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끝나지 않은 ‘길’
2016 끝나지 않은 ‘길’
  • 정흥남 논설실장
  • 승인 2016.12.29 15: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주일보=정흥남 기자]

요즘 이맘 때 흔히 쓰는 말로 ‘을씨년스럽다’가 있다. 날씨나 분위기가 쓸쓸하고 스산할 때 쓰는 이 말은 그 시작을 들어가 보면 1905년으로 거슬러 간다. 1905년은 아는 것처럼 일본이 강압적으로 조선과 한일협상조약을 맺은 해다.

1905년 을사년(乙巳年 )에서 ‘을사년스럽다’가 변해 을씨년스럽다가 됐다. 이른바 을사조약 체결로 사람들은 온통 침통하고 참담한 분위기에 빠졌다. 조선이라는 입장에선 아주 치욕적이고 슬픈 일이다. 그때 이후로 몹시 쓸쓸하고 어수선한 느낌이 들 때면 을사년의 그 기분 같다고 해서 ‘을씨년스럽다’고 하게 됐다.

병신년(丙申年).

이 을사년으로부터 111년이 흐른 올해 2016년이 바로 그해다. 2016년을 마감하는 요즘. 시중엔 ‘병신년스럽다’는 말이 회자된다. ‘을씨년스럽다’처럼 아직까지는 특정한 의미가 없지만, 저마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넣어 이 말을 쓴다.

비선의 국정농단으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뿌리 채 흔들렸고, 국가의 기강은 처참하게 무너졌다. 1000만명 대한민국 국민들이 저항의 촛불을 들었다. 절대·부패 권력을 주저앉히고, 그리고 민주주의를 목매 불렀다.

중앙정부가 이처럼 무너지는 새 제주에서도 크고 작은 파열음이 터져 나왔다.

 

#제주한계 되새김 시작

제주의 한계가 과연 어디까지인가 하는 근본적인 되새김이 시작됐다. 지방정부는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내세우면서 개발과 보전의 조화를 주창하지만, 현장에선 개발의 깃발이 하늘을 찌를 듯 기세를 떨친다. 자연스럽게 제주다움인 제주가치가 훼손되고 금이 갈 수밖에 없다.

막연하게만 여겨졌던 제주의 한계상황은 제주하수처리장 무단방류 사건에서 현실화 됐다. 지방정부인 제주도가 운영하는 하수처리장이 넘쳐나는 생활하수를 모두 처리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이 사태는 제주 제2공항 문제로 옮아갔다. 제주공항 인프라 확충에서 출발한 제2 공항이 난개발과 무분별한 개방의 후폭풍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당초 출발선이었던 제주공항 인프라 확충이라는 취지가 갈수록 색을 바래고 있다.

“지금도 위태위태한데 이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제주로 몰려들면, 제주가 정말 그 뒷감당을 할 수 있나” 많은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개발과 개방에 대한 피로감과 그 건너편에 있는 불안감까지 꺼내고 있다.

제주 제2공항 또는 제주 신공항 문제가 거론되던 지난 4~5년전 만 해도 제주와 타지방을 연결하는 중추 연륙교통망인 공항 인프라 확충은 제주도민 누구나 공감하는 사업이었다.

지금은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함께가는 길 간절히 소망

2016년 제주를 보는 제주안의 시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지금의 제주에 피곤해 한다. 무분별한 개발과 개방의 후유증이다.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타지방 또는 외국에서 실어 오는 것이 제주를 위해 바람직 한 것인지 되묻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갈등이 생겨나고 그 해결책으로 ‘소통’이 부각되지만, 이 또한 원론이고 원칙일 뿐 그 속으로 들어가면 답이 없다. 사람이건 조직이건 절망에 빠졌을 때 진실로 희망을 고대하고 또 이를 붙들려고 무진 애를 쓴다.

그 ‘희망’은 곧잘 ‘길’로 뜻 통한다. 사람이 걷는 길은 원래 정해진 게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다. ‘처음부터 길은 없었다. 한 사람 두 사람 걷다보면 자연스레 길이 된다’고 중국의 작가 루쉰은 말했다. 그는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된다’고 덧붙였다.

“갈 데까지 가서 더 이상 갈 곳이 없다고 생각될 때, ‘길이 없다고,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주저앉아 있을 때 어머니 품 같은 새로운 희망의 길을 본다” 패배를 당한 정치인들이 즐겨 쓰는 말이지만, 절망에 빠진 사람들이 희망을 찾아 되뇌는 자기다짐의 경구이기도 하다.

내일 하루가 지나면 2016년이 끝나지만. 끝나도 끝난 게 아니다. 2016년 보다 나은 2017년 희망의 길을 그린다.

그 길 위에선 갈등하고 경쟁하는 무엇이 됐건 마주하는 두 개가 ‘함께가는’ 길이 됐으면 좋겠다고 소망한다.

정흥남 논설실장  jhn@jejuilbo.net

Tag
#N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