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만명의 ‘꿈’, 9만명의 ‘좌절’
2만명의 ‘꿈’, 9만명의 ‘좌절’
  • 정흥남 논설실장
  • 승인 2016.11.24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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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아득하게 느껴지지만 지난여름 개봉돼 많은 사랑을 받았던 영화 ‘베테랑’에 나오는 대사의 일부다. 사전에서 ‘가오’라는 말을 찾아보면 ‘허세’ 또는 ‘있는 척을 지칭하는 속어’정로도 정의 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 가오라는 말은 젊은 층에는 불의에 굴복하지 않는 ‘자존심’ 의미로, 중년층 이상에서는 돈 앞에 무릎 끓지 않는 ‘착한 오기’ 등의 뜻으로 애용됐다. 그런데 요즘은 이 가오라는 말을 쉽게 찾아볼 수 없다. 아무리 발버둥 처도 현실을 이길 재간이 없어진 때문이다.

어느 때이건 어렵지 않은 시절이 없었지만, 요즘은 더더욱 어렵다. 그중의 하나가 주택문제다. 며칠 전 제주시 한 아파트 청약공모에 2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몰려 난리를 쳤다. 그것도 평당 1500만원에 육박하는 분양가격을 내건 곳이다.

100대 1이 훨씬 넘는 ‘청약전쟁’이 벌어졌다. 많은 사람들이 ‘미친 집값’이라고까지 비난하면서 설마 했는데 그게 현실이 됐다. 청약행렬에 섰던 사람들은 너나없이 일확천금을 꿈꾸며 웃었다.

그러나 한 편에서 이들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던 집 없는 서민들은 끝 모를 좌절감에 빠져들었다.

▲서민주택 공급 시스템 ‘부실’

전국 광역지자체들은 대부분 ‘개발공사’라는 조직을 두고 있다. 서울시의 SH서울주택도시공사가 대표적이다. 1989년 설립된 SH서울주택도시공사는 25만가구가 넘는 주택을 시민들에게 공급했다.

정부는 LH토지주택공사를 통해, 지방정부는 개발공사 형태의 조직을 통해 서민 주거안정에 나서고 있다. 이 점에서 제주도는 아직 걸음마 단계에도 못 미치고 있다.

제주도는 2025년까지 민간 8만 가구, 공공 2만 가구 등 모두 10만 가구의 주택을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그런데 정작 도민들은 이 계획이 실현될 것으로 기대하지 않는다. 제주도 주택정책에 진정성이 배어나지 못한 때문이다.

우선 지방 공공주택 건설을 견인해야 할 시스템이 취약하다. 이는 결국 제주개발공사로 이어진다. 제주개발공사하면 설립취지의 이름에 어울리지 않게 삼다수 생산이 떠오른다.

분명 지금의 제주개발공사는 전국 대부분 지자체가 운영하는 개발공사와는 다른 길을 가고 있다. 다행히 제주개발공사는 지난해 주택사업팀을 만들어 주택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한다는 방침이지만, 도민들에게는 미덥지 못하다.

삼다수 생산이라는 손쉬운 경영문화에 오랜 기간 길들여진 조직이 위험부담이 뒤따르는 주택사업을 제대로 하겠느냐는 불신의 시선이 따른다.

▲제주 9만5000가구 ‘남의 집 살이’

“안타깝고 참담한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다. 각종 개방, 투기로 서민들 삶은 갈수록 고달파지고 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도민들은 이제 제주를 떠나야 하는 것 아닌가 고민하고 있다” “한양에 있던 지사(원희룡 제주도지사)께서 내려올 때 도민들의 기대는 폭발적이었다. 원 지사 지지층이 전부 가난한 사람들이다”

며칠 전 제주도의회 의사당에서 한 도의원이 원 지사를 면전에 두고 한 말이다. 물론 이 도의원이 한 말이 지금 제주의 전체 모습은 아닐 수 있다. 그렇더라도 서민들이 생활이 크게 궁핍해 진 것만은 분명하다.

제주지역 주택보급률은 최근의 정부 공식통계(2014년 기준)에 의하면 111%에 이른다. 그런데 정작 자가 주택보급률은 56%밖에 안 된다. 제주도내 9만5000가구가 자기 집이 없다는 의미다.

전체 가구의 40%정도가 ‘남의 집’에 산다는 것은 분명 문제다. 일부에선 이를 집 없는 사람의 개인문제로 치부하지만, 이를 전적으로 개인문제로만 몰아선 안 된다. 역할을 다하지 못한 지방정부의 잘못이 더 큰 클 수 있다.

제주도는 이제라도 서민 주거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야 한다. 특히 사회초년생으로 지칭되는 젊은 세대의 주거문제 해결은 더 이상 미룰 일이 아니다.

지난 9월 중순 제주도 주택정책을 총괄하고 있는 제주도 도시건설국장의 언론기고 제목은 ‘서민 위한 공공주택 마련, 꿈만 꿀 것인가?’다. 이 제목처럼 지방정부인 제주도는 최소한 서민들에게 내 집 마련 꿈이라도 꿀 수 있는 착실한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

제주도만 헛꿈 꾸지 말고.

정흥남 논설실장  jhn@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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