학생으로 대학에 진학했던 이들은 “박근혜를 찍었지만 나라가 부끄럽다”고 한다. 이 모임의 1기생인 현경대 전 의원, 부삼환 치과원장 등 그렇게 ‘늘 푸른’ 사람들도 80이 다됐다.
그러나 ‘대한민국 융성의 날’을 보고픈 마음은 그 때보다 더 붉다.

▲다섯 번째는 사회 평등이다.
1970년대와 1980년대 대학을 다녔던 이른 바 유신세대와 ‘386’(1980년대 학생운동세대)들.
1990년대 사회를 주도했던 이들 7080세대들도 이제 60을 바라보거나 고개를 넘었다.
이 나라 이 사회의 불평등이 해소되어 ‘국민이 평등한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4·3과 6·25, 4·19와 5·16, 민주화 투쟁과 7080, 그 때 그 사람들은 ‘그 날’이 오기전에 눈을 감을 수 없다.그런데 눈을 감을 수 없게 하는 이런 일들은 정치인들이 정치만 잘 하면 되는 일이다. 정치만 잘하면 ‘그 날’이 온다.요즘 정치가 이것을 잘 알면서도 “오래 산다”고 윽박지르고, “죽을 날 얼마 안 남은 노인”이니 “나이 곱게 먹어야지”하며 이들에게 눈을 흘긴다.정치가 이렇게 능멸되는 한, 그 때 그 사람들은 늙지 않는다.
아니 연부역강(年富力强), 오래 산다.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boo4960@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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