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경제 大통로 꿈꾸는 중국 고대 문명의 중심
21세기 경제 大통로 꿈꾸는 중국 고대 문명의 중심
  • 부남철 기자
  • 승인 2017.01.01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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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 실크로드 여는 시안 (上)

[제주일보=부남철기자] 중국 한(漢)나라 때 처음 개척돼 동양과 서양을 이어주며 비단과 도자기가 아랍세계로 전해지고 불교와 기독교가 중국으로 들어왔던 실크로드. 당(唐)나라 시절 천축에서 불경 600권을 들여왔던 현장법사, 8세기 인도와 중앙아시아를 횡단하고 왕오천축국전을 쓴 신라 고승 혜초가 걸었던 길. 이 길의 시작이었던 국제도시 시안(西安).
그리스의 아테네와 이탈리아의 로마, 이집트의 카이로와 더불어 세계 4대 고대 도시로 꼽히며 중국을 대표하는 역사와 문화의 고장이다.
중국이 야심차게 추진하는 ‘일대일로(一帶一路)’ 사업에 따라 시안이 신(新) 실크로드의 중심으로 떠오르면서 21세기 경제 대통로로 부활하고 있다. 역사도시에서 물류과 관광의 세계적 중심지로 거듭나고 있는 중화 문명의 고향인 시안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2회에 걸쳐 살펴본다.  【편집자주】
 
▲시안의 역사
“구중궁궐 대문이 활짝 열리니, 만국 사신들이 황제에게 절을 올리네(九天閶開宮殿 萬國衣冠拜冕旒).”
당나라 시인 왕유가 당시 수도 장안, 지금의 시안을 묘사한 시구이다.
중국 산시성 성도인 시안은 국토의 한 가운데 위치한 이유로 주(周), 진(秦), 한(漢) 나라 등 역대 13개 왕조의 수도였다. 과거 장안(長安)으로 불린 이 도시는 무려 1100년 간 중국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중심지였을 만큼 중국의 대표적인 고도(古都)로서 인류 문화유산의 보고이기도 하다.
저국강 중국 신화통신사 시안지사 부사장은 “시안은 중국 문화의 중심이며 시안을 이해하면 중국 문화를 이해할 수 있다”라며 “시안은 고대 문화의 보존과 미래 산업의 조화를 통한 중국 발전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죽은 진시황을 지키는 진시황 병마용
세계 각지에서 관광객을 끌어모으는 시안의 대표적 역사 유적으로 규모나 예술적 가치에 있어서 감탄을 불러 일으킨다. 린퉁현(臨潼縣)에 있는 진시황릉원 동쪽 담에서 1㎞ 떨어진 곳에 위치한 병마도용을 수장한 지하 갱도를 말한다.
진시황이 사후에 자신의 무덤을 지키게 하려는 목적으로 병사와 말의 모형을 흙으로 빚어 실물 크기로 제작했다.
진시황릉 유적지의 규모는 방대하다. 입구에서 황릉까지 전기차를 타고 가야할 정도다.
1호갱 발견 2년 뒤인 1976년에는 1호갱 바로 옆에서 길이 96m, 폭 84m의 2호갱이 발견됐다. 이후 잇따라 3호갱과 4호갱도 발견됐으나 중국 정부는 발굴을 미뤄 놓고 있다. 병마용갱에 전시된 테라코타가 시간이 지나면서 채색이 흐려져 발굴 당시의 원형을 잃어가고 있어 기술적으로 완벽하게 발굴하고 보존할 수 있다는 확신이 설 때 발굴하려는 것이다. 저 부사장은 “병마용은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 빌 크린턴 전 미국 대통령,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등이 찾을 정도로 외국정상들의 중국 방문시 찾는 명소”라고 설명했다.
 
▲보전이 완벽한 명대의 건축, 종루
서안의 상징적 건축물일 뿐 아니라 예술적으로나 역사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종루는 시안중심에 위치한 동서남북 사방이 연결되어 있는 교통중심지역이다.
우리나라의 동대문이나 남대문과 비슷한 위치로 총 높이가 36m, 총 면적이 1377.4㎡다.
종루는 명태조 주원장 홍무제 17년인 1384년에 시간을 알리기 위해 건설된 것으로, 외관 3층, 내부 2층 정방형의 누각형태다.
이 건물의 특징은 못을 사용하지 않고 건물을 올렸다는 것인데, 사면에 회랑이 둘러져 있고 내부에 계단이 있어서 올라가 서안시내를 둘러볼 수 있게 해 놓았다.
 
▲높고 두터운 시안 역사의 상징, 성벽
6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시안 성벽은 중국에서 보전하고 있는 건축물 중에서 가장 완전한 고성 중의 하나다. 전체 길이가 13.6㎞, 높이가 12m, 폭이 15m로 높고 두터운 고성벽이 이곳의 가장 큰 특징이다. 이 성벽은 명나라 홍무제 3년에서 11년까지에 걸쳐 건설됐는데 동서남북의 4개문이 그대로 보전돼 있고, 주변에는 넓고 깊은 호성하(護城河)가 흐르고 정문에서 시작되는 정로를 가로지르는 조교(弔橋)가 놓여있다.
저 부사장은 “서안성벽은 단지 역사적인 건축물의 의미를 넘어서 공원과 성, 길, 물이 어우러진 공원이 조성돼 더 큰 의미를 가지게 됐다”라며 “지금도 성벽을 완벽하게 보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양귀비와 현종이 겨울을 보내던 화청지
중국에서 현존하는 최대규모의 당나라 왕실 원림이다. 고대부터 수려한 풍경과 질 좋은 지하 온천수 때문에 역대 제왕들의 관심을 받아왔던 장소이다.
화청지 동쪽구역에는 정말약(郭沫若)이 쓴 ‘화청지’ 금자편액이 걸려있으며, 구역 내에는 하화각, 비하각, 오간정 등의 건축물이 있다.
그 중 온천석벽에 있는 온천송비(溫泉頌碑)는 중국 비석예술 중에서도 우수한 예술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불교 경전의 보고 대안탑·소안탑
당 고종은 어려서 여읜 어머니 문덕황후를 기리기 위해 648년에 자은사(慈恩寺)를 건립했다. 현장법사가 645년 인도에서 가져온 산스크리트 경전을 번역하고 보관하기 위해 경내에 대안탑(大雁塔)을 비롯해 다양한 건물이 세워졌다. 4각 7층의 누각식 전탑인 대안탑은 각층 사방에 있는 아치형의 작은 창으로 시안 시내의 전망을 감상할 수 있다. 소안탑은 707년 고종의 아들 예종이 아버지를 공양하기 위해 세운 천복사(薦福寺) 경내에 있는 탑으로 원래 높이는 15층이었으나 1556년 산시대지진 때 훼손돼 현재는 13층 높이의 탑으로 남아 있다. 의정(義淨)이 인도에서 많은 경전을 가져와 이곳에서 56부 230권을 번역했다고 알려져 있다.  대안탑과 상반된 모습의 소안탑은 처마 간격이 좁은 밀첨식으로 지어졌다. 내부는 좁고 가파르지만 나름의 멋을 느낄 수 있다. 직선적이고 남성적인 대안탑과 완만한 곡선을 그리는 여성적인 느낌의 소안탑을 비교하며 둘러보는 것도 재미있다.                                   
 글·사진=중국 시안 부남철 기자
 그래픽=김경호 기자

 
 

부남철 기자  bunch@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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