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의회 그 안의 ‘비선’
지방의회 그 안의 ‘비선’
  • 정흥남 논설실장
  • 승인 2016.12.01 17:1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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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일보=정흥남 기자]

‘혼용무도(昏庸無道)’.

지난해 교수신문이 우리나라 대학교수들을 상대로 추천을 받은 ‘2015년의 사자성어’다. 뜻은 나라 상황이 마치 암흑에 뒤덮인 것처럼 온통 어지럽다는 뜻으로, 혼란스러운 사회의 책임을 군주, 지도자에게 묻는 말이다.

교수신문은 박근혜 정권이 출범한 2013년에는 순리를 거슬러 행동한다는 뜻을 가진 ‘도행역시(倒行逆施)’, 2014년에는 ‘지록위마(指鹿爲馬)’를 각각 골랐다. 지록위마 글자 그대로의 의미는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는 뜻이다. 거짓으로 윗사람을 농락한다는 의미로 곧잘 통용된다.

이달 중순쯤 발표되는 ‘2016년 사자성어’는 ‘제2의 지록위마’쯤 될 것으로 벌서부터 점쳐지고 있다. 이 선상에서 일부에서는 2013년 사자성어 후보였던 ‘이가난진(以假亂眞·가짜가 진짜를 어지럽히고 거짓이 진실을 뒤흔든다)’이 유력한 후보로 꼽힌다.

박근혜 정권의 비선실세에 의한 국정농단은 국민을 참담하게 만들었다. 이 와중에 지방권력의 한 축인 제주도의회에서 납득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제주도의회 도시환경위원회의 도시계획조례 ‘심사 유보’다.

 

#‘합리적 의문’

박근혜 정권의 비선실세에 의한 국정농단 실체가 속속 드러나면서 하루가 멀다고 나오는 게 이른바 ‘합리적 의문’이다. 그 의미를 쉽게 정리하면 ‘논리와 경험칙에 따라 누구나 다분히 가질 수 있는 의문’ 정도쯤으로 이해된다.

국민연금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찬성한 것을 두고 벌어지고 있는 최순실과 연루된 청와대의 ‘외압의혹’이 대표적이다. 또 세월호 침몰사고가 발생하던 날 박근혜 대통령이 특정 치료를 받았다는 이른바 ‘숨겨진 세월호 7시간’ 의혹도 그것이다.

최근 제주도의회 환경도시위원회 하민철 위원장은 도시계획조례 개정안 심사를 유보하면서 하수처리장 등 기반시설 부족과 사유재산권 침해 문제를 이유로 들었다. 하 위원장은 지난 9월에도 읍·면 지역 건축규제가 과도하고, 사유재산권 침해 우려가 높다면서 충분한 공론화가 없으면 (조례를) 처리하지 않겠다고 제동을 걸었다.

결국 주민의견 수렴을 위한 공청회가 다시 열렸고, 공공하수관로 연결에 예외조항이 생겨났고, 공동주택 호수에 따른 읍면지역 도로 기준도 완화됐다. 그런데도 결론은 돌고 돌아 또 ‘유보’다.

읍·면 지역 자연녹지 건축행위 제한에 따른 하수처리 및 사유재산권 제약문제는 지난 6월 도시계획조례개정안 공청회 때 공청회를 파행으로 끌고 간 개발업자 등이 내세운 ‘핵심 반대논리’다.

결국 제주도의회는 개발업자들이 내세운 주장을 엑스레이 찍은 것처럼 들춰내 조례심사를 외면했다.

 

#‘곶 됴코 여름 하나니’

적지 않은 사람들은 어슴푸레 이 말의 의미를 기억한다. 우리나라 대학교수들이 2016년 1월 1일 선택한 이른바 2016 ‘희망의 말’이다. 이 말은 용비어천가에 나오는 것으로, 해석하면 ‘꽃이 만발하고 향기로워 열매가 풍성하다’는 의미다.

2016년 새해를 맞으면서 제주도민 누구나 이 구절의 의미대로 자신과 가정 나아가 대한민국 모두에 꽃 만발하고 향기로운 열매가 풍성하기를 고대했다. 그런데 현실은 정반대가 됐다.

설마 하면서도 ‘진실로’ 믿었던 일들이 ‘거짓’이 됐다. 진실로 믿었던 사람들은 모두 바보가 됐다. 졸지에 바보가 된 전국의 민초들은 촛불을 들고 자신의 가슴속 한켠에 자리했던 무지를 내쫓고 있다.

지금 활개치고 있는 부동산 투기와 난개발은 제주가치를 갉아먹는 공공의 적으로, 더는 두고 볼 수 없는 시급한 해결과제다.

시간을 더 끈다고 ‘기발한 발상’이 나올 수 있는 성질의 문제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시간을 끌면 끌수록 개발업자들의 농간이 더 스며들고, 재미를 보는 것 또한 이들 뿐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제주도의회는 ‘합리적이고 공감할 수 있는 대안’을 요구하며 이를 미뤘다. 당연히 그 이면에 뭔가 있겠구나 하는 ‘합리적 의문’이 나온다. “왜...”

제주도의회 심사유보 주장이 액면 그대로 진실이라면 파리는 새다.

정흥남 논설실장  jhn@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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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민 2016-12-02 16:02:13
개발업자들의 농간이 염려 되세요?
그 농간을 막아야지요. 수십채씩 짓는 개발업자 하수관로 연결하라고 하세요.
중산간에 조그만 집짓고 살려는 실수요자들 집 못짓게
해서는 안되지 않나요?
결과적으로 제주시나 서귀포시로 건축수요가 몰려서 제주시 땅값 집값 오르고
교통난, 쓰레기난, 하수처리난 극심해 질텐데 그걸 원하시나요?
나는 제주시서 빠져나가 조용한 중산간에서 10평자리 집짓고 살길
원하는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