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특집]제주 광장의 시작, 옛 도심의 상징…근현대사 애환 오롯이
[신년특집]제주 광장의 시작, 옛 도심의 상징…근현대사 애환 오롯이
  • 현봉철 기자
  • 승인 2017.01.01 17: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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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관덕정 광장

[제주일보=현봉철 기자] 제주인들은 일상생활 속에서 이웃들과 함께 숨쉬는 ‘공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공간에서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만들며 어떤 이는 추억을, 어떤 이는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시간을 갖습니다.

올 한해 화려한 부활을 꿈꾸는 제주의 옛 도심을 중심으로 도민들의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생활문화 속 공간을 찾아 제주의 문화와 예술, 생활사, 사람 사는 이야기 등을 듣고 올바른 도시재생의 방향을 함께 고민하고자 합니다.

또 제주 원도심에 관한 도민들의 기억을 공유하고 과거 추억 속의 공간과 대상을 씨줄과 날줄로 엮어 원도심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도민 여러분 모두 제주 원도심에 대한 기억과 사진, 자료 등을 갖고 계시면 제보를 부탁드립니다. 여러분의 소중한 제보들이 제주 원도심을 추억하고 살리는 밑바탕이 될 것입니다.<편집자주>

광장(廣場)의 사전적 의미는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있게 거리에 만들어 놓은 넓은 빈터이다. 그러나 다른 뜻으로는 여러 사람이 뜻을 같이해 만나거나 모일 수 있는 자리를 비유적으로 나타내기도 한다. ‘대화의 광장’, ‘만남의 광장’ 등이 그 예이다.

광장은 ‘물리적 공간’으로서의 의미를 벗어나 광장에 모인 사람들이 서로 의견을 공유하고 토론하면서 담론을 형성할 때 비로소 ‘다양성의 공간’으로 거듭난다.

그런 의미에서 제주 광장의 첫 시작은 관덕정 앞이라고 할 수 있다.

제주시 원도심의 중심가에 자리한 관덕정(觀德亭)은 제주에 현존하는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건물로 보물 제322호이다. 조선 세종 30년인 1448년에 제주목사인 신숙청(辛淑晴)이 병사들을 훈련시키기 위해서 지었다.

‘관덕(觀德)’은 예기(禮記)의 사의(射儀)편에 ‘사자소이관성덕야(射者所以觀盛德也·활을 쏘는 것은 훌륭한 덕을 보는 것이다)’에서 지은 이름이다.

관덕정은 창건 이후 제주의 역사와 제주인의 삶에서 떼놓을 수 없는 존재이자 공간이 됐다.

파리의 개선문과 같은 옛 제주도심의 상징공간이자 제주의 근현대사를 제주사람들과 함께한 역사적 공간이다.

탐라순력도에 나타난 관덕정은 제주 인재들을 등용하던 시험장소였고, 제주의 무사들이 활쏘기 시험을 치렀던 곳이다. 또 제주목사가 관리들의 치적을 평가하고, 조정에 진상할 말을 최종 점검하는 장소였다.

관덕정이 위치한 곳은 제주의 전통적인 중심지였던 칠성통과 가까웠고, 제주도 행정의 중심인 제주목관아 인근이었다. 제주도청과 경찰서, 식산은행이 인근에 위치해 있고, 광복 이후에는 관덕정 앞에 미군정청이 설치돼 제주의 근현대사의 중요한 일들이 관덕정 광장에서 일어났다.

1910년 일부 천주교도들의 횡포와 봉세관의 조세 수탈에 항거해 일어난 신축민란(이재수의 난)의 무대가 관덕정 광장이었다. 광복 이후 제주역사의 최대 비극인 제주 4·3사건의 기폭제가 됐던 3·1절 기념식이 열린 역사공간이며, 1949년 6월 무장대를 지휘했던 무장대 사령관 이덕구의 주검이 나무 십자가에 매달려 4·3 무장대의 예고한 곳도 관덕정 광장이었다.

한국전쟁 기간 계엄사령부가 관덕정에 설치됐고 이승만 대통령이 제주에 올 때 도민환영대회의 단골장소도 관덕정 광장이었다, 또 1990년대까지 도민과 재야단체의 집회장소로도 활용됐다.

한때 제주도의회 의사당과 제주도청, 북제주군청으로 사용됐으며 제주미공보원이 입주하기도 했다.

변변한 문화공간이 없던 1950~1960년대 각종 전시회가 열리고 백일장과 사생대회가 열리기도 했으며, 오늘날의 ‘탐라문화제’ 전신인 한라문화제가 열리기도 했다. 제주문화예술인들이 모여 전국예술단체총연합회 제주도지부를 결성했으며, 탐라국 입춘굿놀이가 열리기도 했다.

관덕정 광장은 제주사람의 삶과 밀착한 공간이기도 했다. 1906년 제주에 최초로 오일장이 관덕정에 개설됐고, 1914년 제주에 동서로 일주하는 신작로가 개설될 때 그 출발이 관덕정이었으며, 1962년 제주에 시내버스가 처음 등장할 때 기점도 관덕정이었다.

1970~80년대 금융기관이 밀집돼 융성한 금융가를 이루기도 했다.

1993년 3월 관덕정 인근의 제주목관아지 일대가 사적 제380호로 지정돼 2002년 12월 제주목관아의 복원공사가 완료됐다. 이 과정에서 제주 출신 재일교포들이 기증해 관덕정 광장 앞 분수대가 철거됐다. 관덕정 광장의 분수대는 한동안 제주도민들에게는 만남의 광장으로, 관광객들에게는 제주 관광의 주요 코스이자 기념사진 촬영장소였다.

제주시 원도심의 쇠퇴와 함께 관덕정 광장의 의미도 많이 퇴색했다.

예전처럼 제주의 중심지 역할을 하지 못하면서 제주의 고유한 광장 문화가 사라지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관덕정 광장은 최근 제주시 원도심 도시재생사업의 핵심으로 주민 주도로 복원될 계획이다.

현봉철 기자  hbc@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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