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말하자
희망을 말하자
  • 뉴제주일보
  • 승인 2016.11.16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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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종태. 시인 / 다층 편집주간

[제주일보] 여름은 뜨겁디 뜨거운 열기로 그렇게 몸과 마음과 정신까지 말라붙게 하더니, 가을이 무색하리만치 추적추적 비만 내린다.

하늘과 땅과 사람 모두가 회색빛으로 깊이 잠긴 요즈음이고 보면, 파란 가을 하늘이 무척이나 그립고 또 그립다.

물론 회색의 하늘 아래 새도 날고, 꽃도 피고 지는 것은 분명할 텐데, 암울한 기운만으로 하루하루를 견디는 것이 그리 녹록치만은 않다.

더구나 앞으로 봄이 올 때까지 남은 시간들은 지금의 추위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치 몸과 마음을 시리고도 아프게 할 텐데, 우리의 봄까지는 너무 먼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사람이라는 것이 참 간사하고도 간사하다.

조금만 무슨 일이 있으면 모두 죽음과 연결시켜 과장된 표현을 한다. 더우면 더워 죽겠네, 조금 서늘해지면 추워 죽겠네, 배고프면 배고파 죽겠네, 심지어 잘 먹어놓고도 배불러 죽겠다거나, 좋으면 좋아 죽겠다고 하는 것을 보면, 사소한 변화에도 목숨이 오가는 것처럼 민감하게 여기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들 변화를 두려워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그도 그럴 것이 나라의 정치 상황은 정치대로, 남북문제는 또 남북문제대로, 미국에서 건너온 소식은 또 그대로 무엇 하나 즐거울 일이 없는 나날의 연속이어서 그럴 지도 모르겠다.

인터넷을 열어도, 텔레비전을 켜도 무언가 나아질 것이라는 소식은 찾아볼 수 없고, 부정적인 뉴스들만으로 가득하다 보니, 사람 사이의 대화도 자연 회색빛 대화만 오간다.

나라 전체가 절망만 얘기하고 누구 하나 희망을 말하는 사람이 없다. 어떤 언론도 현실의 문제를 대중의 입맛에 맞게 양념을 치고 조금 더 자극적으로 요리하여 더 절망하게 만들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문제는 덮어둔 채로 다른 사람들을 탓하고 원망하기에 바쁘다.

입에서 입으로 건너가는 말들이 그러하니 표정이 밝을 리도 없다.

말은 그 사람의 심정이나 인성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한다. 거친 말을 사용하는 사람은 심성이 거칠다는 것이고, 부정적인 언어를 주로 쓰는 사람은 사고 자체가 부정적인 경향의 소유자임을 의미한다.

언어에는 주술적인 기능이 있어서 절망을 말하면 절망적인 미래가, 희망을 말하면 희망적인 미래가 열린다고 한다.

긍정이니 부정이니 하는 것은 각자의 마음먹기에 달린 일이고 보면, 자신의 내일을 결정짓는 것은 외부적 요인이 아니라, 자기 내부의 목소리에 달린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신경림 시인은 ‘갈대’라는 시에서 인간을 갈대에 비유하면서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까맣게 몰랐다.’고 노래했을 지도 모르겠다.

약속이 있어서 급한 걸음을 옮기는데, 문득 사람들의 발자국을 피한 보도블록 사이에 노오랗고 키 작은 민들레 한 송이가 피어 있다.

차운 바람이 불어대는 날씨에, 그것도 남들은 다 갈색으로 말라가는 회색빛 시절에 저렇게 선명한 색깔의 꽃을 피워 올린 것을 보고 걸음을 멈추고 휴대전화를 꺼내들고 사진을 찍었다.

피어야 할 때를 놓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비록 늦었을망정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다 하려는 본능적인 몸부림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걸음을 재촉한다.

어쩌면 내 걸음도 저렇게 척박한 토양에 노오란 민들레 한 송이를 피우고자 하는 몸부림이 아닐까 의미를 부여해 본다.

적어도 내일은 오늘보다 나으리란 기대로 마지막 힘을 다해 꽃을 피워 올리는 것, 그래 그것이 희망이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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