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간첩 만들기
가짜 간첩 만들기
  • 김종배 상임 논설고문
  • 승인 2016.11.06 16: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주일보=김종배기자] 2011년 새해 벽두였다. 그해 1월20일 대법원 전원 합의체는 간첩으로 몰려 사형당한 죽산 조봉암에 대한 재심에서 국가변란과 간첩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그날로 52년동안 죽산에게 씌어졌던 간첩죄와 국가보안법 위반죄 등의 누명이 벗겨졌다. 즉, 죽산은 간첩이 아니라는 국가판결이었다.

죽산 조봉암은 독립운동가로 활동하다가 해방된 후 국회의원과 농림부장관 등을 지낸 뒤 진보당을 창당,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 대한민국 초대 농림부장관이었던 그는 농지개혁 등 한국 경제체제의 기반을 다진 진보적인 정치인이었다. 1956년 대통령 선거에서 이승만과 접전 끝에 낙선한 것이 트집이었다. 불안한 이승만 정부는 1958년 조봉암을 간첩죄로 몰아 재판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한 것을 뒤집어, 2심과 3심에서 사형선고를 내리고 1959년 사형을 집행했다.

죽산은 사형집행전 “나에게 죄가 있다면 많은 사람이 고루 잘 살 수 있는 정치운동을 한 것 밖에 없다. 나는 이승만 정권과 싸우다 졌으니 패자가 승자로부터 죽임을 당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다만, 내 죽음이 헛되지 않고 이 나라의 민주주의 발전에 도움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고 유언했다.

국가기관인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07년 죽산에 대한 사형을 ‘비인도적 반인권적 인권유린이자 정치탄압’으로 규정했다. 유족은 재심의 청구를 통해 2년여의 심리 끝에 무죄를 받아냈다.

 

억울한 모녀의 재심결정

엊그제. 억울하게 간첩누명을 쓰고 옥살이했던 모녀가 법원의 재심 항소심에서 32년만에 누명을 벗었다. 광주고등법원 제주 제1형사부는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실형선고를 받고 옥살이했던 고(故) 황모씨(여.당시 46세)와 그의 딸 김모씨(당시 24세)의 재심 항소심에서 검찰의 항고를 기각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1983년 일본에서 종업원 등의 생활을 하다가 귀국한 이들 모녀를 공안기관이 체포, 조총련의 사주를 받아 대남 적화공작을 위해 귀국했다는 혐의를 씌우고 불법구금과 고문에 의한 허위자백으로 가짜 간첩을 만들어냈다. 그동안 어머니 황씨는 숨졌고 딸 김씨는 어머니와 자신의 명예를 위해 재심을 청구, 무죄를 선고받아 평생의 올가미가 됐던 간첩누명을 벗었다. 이들 모녀의 사례는 제주의 대표적인 간첩누명사건으로 널리 알려진 강희철 사건과 똑같아서 우리와 비슷한 선량한 주민이 공안당국의 ‘가짜 간첩만들기’로 희생된 피해가 얼마나 극심한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강희철씨는 1975년 15세 때 일본에서 학교를 다니겠다는 생각으로 밀항했다가 불법체류자로 검거된 뒤 한국으로 송환되자 간첩혐의로 13년간 복역했다가 풀려났다. 강씨는 2008년 6월 황모씨 모녀와 같은 재심과정을 거쳐 무죄판결을 받고 눈물을 펑펑 쏟으며 그동안 자신이 겪은 과정과 고통은 말로 다 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우리사회의 아픈 과거사들

당시 강씨를 변호했던 인권변호사 최병모 변호사는 과거사정리위원회에 따르면 일본과 관련된 간첩조작사건은 100여건에 이르며, 이 가운데 제주도와 관련된 사건만도 30%에 이른다고 밝혔다. 또한 멀쩡한 지식인들을 간첩으로 몰아 대법원 판결 10시간만에 사형을 집행한 전대미문의 ‘인혁당’사건도 다시는 일어나서 안 되는 부끄러운 과거사이다. 그러나 그것 역시 일부일 뿐이다. 대부분은 고문 후유증과 우울증, 대인공포증 등 심한 질환을 앓다가 죽거나 세월에 묻혀 잊혀지고, 다시 들춰내고 싶지 않은 당사자들의 아픈 과거사로 묻혀졌을 뿐이다.

정권유지를 위한 국가기관의 만행은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의 현재와 미래에서는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수치스러운 일이다. 박정희 정권시절 전반기는 국가보안법과 반공법의 시대였다면 후반기는 유신치하의 긴급조치시대였다. 반공 이데올로기와 빨갱이 콤플렉스로 사회를 위압했던 정권은 결국 국민의 심판 앞에 설 수밖에 없다는 것이 역사가 증명한 사실이다. 모두가 부끄러워야할 과거사들이다.

김종배 상임 논설고문  jongbae10@jejuilbo.net

Tag
#N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