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사진첩
추억의 사진첩
  • 뉴제주일보
  • 승인 2016.12.01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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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진주. 중문고등학교 교사

[제주일보] 나의 애장품을 생각해 보니 추억의 사진첩 하나가 있다.

친정아버지 칠순잔치를 맞아 우리 4남매가 함께 만든 리마인드 웨딩 사진이다.

나의 원가족은 부모님과 큰 오빠, 언니, 작은 오빠, 그리고 나다. 2남 2녀의 행복한 가정에서 막내 딸로 곱게 자랐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 사랑과 오빠 둘, 언니의 사랑을 잘 받아서인지 내 인생에 있어서 굴곡은 별로 없었다.

특히 부모님이 워낙 긍정마인드이고 기독교가정에 장로님과, 권사님인 두 분의 기도덕으로 오늘날까지 큰 어려움 없이 잘 살고 있다.

아버지께서 70세 되는 해에 엄마와 리마인드 웨딩을 하고 싶다고 하셨다. 두 분이 결혼 하실 때는 전통혼례와 신식혼례가 병행하던 때인데 외할아버지가 한학자이다 보니 당연히 전통을 고집하셨다. 그래도 엄마는 여성이었다.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어 보는 게 소원이시란다.

우리 자녀들은 모두 동의를 하였고 부모님만 드레스를 입을 것이 아니라 4형제·자매 모두 드레스 코드를 맞추어 사진 촬영도 하고 웨딩파티도 열기로 하였다.

언니 오빠들 자녀는 그래도 모두 컸는데 문제는 우리 막내였다. 돌이 막 지나 겨우 걸음마를 뗀 상태였다. 바쁜 형제들의 스케줄을 맞추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라 겨우 일정을 맞추었고 우리도 날짜에 맞춰 제주에서 서울로 갔다.

하루는 종일 웨딩쵤영을 하고 하루는 파티를 하기로 했다.

촬영 날 아침 여자들은 드레스 코드이다 보니 화장을 하고 머리 손질을 위해 미용실을 예약하였다.

남자들은 미리 예약해 둔 턱시도만 입으면 되니 시간은 여자들보다 훨씬 여유가 있었다. 사진촬영도 이왕이면 예쁜 곳을 찾다 보니 경기도에 위치한 한 식물원을 예약하게 됐다.

일사천리로 진행되어야 하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우리 막내가 감기로 열이 약간 있는 상태였다.

약을 먹이고 출발했는데 아이 상태는 별로 호전되지 않았다.

그리고 드레스를 입고 메이크업을 한 상태라 엄마인 내가 잘 안아 줄 수도 없는 상황이라 계속 아빠하고만 지내야 하는 게 아이 입장에서는 더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야외에서 자주 바람을 쏘이다 보니 아이의 몸은 점점 안 좋았지만 강행하여 사진을 찍었다.

우리 가족 사진을 비롯해 부모님과 전체 가족 사진, 부모님께는 각 가정의 10장 정도의 사진들을 4가족과 부모님 가족 하니 50매 정도 되는 분량이었다.

하루 종일 촬영을 하고 마지막에 전체 사진을 찍는데 막내의 상태 때문에 그냥 아빠가 안고 있는 사진밖에 연출이 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 각 집에 앨범이 도착했고 전체 가족사진은 친정집에 대형사진으로 걸려 있다. 그런데 그 사진 속에 우리 아이는 아빠 품에 안겨있어 뒷모습뿐이다.

아이는 그 사진을 보며 늘 마음에 걸렸었나 보다. 5살이 됐을 때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루는 어린이집에서 놀다가 잘못해서 턱을 다쳐 7바늘을 꿰매게 되는 일이 있었다.

피가 줄줄 흐르는데 병원 응급실에 가서 X-레이 사진을 찍으면서 기사가 “사진 찍을게” 했더니 아이가 울다가 얼굴을 활짝 웃으며 한손으로 V를 그리는 것이 아닌가. 할아버지 집에 걸려 있는 사진이 늘 마음에 걸려 사진이야기만 나오면 활짝 웃으며 사진포즈를 취한다.

부모님의 연세가 80세가 넘고 다시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자녀들이 이제 군에 입대하고, 외국에도 나가고 하니 모두 한자리에 모이기는 어렵다. 그리고 부모님의 모습도 70대가 가장 아름다우셨던 것 같다.

가끔 추억의 사진첩을 보며 ‘우리 그 때 참 잘 했어’라고 생각한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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