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2016년’ 가을이다
지금은 ‘2016년’ 가을이다
  • 뉴제주일보
  • 승인 2016.11.21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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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순. 제주여민회 공동대표

[제주일보] 캐나다의 쥐스탱 트뤼도총리가 취임 후 내각 명단을 발표하자 왜 남녀동수 내각을 구성했냐고 기자들이 물었다. 트뤼도 총리는 이렇게 대답했다. “왜냐하면, 지금은 2015년이니까요.”

지난 9월 성인권교육을 하던 중 70대 중반의 할머니가 강의를 듣다가 “여자를 대통령으로 뽑으면 안 된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성인권과 성인지감수성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하던 터라 과연 그런지를 설명하면서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은 모두 남자였음을 상기시켰다. 박정희·전두환 군사독재정권시절 이후에, 국가를 부도 위기로 내몬 김영삼 대통령 이후에, 4대강을 파헤쳐 국토를 유린한 이명박 대통령 이후에, 모든 안 되는 일은 노무현 대통령 때문이라는 슬픈 억지가 회자되는 상황에서도 “‘남성’은 대통령으로 선출하면 안 된다”는 말을 들어보았는지 질문했다. 남자, 여자의 문제가 아니라 올바른 정치를 할 수 있는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는 내용으로 설명하자 할머니는 웃으면서 맞는 말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던 기억이 있다.

2016년 가을

온 나라를 커다란 충격과 혼란에 빠뜨린 박 대통령은 국민들의 퇴진 요구를 외면하고 검찰 소환에도 응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변호인인 유영하 변호사는 기자회견을 통해 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거론하면서 검찰의 대면 조사요구를 거부하고, 회견 말미에는 ‘여성으로서의 사생활도 존중해 달라’고 했다. 그러나 이는 일반적인 법 적용체계를 무시하는 발언이라는 비판과 함께 대통령으로서 위법 행위에 대한 수사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여성으로서의 사생활을 고려할 지점이 무엇인지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다. 또한 한국여성단체 연합은 성명을 통해, 여성은 약하고 특별하게 보호되거나 배려 받아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성차별적이고 성별고정관념을 강화하는 발언이라고 비판하였다. 그 며칠 뒤에는 박대통령의 비서였던 정윤회씨가 모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도와 준 이유가 ‘연약한 여자’이기 때문이라면서 자신은 남자다운 편이라 약한 여자를 보면 지켜주고 싶은 마음에서 보좌하였다고 했다. 그의 눈에 비친 박근혜 대통령은 그냥 ‘연약한 여자’일 뿐이었다. 정윤회씨가 말하는 그 ‘연약한 여성’은 대통령이 돼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100만명이 넘는 촛불이 박근혜 퇴진을 외친 광화문에서 우리는 다시 여성비하 발언과 성추행이 발생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칠푼이’, ‘병신년’, ‘한낱 여인네’, ‘강남의 무속 여인’ 등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을 빗대어 여성혐오와 비하가 판을 치고 있다.

우리는 국정을 농단하고 온갖 비리를 저질러 대한민국 국민임을 부끄럽게 만든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여성 대통령이어서가 아니다. 다행히 집회 현장에서는 여성들의 우려를 받아들여 여성이나 장애인을 비하하는 발언들을 삼가고 여성을 동등한 국민으로 존중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는 후문도 들린다. 두고 볼 일이다.

국민들이 다시 촛불을 들었다

20대에 군사독재 시절을 경험한 세대로서 우리가 50대가 되면 더 나은 나라가 되어 있지 않을까라는 소망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삼성이라는 재벌과 결탁하여 검은돈을 헌납 받는 대가로 국민연금이 수천억원 손실을 보는 결정을 하도록 지시한 대통령. 인사전횡, 부정입학, 태반주사…. 보도되는 사건들을 들으면서 국민들은 충격과 분노로 허탈해진다. 매주 토요일마다 제주시청 앞은 대통령의 퇴진을 외치는 시민들의 함성 소리가 울린다.

국민들의 퇴진 요구가 거센 가운데에도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권력집단의 저항은 지금이 어느 때인지를 의심하게 만든다. 지금은 ‘2016년’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퇴진하는 날까지 촛불을 드는 일에 집중하고 싶다. ‘여성임’이 열등감으로 치환되는 절망 속에서 촛불을 들게 하지는 마시라. 지금은 ‘2016년’ 가을이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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