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좋은 가을인데
이 좋은 가을인데
  • 뉴제주일보
  • 승인 2016.11.13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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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호. 시인/전 중등교장/귤림문학회 회장

[제주일보] 심란(心亂)하다. 청와대 문서가 어느 여인과 이메일로 오고갔다 한다. 그것에서 비롯하여, 시국이 난세(亂世)이다.

임진년(1592)에 우리나라에 침입한 일본군과 7년 동안의 싸움이 왜란(倭亂)이다. 병인년(1866)에 천주교 금압(禁壓)에 따른 프랑스 함대의 침입과 신미년(1871)에 미국 함대의 조선원정들을 양요(洋擾)라고 한다. 난(亂)은 소란스러움(擾)보다 더욱 크고 무섭다. 이 좋은 가을, 마음 속에 전쟁(亂)이 터졌다.

실(絲)이 헝클어져 범벅처럼 된 것이 난마(亂麻)이다. 옛날 중국이 남북으로 나뉘어져 있을 때 일이다. 북제(北齊)의 왕 고환(高歡)은 아들을 여럿 두고 있었다. 하루는 아들들을 불러 모았다. 재주를 시험해 보려는 것이었다.

헝클어진 삼실을 내어 주며 실 가닥을 추려내 보라고 했다. 모두들 땀을 흘리며 쩔쩔매고 있을 때, 양(洋)이라는 아들은 전혀 달랐다. 잘 드는 칼 한 자루(快刀)를 들고 와서, 헝클어진 삼실뭉치를 싹둑 잘라버렸다. 그러고는 득의양양(得意揚揚)하였다. 말미암아 아들 고양(高洋)이 왕위를 이어 받았다.

그런데 그는 술에 취하거나 말거나 재미삼아 칼로 사람의 목까지 베는 왕으로 되어버렸다. 쾌도난마(快刀亂麻)의 유래이다. 요즘 정황(政況)에 쾌도를 내려는 자! 혹여 나서 보시게나.

사람은 나면서 욕심이 있다(人生而有欲). 욕심을 채우지 못하면(欲而不得), 구하러 다니기 마련이다(則不能無求). 구하려는 정도가 한계가 없으면(求而無度量分界), 마음에 다툼이 일며(則不能不爭), 그 다툼이 심란이다(爭則亂)(순자 禮論에서).

여(與)는 들으시오,

죽순이 붓 같아도(竹芽似筆) 글자 이루기 어렵고(難成字),

야(野)는 들으시오,

솔잎이 바늘 같아도(松葉如針) 실을 꿰지 못하도다(未貫絲)(百聯抄解에서).

실학자 최한기의 가르침. 사람의 자질과 역량을 헤아리고(測人), 도리와 지식을 가르쳐서(敎人), 시험해 선발과정을 거친 후(選人), 그 사람에게 맞는 직무를 준다(用人).

마음이 어지럽다. 이럴 땐 선자(先慈)가 떠오른다. 밖에 일로 집이 비었을 때 어느 집에서 지난 제사떡이라도 오면 그대로 잘 놔두어야 한다. 어머님 말씀이었다. 슬그머니 먼저 먹고 싶지 않은 아이가 있으랴. 삶은 교류이고, 받은 만큼 되돌림을 일깨우려 하셨는가. 부모와 여덟 남매, 드디어 떡이 쪼개어진다. 엄마 손에서. 아! 가을이다.

엄마의 말씀인가.

산사 스님의 하루 살림(山僧計活)은 차 세 사발(茶三椀)이고, 어부의 평생 살림(魚父生涯)은 낚싯대 하나(竹一竿)로다(百聯抄解에서).

가을(秋)은 벼(禾)가 붉게(火) 익는 계절. 추석도 넘겼으니, 배부르고 여유롭다. 그런데 마음(心)이 가을(秋) 아래로 드니, 온통 근심(愁)으로 바뀌어간다.

배부른 자리들, 어찌 저리 세상을 뒤트는가. 가솔(家率)을 잘못했다한들 웃어른을 자식들이 내쫓을 수 있을까. 듣는 귀, 역풍(Backfire)의 인과들을 아직도 모르는가.

필자가 미국에서 연수 중(1995년), 미국인 교수가 강의 중에 꺼낸 이야기. ‘이상한 나라가 있어요. 국민들이 뽑아 놓은 대통령인데, 임기가 끝나자 죄수복을 입히고 법정에 세우는 나라가 있어요. 그것도 두 사람씩이나.’ 아! 얼굴이 화끈 올랐다.

표(票)는 정국(政局)을 보고 있다.

4년·5년 불균형주기에서 나오는 횡자(橫恣)까지 다 알고 있다.

국민은 투표로써 할 일을 언제나 할 것이다.

겨울은 춥다.

마음만은 평온히 지내고 싶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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