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오바디스, 제주...
쿠오바디스, 제주...
  • 정흥남 논설실장
  • 승인 2016.11.10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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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일보=정흥남 기자]

‘밴드왜건효과(band wagon effect)’ 말 그대로 악대를 선두에 세우고 요란한 소리를 내면 사람들이 그 악대를 중심으로 몰려든다는 의미에서 나온 경제용어다. 기업들은 이 효과를 충동구매를 유도하는 마케팅 전략으로 곧잘 활용한다. 정치에서 이 용어는 유력정치인을 띄우는데 이용된다.

제주섬 전체가 인산인해다. ‘제주가 대세’라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제주 곳곳이 몰려든 관광객들로 북새통이다. 하늘 길은 물론 바닷길에도 ‘제주로 가자’는 밴드 소리가 요란하다.

올 들어 제주를 찾은 국내외 관광객이 벌써 1367만명을 돌파했다. 이달 5일까지 제주도관광협회가 집계한 통계인 점을 감안할 때 지금쯤은 1400명에 육박하는 국내외 관광객들이 제주를 찾았다.

이 같은 관광객 수는 지난해 제주를 찾은 연간 관광객 수 1366만명을 넘어선 것이다. 올 들어 17.7%의 증가세이 이어지고 있다. 이 같은 증가세가 이어진다면 빠르면 이달 중 관광객 1400만 돌파도 점쳐지고 있다.

제주로 몰리는 것은 이들 관광객뿐만 아니다. 제주에서 ‘인생 2막’을 보내려는 타지방 주민들의 이주행렬도 줄을 잇고 있다.

 

#수요만 쫓은 개발로 제주 엉망

요즘 제주공항을 이용하려면 열에 아홉은 밀려든 인파 속에서 홍역을 치른다. 제주공항에 도착해 약속된 시간에 비행기를 탄다고 해도 출발 시간에 맞춰 이륙하는 항공기는 거의 없다.

대부분 20~30분은 양호한 편이고 1시간 정도 공항에서 시간을 허비한다. 탑승 수속과정에서 겪는 불편은 두말할 나위 없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졌는지 도민들은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선뜻 말하기를 망설여 한다. 자칫 잘못하면 제주의 이익을 해치는 ‘비애국자’로 몰릴 가능성이 다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뒤돌아서면 약속이나 한 듯 한마디씩 내뱉는다. “어딘지 모르지만 문제가 있는 것은 분명해”

‘제주의 지금’을 어떻게 진단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세계화 개방화 추세에 당연한 현상이라는 주장과 제주가 너무 나간다는 주장이 맞선다.

그러나 분명한 건 지금의 제주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는 점이다. 다름 아닌 ‘수요만 쫓은 개발’이다. 목전에 드러난 관광수요에 꿰맞춘 개발이 제주전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개발과 보전이라는 원칙은 공무원들의 책상서랍에 처박힌 지 오래다. 대신 늘어나는 관광객들만 쳐다보며 곳곳이 파헤쳐 지고 있다. ‘질 낮은 지방정치’도 한몫 했다.

제주가 성한 곳이 거의 없는 만신창이 섬으로 가고 있다.

 

#허깨비에 홀린 것처럼 앞만 봐

“세계적 추세는 개발이 아닌 관리와 보존의 시대라는 데 있다” “제주다음을 갖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인구와 관광객, 개발면적의 제한 검토가 필요하다. 지난 제주개발 경험을 밑거름 삼아 개발속도와 방향을 고민해야 한다”

일주일 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육지사는 제주사름’이 주최한 ‘제주개발특별법 4반세기 쿠오바디스, 제주’라는 이름으로 열린 포럼에서 나온 말이다.

쿠오바디스(Quo Vadis)는 라틴어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에서 나온 것으로, 폴란드 출신 헨리크 시엔키에비치의 소설로도 유명하다. 정의와 진리는 승리한다는 것을 호소해 박해받는 폴란드 민족에 희망을 선사했다.

두말 하지 않더라도 제주가 지금 어디로 가는지 그 방향을 가늠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제주 전역에서 거친 파열음이 일고 있다.

이 문제를 풀 정답은 ‘육지사는 제주사름’이 이날 포럼에서 내건 플래카드에 있다. ‘제주다음’이 그것이다.

1991년 제정된 제주개발특별법은 제주도민이 주체가 돼 제주도의 향토문화를 창조적으로 계승·발전시키고 자연 및 자원을 보호하도록 하며, 농업과 수산업 등 기타의 산업을 보호·육성해 쾌적한 생활환경과 관광여건을 조성한다고 법 목적을 명시했다.

그런데 4반세기가 흐르면서 이 ‘대명제’가 사라졌다. 지금이라도 제주는 이를 봐야 하지만, 부득부득 이를 외면한다. 아예 묵살하고 오직 앞으로만 나가려 한다.

‘개발’이라는 허깨비에 홀려.

정흥남 논설실장  jhn@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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