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거나 붙잡고 희망이라 우겨라
아무거나 붙잡고 희망이라 우겨라
  • 뉴제주일보
  • 승인 2017.01.01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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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종태 시인 / 다층 편집주간

[제주일보] 겨울이다. 아직은 봄의 희망을 말하기는 겨울에게 미안하다. 하지만 마당의 나무들을 보면 진작부터 봄을 준비하고 있었던 티를 낸다.

매화, 목련, 천리향, 산당화, 왜철쭉 들이 이미 꽃봉오리를 부풀리고 있다. 희망이 없는 삶은 얼마나 무료하고, 얼마나 갑갑할까. 새해 정유년이 열리면서 우리는 어떤 희망의 알을 품어야 할까를 생각한다.

아직 알도 얻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먼저 희망의 알을 구해야 하지 않을까. 그 희망의 알이 부화될 때까지 잠시도 알 굴리기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될 일이다. 품고 굴리다 보면 언젠가는 알이 부화해서 희망의 새가 태어나고, 그러고 나면 훨훨 창공을 날아오를 것이다.

지난해 우리나라는 소설책이 팔리지 않을 정도로 흥미진진(?)한 일들의 연속이었다. 그야말로 일일연속극을 보듯이 뉴스를 본 것이 사실이다. 그게 흥미로 끝날 일은 아니라는 것을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우리나라를 둘러싼 국제적인 환경 또한 낙관할 수는 없다.

하지한 비관은 절망을 만들고, 낙관은 희망을 만든다. 희망을 말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비록 겨울이지만 마당의 나무들을 만지고 물을 주는 이유가 그것이다. 희망의 꽃이 필 때까지 어루만지기를 멈추지 말 일이다.

양희은의 노래 중에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이라는 노래가 있다. 잔잔한 내레이션으로 읊조리듯 흐르는 가사 중에 가슴을 파고드는 소절이 있다.

‘난 내가 아는 제일 높은 봉우리를 향해 오르고 있었던 거야/너무 높이 올라온 것일까 너무 멀리 떠나온 것일까 얼마 남진 않았는데/잊어버려 일단 무조건 올라보는 거야 봉우리에 올라서서 손을 흔드는 거야/고함도 치면서 지금 힘든 것은 아무 것도 아니야/저 위 제일 높은 봉우리에 늘어지게 한숨 잘 텐데 뭐/허나 내가 오른 곳은 그저 고갯마루였을 뿐 길은 다시 다른 봉우리로.’

세밑에 제주에서 공연을 한 그녀는 이 노래가 불리게 된 배경을 소개했다. 1984년 올림픽에 출전한 금메달 유망주들이 메달 획득에 실패하고 좌절하는 모습, 의외의 선수들이 메달을 획득한 것을 조명하는 것에 대한 다큐멘터리의 주제가였다고.

꿈을 잃은 사람들은 내일에 대한 기대마저 접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꿈에는 결코 완성이란 없다. 꿈이 이루어진다고 목 터지게 외쳤던 2002년 월드컵이 그랬다.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 그것은 현실이 되고, 사람들을 또 다른 꿈을 꾼다.

‘무지개를 좇는 소년’의 이야기가 세월이 흘러도 명작으로 인정받는 것은, 그 이야기 자체가 우리들의 인생이기 때문이다. 무지개를 잡았다고 여기는 순간, 무지개는 또 그만큼 멀리 달아나서 찬란한 색채를 뿜어내고 있기 때문에 다시 그곳으로 달려가는 것이 삶.

그런데 꿈이니 희망이니 하는 말을 하면, 그것은 젊은이들의 전유물인 듯 생각하는 경우가 흔하다. 하지만 죽기 전까지는 꿈이나 희망을 접을 수 없는 게 또한 인간이다. 꿈을 접는 순간 생명이 다하는 게 인간의 속성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지난해 리우올림픽 펜싱 에페 종목에 출전한 박상영 선수는 지켜보는 모두가 도저히 이길 가망이 없다고 여기는 경기에서 ‘할 수 있다’는 주문을 되뇌면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경기에 임해 첫 금메달을 획득하여 좌절에 익숙한 우리 국민들에게 꿈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주었다.

이것이 꿈과 희망의 힘이 아닐까.

‘아무거나 붙잡고 희망이라 우겨라’는 것은 차동엽 신부의 말이다. 허무할 수도 있는 말이지만, 희망이 없는 것보다는 허황할망정 아무거나 정하고 그것을 향해 노력하다보면 비록 성취하지 못할지라도 가까이 갈 수라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말이다. 숟갈론이 어쩌고 하면서 지레 포기하기보다는, 어떤 것이라도 정하는 것이 훨씬 나은 삶을 만들어주지 않을까. 봄이면 어떤 꽃을 피우시렵니까?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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