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회에 부정 아닌 '평화·평등·공정함' 키워야"
"이 사회에 부정 아닌 '평화·평등·공정함' 키워야"
  • 변경혜 기자
  • 승인 2017.01.01 21:0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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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인터뷰> 윤구병 보리출판 대표

[제주일보=변경혜 기자] 윤구병 보리출판 대표(73)의 별명은 농부철학자다. 거친 손마디를 보면 어지간한 농사꾼 같고 그가 토해내는 삶을 들여다보면 진지한 철학이 묻어나 철학하는 농부인지, 농사짓는 철학가인지 헛갈린다. 그런 그가 2017년 함께 나누고 싶은 화두는 ‘평화’라며 “제주가 육지의 힘에 밀리지 않고 제주인이라는 자부심으로, 제주인의 힘으로 보란 듯이 자율적이고 생산적인 공동체를 만들어 제주도가 아름다운 평화마을 자체가 되길 소망한다”고 말했다.<편집자주>

두꺼비 같은 얼굴, 햇볕에 흙빛으로 그을린 피부색. 윤구병 보리출판 대표는 “웃는 재주가 있다”며 연신 웃어댔다. 눈가의 주름은 밭고랑처럼 깊다.

‘나무 한 그루 베어낼 가치가 있는 책을 만들자’ ‘다른 출판사와 경쟁하지 말자’ 보리출판의 원칙이다. 덕분에 1988년에 세워진 보리출판에서 나온 출판물은 300종 남짓이다. 큰 출판사는 한 해 동안 500종 이상 만드는 곳도 있다. 대신 수익성이 떨어져 다른 출판사가 내기 힘든 책, 그 빈 공간을 메꿔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보자며 지금까지 달려왔다. 게다가 2012년 대통령 선거당시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구호 ‘저녁이 있는 삶’을 진짜 만들어보자며 ‘아침 9시 출근-오후 4시 퇴근’의 6시간 근무 체계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야근을 밥먹듯하는 출판계에서, 임금 삭감도 없이 말이다. 4시에 퇴근하는 아무개는 놀이터에서 아이들과, 부엌에서 아내와 시간을 함께 해 육아와 가사를 분담한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윤 대표는 충분히 조명을 받았다.

윤 대표를 조명하는 또다른 것이 변산공동체다.

정년이 보장된 국립대학 교수직을 그만두고 전북 부안군으로 들어가 농사를 지으며 생산공동체로, 대안학교를 만들어 교육공동체에서 살아온 지 이제 20년이다. 한 세대만큼은 지나야 ‘공동체가 자리잡는 거’라는 그는 ‘아직 10년이 남았다’고 말한다.

“살리려고 가르치고, 살아남으려고 배우지요? 지금 아이들이 살아남으려고 배우나요? 이미 성장만을 요구하는 경제구조는 종착역에 다다랐어요. 곧 우리 미래는 아이들 절반이 농촌에서 농사를 지어 1차 생산에 뛰어들 수밖에 없을 겁니다. 헌데 우리 농촌은 가장 힘없는 노인들이 몸을 움직이며 먹을 것을 키워내는데, 아이들과 청년들은 먹으면서 머리만 굴리는 교육을 받고 있지요. 기운 넘치는 젊은이들이 몸을 움직이며 늙은이들은 지혜를 사용하는 게 정상이 아닌가요.”

그는 “교육은 스스로 먹고 살 수 있도록 앞가림하는 힘을 길러주고, 누군가와 서로 도우며 살아야 한다는 두 가지, 그게 궁극의 목표지요. 교육받은 청년들이 사회에 나오지만 실업과 비정규직으로 살아갑니다. 도시사회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요. 진짜 교육은 자연에서만 가능하고 그것이 평화의 시작입니다”라고 말한다.

윤 대표는 특히 “이제 우리의 정치, 권력은 진보든 보수든 간에 농촌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한 걸음도 발전할 수 없는 단계에 와 있다. 우리나라 식량자급률은 20% 수준, 그 중에서도 쌀을 제외하면 5% 미만이지요. 대안이 무엇일까요?”라고 되묻는다.

일설이 길었다며 제주의 이야기를 꺼냈다.

“1963년 대학 1학년때 제주에 무전여행을 처음 왔었어요. 아스팔트길이 거의 없었던 걸로 기억해요. 그때만 해도 중산간 이상은 소나 말을 방목하고, 마을공동목장이나 오름이 모두 공유지였지요. 그런데 지금은 외부자본, 거기엔 중국이나 일본자본들이 하나씩 야금야금 사들이고 있지요. 이게 50년 동안 계속 돼 왔는데, 지금은 그 속도가 더 빨라졌지요. 영국의 엔클로저운동을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요. 제주는 급격하게 도시화되고 있지요. 제주사람들 스스로가 토지공유화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할 때입니다. 지금 육지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제주도를 걱정하고 있어요. 그 사람들을 날줄과 씨줄로 엮어서 제주를 지키는 문밖의 든든한 울타리로 만들어야 해요.”

제주는 스스로 공동체를 만들어갈 역량이 있다고도 했다.

“동서고금의 역사를 보면 항쟁은 아무데서나 일어나지 않습니다. 제주4·3항쟁의 역사만 봐도 그렇고, 얼마전 제주에 두 번째 문을 연 꼬마평화도서관만 봐도 제주인들은 자율적이고 생산적인 공동체를 만들어나갈 수 있다고 봅니다. 육지사람들에 밀리지 않고 제주인이라는 자부심으로 제주특별자치도를 만들었잖아요. 평화를 만들어가는 유전자가 있다는 거지요.”

그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콩 심은데 콩이 나지, 팥이 날까요? 이 사회에 전쟁이나 불평등, 부정을 키워야 할까요? 아니면 평화와 평등, 공정함을 키워야 할까요?”

 

윤구병 대표는…

1943년 전라도 함평에서 태어났다. 아홉째 아들이라 아홉 구(9)병이란 이름을 갖게 됐다. 한국전쟁 때 위로 형 셋은 북한군에, 또 형 셋은 국군에 의해 희생돼 아버지는 그를 농사꾼으로 키우려 했다. 어렵사리 학교에 다니며 서울대 철학과에 입학했고 방황하는 청년기를 맞았다.

대학원을 마치고 처음 입사한 곳이 초창기 한국 브리태니커회사였다. 여기서 한국 잡지 역사의 획을 그은 ‘뿌리깊은 나무’ 창간에 참여하고 편집장을 역임했다.

1981년 충북대 철학과 교수, 1989년 한국철학사상연구회를 만들어 서울대 교환교수를 지내며 15년간 대학강단에 섰다.

1988년 보리출판사를 만들어 어린이이야기를 담아내고 있으며 현재 대표를 맡고 있다. 노동환경에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어 2012년부터 하루 6시간 근무환경을 만들어내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일주일의 반은 출판사 일을 보고, 나머지 반은 교수를 그만두고 1996년 전북 부안에 만든 생태주의 ‘변산공동체’에서 농사와 집필활동을 하고 있으며 ‘문턱없는 밥집’ ‘도서관운동’을 통해 나눔과 연대, 평화운동 등을 활발히 이어가고 있다.

변경혜 기자  good249@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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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구 2017-01-02 19:15:27
좋고유익한 기사를 올리셨네요
젊은이는 힘으로 농촌에서일하고 노인은 경험을 살려
머리로 일해야된다는 말은 참좋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