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가치는 가릴 수 없어…禁書는 金書다"
"참된 가치는 가릴 수 없어…禁書는 金書다"
  • 뉴제주일보
  • 승인 2017.01.05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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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서(禁書)
‘順伊삼촌’과 같은 해에 출판된 후 대기업의 스폰서를 받아 전국의 새마음봉사단에 배포한 현 대통령 박근혜의 ‘새마음의 길’ 6판(版).

[제주일보] 얼마 전 소설가 현기영님의 작품집 ‘順伊삼촌’(창작과 비평사, 1979) 초판(初版)이 서점에 들어왔다. ‘창작과 비평’ 1978년 가을호에 발표된 소설 ‘순이삼촌’이 수록된 책이다.

1949년 북촌에서 벌어진 양민학살을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 국내에서 최초로 제주 4・3사건을 본격적으로 다룬 소설이다. 제주 4・3사건 자체가 금기시 되던 1970년대에 발표되었기에, 작가는 보안사에 끌려가 고문과 폭행을 당했고, 이 책은 곧 ‘금서(禁書)’로 지정되어 1990년이 되어서야 다시 출판될 수 있었다. 금서였던 초판은 책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사랑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이 책이 가진 우리나라 문학사적 의의와 제주 4.3사건에 대한 상징성, 금서로서의 희소성 등….

출판 후 10여 년 간 금서(禁書)로 지정된 소설가 현기영의 작품집 ‘順伊삼촌’ 초판(初版).

금서는 정치나 사상, 풍기 또는 종교 등을 이유로 일반 대중이 읽지 못하도록 출판이나 판매, 소장과 열람을 법률이나 명령에 의해 금지한 책을 말한다. 어느 시대에나 권력을 가진 지배층(국가이든 종교기관이든…)은 자신에게 저항적이거나 불편한 사상과 표현을 담은 책을 통제하려는 시도를 하곤 했다. 중국 진시황의 분서갱유(焚書坑儒)로 대표되는 이러한 시도는 일단 그 시기를 넘기고 나면, 시대의 흐름에 따라 곧 회복되곤 했다. 지금은 어떤 분야의 고전(古典)이나 명저(名著)로 통하는 수 많은 책들이 출판 당시에는 금서였다는 게 이를 증명한다.

1980년대 초를 시대적 배경으로 촬영된 양우석 감독의 ‘변호인’(2013)에서 국밥집 아들이 ‘엮이게’ 된 사건도 금서를 읽는 모임으로 시작된다. 1980년대 중반, 나도 금서에 관한 ‘웃픈(웃기고 슬픈)’ 기억이 있다. 외국에서 구입한 책을 소포로 보냈던 한 교수님의 심부름으로, 당시 연세대 근처에 있던 국제우체국에 간 적이 있었다. 그런데 담당자가 소포를 건네주기 전에, 먼저 포장을 뜯어서 내용물을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외국에서 들여오는 서적에 대한 일종의 검열인 셈인데, 그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 가관이었다.

막스 베버(Max Weber)와 코뮤니케이션(Communication) 관련 책을 한 옆으로 분류해 놓고, ‘막스(Max)’나 ‘코뮤니…(Communi…)’가 들어간 책은 바로 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칼 맑스(Karl Marx), 공산주의(Communism)와 혼동한 것이었다. 관계없는 책이라고 아무리 설명을 해도 못 들은 척하다가, 한참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내주었다. 이렇게 외국에서 들여오는 책들을 검열하는 것도 어이없는 일이었지만, 검열한다는 사람이 막스 베버와 칼 맑스를 구분 못해서 이런 사단이 벌어졌다는 사실에 더욱 어처구니가 없었다.

현 정권에 불편한 시국선언을 하거나 대선에서 반대편 인사를 지지했던 사람들을 1만명 가까이 블랙리스트에 올리고, 그 중에 900여 명은 특별 관리해서 정부에서 지원하는 사업에 참여할 수 없게 했다고 한다. 예전에는 몽둥이(고문과 폭행)로 하던 것을 이제는 돈(정부의 지원금)으로 통제하려는 속내가 보인다. 다들 명색이 문화예술인인데 그런다고 통제가 되겠는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한창인 지금, 출판사에서는 대통령 자서전 등의 출판을 중단하고 중고서점에서는 대통령 관련 서적 매입을 정중히 거절하고 가정주부는 아이들이 볼까 두려워서 그녀의 위인전을 내다 버린다고 한다. 어찌 보면 대중으로부터 신용을 잃은 대통령에 대한 ‘밑으로부터의 금서(禁書)’이다. 대통령은 현 상황을 어찌 생각할까?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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