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이기는 횃불 되나
바람 이기는 횃불 되나
  • 뉴제주일보
  • 승인 2016.11.30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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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후. 작가 / 칼럼니스트

[제주일보]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 이슬처럼/ 내 맘에 설움이 알알이 맺힐 때/ 아침 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를 배운다/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떠오르고/ 한낮에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일지라/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양희은의 ‘아침이슬’이 광화문 광장에 울려퍼졌다.

촛불을 든 시민들이 청와대를 향했다. 그 중에 횃불을 든 시민들도 간혹 눈에 띄었다.

횃불(torch)은 원래 ‘타오르다’, ‘빛을 내다’는 뜻이다. 나라에 병란이나 사변이 있을 때 신호로 올리던 봉화가 바로 횃불이다.

그 횃불로 제주사회는 오랜 세월 신음하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를 통해 자신의 진퇴 문제를 국회의 결정에 맡기겠다고 했다.

이러한 박근혜 대통령을 보면서 ‘촛불’이 아니라 ‘횃불’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일고 있다.

지난 번 전국에서 벌어진 촛불집회 중 진짜로 ‘횃불’을 든 지역도 있다.

광주광역시가 바로 그곳이다. 광주시민들은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민주주의’를 위해 ‘횃불’을 들었던 옛 전남도청 앞 분수대에서 다시 36년 만에 ‘횃불’을 들었다.

어디 광주뿐인가? 박근혜 정부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집회가 열린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도 일부 시민들이 횃불을 밝히고 청와대를 향하여 행진하였다.

그렇다면 제주사회라고 횃불을 들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을 것이다.

대체 횃불의 기원은 어디서 온 것일까? 조선을 구한 이순신의 명량대첩(鳴梁大捷)에서 그 기원을 찾아보자.

왜(倭)의 야욕으로 조선천지는 처참한 인종청소가 이루어졌다.

육전((陸戰)은 코 무덤 귀 무덤으로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했다. 해전(海戰) 역시 13척의 조선의 패병선으로 왜병선 133척을 명량해전으로 상대해 승리를 거두는 것은 기적이었다.

조선이 다시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캄캄한 어둠 속에서 타오르는 유달산 노적봉(盧績峯)의 횃불이었다.

노적봉 횃불은 장렬하게 피워 올라 심리전으로 왜병선 133척을 일거에 침몰 시켜 대승리를 이루었다. 오직 횃불 탓이다.

‘우리의 횃불이 모든 사람을 불러내어/ 그들을 길가로 나오게 하자/ 오늘 밤/ 이 도시에 한 사람도 집에 남지 않게 하자/ 모든 사람이/ 다 나와 우리 이 불꽃 행렬로 들어오게 하자.’

중국시인 애청(艾靑)의 시 ‘횃불’은 주인공 당니(唐尼)가 인민대중과의 집단활동을 통해서 점차 혁명에 대한 신념을 굳히는 과정을 그린 것이다.

횃불시위를 통해 역사적 현실을 깨닫고 다양한 계층의 군중과 연합하여 항일(抗日)전선에 나서게 된다는 점을 형상화했다.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은 ‘바람이 불면 촛불이 꺼질 것’이라고 했지만 시민들은 바람에도 꺼지지 않을 횃불을 들었다.

횃불이 분수대를 밝히자 시민들은 함성과 함께 ‘박근혜 퇴진’을 외쳤다. 시민은 외치고 있었다.

“최순실의 국정농단에 분통이 터진다. 부끄러운 마음에 시민들이 주민등록증을 모두 모아 반납해 정부에 ‘불복종’하는 마음을 표현했으면 한다.”

민중은 순식간에 촛불을 횃불로 바꿀 수 있다.

횃불이 삽시간에 판을 뒤집는 혁명 전야의 들불로 번질 수도 있다. 우리 조상들이 관아에서 집단 소원인 등장(等狀) 갈 때나 민란을 일으킬 때 횃불을 들고 민심을 결집했던 것도 민중들의 뼈아픈 삶이 내면에 도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 맘에 설움이 알알이 맺힐 때/ 아침 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를 배운다/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떠오르고/ 한낮에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일지라/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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