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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나이, 잃어버리는 세월’의 공정성김치완. 제주대학교 철학과 교수
제주일보 | 승인 2017.01.08

[제주일보] 새해 첫날 덴마크에서 20대 한국인이 체포되었다고 한다. 그의 법률대리인이 두 달 전 “풍파를 견딜 나이가 아니다.”라고 해서 공분을 샀던 인물이기도 하다. 그의 체포 소식과 함께 “딱 20대로 들린다.”는 그의 목소리가 며칠째 방송을 타고 있다. 제 나이로 들리는 목소리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나이에 비해 중한 혐의를 받고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도 그를 이렇게 마치 미성년자 취급하는 것은 불편하다. 2017년 1월 현재 우리나라 형사미성년자는 만 14세 미만, 민법 상 미성년은 만 19세 미만이다. 특히 우리 민법에서는 민법 상 미성년자라 하더라도 혼인을 하면 성년자로 보는 혼인성년제를 채택하고 있다. 그러므로 1996년생으로 혼인을 한 것으로 알려진 그는 어느 모로 보아도 “책임 질 나이”가 되었다.

논어 위정(爲政) 편에는 나이를 가리키는 이칭(異稱)이 나온다. “나는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志學), 서른에 홀로 섰으며(而立), 마흔에 흔들림이 없어졌고(不惑), 쉰에 천명을 알았으며(知天命), 예순에 귀가 순해졌고(耳順), 일흔에 마음이 바라는 대로 따라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었다(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 세 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열일곱에 어머니를 여읜 공자의 10대가 평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어 서른에 일가를 이루어 홀로 설 수 있었다는 칠십 노인의 회고는 참으로 당당하다. 서른이 넘어도 일가를 이루지 못하는, 그리고 못할 수밖에 없는 오늘날과 비교하면 대견함을 넘어서 부럽다. 물론 평균 수명이 턱없이 짧았던 시절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하겠지만 말이다.

‘불혹’은 사람이나 물건은 물론, 이념이나 주의 주장에 무턱대고 홀려서 흔들리면 안 된다는 말이다. 마흔은 공자가 살았던 2500년 전에는 물론 오늘날에도 몸이 성숙기에서 노년기로 접어드는 이른바 갱년기의 초입이다. 노년기로 접어들면서 ‘지금껏 무엇을 바라고, 무엇을 하며 살아왔나’하는 잔잔하면서도 격렬한 흔들림이 일어난다. 여기에 무너지지 않으려면 굳건한 세계관과 인생관, 가치관이 확립되어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굳건하게 살아도 마음먹은 대로 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것이 세상이치를 가리키는 천명을 아는 나이인 쉰이다. 쉰이 넘어 세상의 이치를 알고 나면 삶의 지평이 넓어진다. 꼭 그래야 되는 것도 그래야 하지 말아야 하는 것도 없다. 이것이 귀가 순해진다는 ‘이순’이다.

어려서는 어른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어른이 되려면 나이를 먹어야 한다. 나이 먹는 일은 새해보다 한 발 앞선 동지 때 시작된다. 동국세시기에서는 나이만큼의 새알심이 든 팥죽을 먹는 동지를 작은 설[亞歲]이라고도 했다. 한 해의 끝인 동지부터 다음 해가 시작된다는 생각 때문에 만들어진 속설과 풍습이다. 하지만 음력 정월 초하루에 차려지는 세찬(歲饌) 가운데서도 떡국을 먹어야 한 살을 더 먹게 된다. 그래서 떡국을 나이 먹는 떡, 곧 첨세병(添歲餠)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세찬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세주(歲酒)다. 세주는 어린아이로부터 시작해서 연장자 순으로 마시는 것이 법도인데, 운어양추(韻語陽秋)에서는 그 이유를 ‘젊은이는 해를 맞이하고, 노인은 해를 잃어버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어려서는 빨리 먹었으면 싶던 나이가 늙어서는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세월이 된다. 이것만큼 모두에게 공평한 일도 없다. 예전 나이에 0.7을 곱해야 100세 시대를 살 수 있다는 흰소리는 지나치다. 돈과 권력으로 세월을 잃어버리지 않으려는 ‘안티에이징(anti-aging)’은 지나치기만 한 게 아니라 때로는 범죄가 되기도 한다. 지금껏 우리 사회에서는 ‘나잇값을 못한다’는 평판이 법에 근거한 처벌보다도 더 큰 힘을 발휘했다. 그런데 이제는 미성숙함이 형벌 감경의 사유, 더 나아가서는 동정의 근거가 되어버렸다. 이렇게 돈과 권력이 동원된 잔기술은 곧잘 법체계를 뒤흔들고 피해갈 수 있게 만든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아직은 ‘먹는 나이, 잃어버리는 세월’과 같은 공정성을 피해가지는 못한다. 공자와 맹자가 말했던 인의(仁義)에 기초한 도덕적 사회가 오늘날 더욱 절실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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