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가맨을 찾아서
슈가맨을 찾아서
  • 뉴제주일보
  • 승인 2016.12.05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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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옥. 도서출판 장천 대표

[제주일보] 10㎝도 안되는 작은 촛불이 이렇게 따스하고, 이렇게 밝은 줄 새삼 느끼게 되는 요즘이다.

이름도 다 되뇔 수 없이 많은 등장인물들과 설마하던 추측을 벗어나지 않는 줄거리들이 난무하는 뉴스화면에 몸도, 마음도 지쳐가는 시간이면 습관처럼 영상물로 도피하곤한다. 그러다 만난 다큐멘터리 한 편에서 위안과 용기를 얻게 됐다. ‘서칭 포 슈가맨’이라는 다큐멘터리이다. 한동안 인기를 끌었던 TV프로그램이 다름 아닌 이 다큐에서 힌트를 얻었다는 것은 나중에 알게 됐다. 슈가맨이란 지금은 잊혀졌지만 한 시대를 풍미한 가수를 뜻한다는 것을 알게된 것도 그 프로그램을 통해서다.

이 다큐의 주인공인 슈가맨은 로드리게스라는 미국의 가수이다. 그를 기억하는 음악 관계자들은 그를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밥 딜런보다 더 나은 가수였다고 추켜세웠지만 당시 그의 발매 음반은 고작 여섯 장밖에 팔리지 않았다. 무명가수에 불과했던 그는 두 장의 앨범을 내고 자신의 무대를 건설현장과 오물처리현장으로 바꾼다. 노동자로 삶을 살아가던 그는 까맣게 몰랐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이라는 나라에서 자신은 최고의 인기가수이자, 스타라는 사실을. 그뿐 아니다. 그는 죽은 인물이었다. 그것도 무대에서 마지막 순간을 선택한 비운의 가수로 알려졌다. 그는 전설적인 아티스트의 반열에 올라 있었다.

마침내 그를 찾아나선 두 명의 열성팬에 의해 그는 모습을 드러낸다. 반전도 이런 반전이 없다. 우울증에 시달리다 권총자살을 했다는 풍문 속의 그는 그저 그가 살던 디트로이트에서 50대 중반의 건강한 육체노동자로 살아가고 있었다. 남아공으로 처음 날아간 그는 최고의 인기를 실감하며 오랜 팬들을 만난다.

여기까지가 주요 줄거리다. 하지만 내게 이 인물이, 이 다큐가 주는 감동은 그 후에 이어진 그리 많지 않은 분량에 있었다. 반전은 실로 이제부터다. ‘이제 화려하고 영광스런 스타의 삶으로 오랜 무명의 시간을 보답받겠구나’라는 나의 천박한 짐작과는 달리 그는 이전과 똑같은 삶을 유지한다. 남아공으로 연주여행을 다니는 것이 달라진 점이겠지만 그것이 그의 일상을 점령하진 못한다.

뒤늦게 찾아온 성공과 열광에도 최소한 영상 속 그는 담담해 보인다. 무명시절에 대한 회한도 내비치지 않는다. 자신도 모르게 스타로 떠받들어 졌던 타국에서의 명성에도 조금의 허세나, 도취도 없어 보인다. ‘나 사실은 이런 사람이야’라고 한 마디 하고 싶기도 하련만 그는 그 비슷한 말도 하지 않는다. 아무 것도 피하지 않고 아무 것도 자랑하지 않는다. 어떻게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의 답은 자녀들의 인터뷰에서 짐작할 수 있었다.

자녀들은 그를 매우 훌륭한 아버지로 증언한다. 막노동을 하면서도 자녀들을 예술의 세계로 안내하고, 꿈을 심어주던 아버지다. “가난하다고 해서 꿈마저 가난한 것은 아니다”라는 명대사는 이렇게 탄생했다. 그 아버지의 삶으로 보아 그가 얘기하는 ‘가난하지 않은 꿈’이란 성공과 부유, 권력 따위를 뜻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성공과 부유, 권력 이후에도 흔들림 없는 꿈, 욕망에 휘둘리지 않는 꿈이다. 그런 꿈이 있기에 슈가맨은 치욕적인 음반 판매량에도 원한을 품지 않고, 예기치 못한 명성에도 담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성공과 부유, 권력은 그저 삶의 한 내용에 불과하다고 치부할 수 있는 힘, 삶을 삶답게 해 주는 어떤 것이 있다고 믿는 것이야말로 가난하지 않은 꿈이다.

날마다 거짓과 나락, 끝간 데 없는 탐욕의 스토리텔링으로 어지럼증 나는 현실속에서 ‘가난하지 않은 꿈’이 희귀해진 세상을 대면하는 슬픔에 젖게된다.

이 슬픔을 다시 가난하지 않은 꿈으로 바꿔 놓기 위해서 주말마다 촛불들은 모이고, 행진하고, 물결을 이루는 것이라 믿는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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