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세대의 부끄러운 유산
어버이세대의 부끄러운 유산
  • 뉴제주일보
  • 승인 2016.12.20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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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환. 제주지역사회교육협의회 부회장

[제주일보] 퇴근길 택시를 탔는데 청문회 뉴스가 보도되고 있었다. 막장 드라마 같은 국정현실에 한숨을 푹 내쉬고 있자니 나이 지긋하신 기사님께서 “우리나라 부자는 서민을 등쳐먹고 살고, 나라는 지식인들이 다 망치고 있다”하신다. 속으로 ‘참 멋진 분이시네’ 생각하며 “맞습니다!!” 하고 맞장구를 쳤다.

칠순은 족히 넘어 보이시는 어르신의 말씀이 “이것이 다 교육이 잘못돼서 그렇다”고 하신다.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요…’ 하며 공감하는 순간, 이어지는 말씀이 나를 놀라게 했다. 이 모든 것이 국민 정신교육이 잘못되어서 그렇다는 말씀을 하시며, 전두환 대통령이 만들었던 삼청교육대를 부활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당신께서 조교를 하면 제대로 정신교육을 시켜 놓을 수 있다고 하신다. 당황한 나의 표정에 어르신께서는 정치인 모두가 사기꾼이고 나쁜 놈이라면서 비판의 대상을 바꾸신다. 나는 그저 “예, 예” 하며 맞장구를 쳐드릴 뿐이었다.

작금의 국정농단 상황의 비정상을 공감하면서도 문제를 보는 시각과 해법은 이렇게 다르다. 갑자기 비판적으로 돌아선 종편 언론을 보면서 어르신처럼 많은 분들이 ‘인지부조화’를 겪고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요즘 야당들 너무해”라고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외침에서 며칠 전 그 인지부조화를 처음 느꼈다. 현 상황에 인지부조화를 겪는 사람의 감정은 대통령과 여당의 잘못을 탓하는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정치인이 되면 모두가 사기꾼이고 나쁜 사람이 된다는 자기합리적 논리를 만들어 낸다. 작금의 상황에 ‘대통령이 뭔가 많이 잘못했구나’ 인정하면서도 미운 감정은 엉뚱하게도 야당 정치인에게 향하고, 촛불도 이제 그만하면 됐다는 생각이 드시는 것이다.

80% 이상의 국민들이 대통령이 잘못했다라고 응답하고, 100만 촛불을 넘어 200만 촛불을 보면서 우리의 민주주의가 진일보하는 계기가 되겠구나 하는 착각이 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지부조화’는 아직도 대통령을 지지한다는 5%에게만 국한되는 상황이 아니다. 유시민 작가의 말대로 나라를 팔아먹어도 흔들리지 않을 거라는 적어도 30%의 콘크리트 지지층이 느끼는 감정이다. 더욱이 50대 이상에선 절반에 가까운 국민이 느끼는 감정일지도 모른다.

일제강점기와 전쟁을 치르며 황폐화된 춥고 배고픈 나라에서 고도의 성장을 이끌어 낸 아버지 세대의 자부심과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감사와 존경의 마음은 가짜보수 정치를 구별하려 하지 않는 근본 원인이며 결코 극복하기 쉽지 않은 인지부조화의 원인이다. 압축성장의 후유증은 고스란히 손자세대의 몫으로 다가와 청소년들이 ‘헬조선’을 외치고 있는 원인이 되고 있지만 더 큰 어려움을 극복하고 살아온 할아버지 세대는 그 청년들의 심정을 헤아리지 못한다.

국민교육헌장을 암기하고, 주입식 교육을 받으며 말 잘 듣는 국민으로 자란 아버지 세대가 저임금으로 온갖 고생 끝에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어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아버지 세대 덕분에 우리나라는 경제규모 세계10위로 충분한 양적성장을 이루었다. 아직도 저임금을 우리의 경쟁력이라 믿으며 노조라는 단어가 부정적으로 느껴진다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익부 빈익빈은 당연한 논리라는 생각이 아직도 든다면 여전히 ‘인지부조화’를 극복해야할 세대인 것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저 부끄러운 어버이연합에 진배없을 지도 모른다. 이제는 할아버지가 된 아버지와 아들세대인 우리는 젊은이들이 살아갈 미래의 대한민국을 위해 인지부조화를 반드시 극복해야 한다.

단 한 사람에 의해 좌지우지 된 국정농단 사태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공안통치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우리의 민주주의를 70년대로 되돌린 어버이세대에 있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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