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귤, 이미 400년 전 한방의학·약리학적 가치 인정
감귤, 이미 400년 전 한방의학·약리학적 가치 인정
  • 뉴제주일보
  • 승인 2016.11.02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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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한의약, 그 역사속으로…<2>제주, 국내 유일의 감귤류 약초 산출지(1)
좌측사진부터 제주특별자치도기념물 제25호 '광령귤나무'-동정귤, 탐라순력도 '귤림풍악' 확폭, 천연기념물 제523호 '제주 도련동 귤나무류'-당유자 <사진 제공=제주도 세계유산본부 고정군 과장>
김일우 문학박사 ㈔제주역사문화나눔연구소장

[제주일보] 제주 감귤이 약초로서도 대중들에게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된 것은 ‘동의보감(東醫寶鑑)’을 통해서였을 것이다. 이 책은 허준(許浚)이 1610년(광해군 2년) 지은 의서(醫書)로서 1613년 첫 간행된 후 지금까지도 발간되면서 한의학의 의학서로서 가장 높게 평가받고 있다. 현재도 우리나라 한의학의 교과서로 이용한다. 우리나라 사람의 저술로서 ‘동의보감’처럼 중국ㆍ일본 사람에게 널리 읽힌 책은 아마도 없을 듯싶다. 이 책은 1997년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도 등재되었다. 이는 전문 의학서로 최초이기도 하다.

특히 ‘동의보감’은 조선사회의 실정에 맞는 처방과 약재를 일반 백성들에게 널리 알려 도움을 주려는 의도에서 편찬됐고, 그 의도가 현실화되기도 했다. ‘동의보감’은 대중성을 지향·실천화가 이뤄진 한의학의 의학서였던 것이다. 여기서 허준은 청귤(靑橘)·유자(柚子)·감자(柑子)·지각(枳殼)과 같은 감귤류와 각각 그 약리적 효능을 거론함과 아울러, 이들이 모두 우리나라에서는 제주에서만 난다는 설명을 덧붙이고 있다. 이 가운데 ‘동뎡귤’·‘프른귤’·‘유’·‘감’라는 ‘諺文’(언문), 곧 한글표기도 확인된다. 이로써 제주 감귤은 400여 년 전부터, 일반 대중들에게도 한방의학·약리학적 가치가 높은 약초로서 명성을 쌓아가기 시작했음이 드러난다고 하겠다.

‘동의보감’에도 감귤류 약초가 우리나라에서는 제주에서만 난다고 돼 있는데, 이 사실의 내력은 고려시대의 기록을 통해서도 찾아볼 수 있다. 문헌상으로 제주 감귤을 적시하는 최초 기록은 ‘고려사’의 1052년(문종 6년) 기사에 나온다. 이를 통해 제주 감귤이 1052년 이전부터 매해 중앙정부에 납부되었음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제주 사람의 감귤재배가 항상이루어지고 있어야 가능한 일로 봐야 한다. 그럼에도 감귤은 중앙의 특수계층만 접할 수 있을 정도로 희귀한 것이었다. 감귤이 제주에서만 났기 때문이다. 이는 이규보(李奎報)가 지은 시에 드러난다. 이 시는 관직자와 유배인 및 문인들에 의해 지어진 상당수 제주 감귤 예찬의 시문 가운데 가장 연대가 올라가는 것이기도 하다.

동의보감(東醫寶鑑) : 25권 25책. 1610년(광해군 2년)에 완성해 1613년 첫 간행된 조선 최고의 의학서. ‘동의(東醫)’는 중국 남·쪽의 의학전통에 비견되는 동쪽의 의학 전통 즉, 조선의 의학 전통을 뜻한다. ‘보감(寶鑑)’이란 ‘보배스러운 거울’이란 뜻 으로 귀감(龜鑑)이란 뜻을 지닌다. 허준은 조선의 의학 전통을 계승하여 중국과 조선 의학의 표준을 세웠다는 뜻 으로 ‘동의보감’이라 이름 지었다.

이규보가 제주 감귤과 관련된 시를 짓게 된 것은 최자(崔滋)가 1234년 무렵 제주 수령을 지내는 동안 감귤을 매해 선물로 보내줬기 때문이다. 이규보는 최자의 제주 감귤 선물에 답례 차원에서 시를 지었던 것이다. 시문 가운데는 ‘탐라가 아니면 보기조차 어려운 것(이 귤은 제주 이외에는 없다)’이라는 내용도 들어 있다. 더욱이 ‘선생이 바뀌어 강회를 건너오면, 다시는 어떤 사람이 이것을 보내주랴만’ 이라는 문구도 확인된다. 여기서 ‘강회를 건너오면’이라는 부분은 중국의 3대 하천 가운데 하나인 회수(淮水)를 제주와 한반도 육지부 사이의 바다로 간주하면서, ‘귤화위지(橘化爲枳)’, 곧 ‘귤이 회수를 넘어서 북으로 가면 탱자(광귤(廣橘)?)가 된다’라는 중국의 고사성어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 이야기는 중국 대륙이 회수라는 강을 사이에 두고, 남북으로 나뉘어 토양과 기후가 서로 다른 만큼 회수 남쪽의 귤을 회수 이북으로 옮겨 심으면 잘 자라지 못해 탱자(?)처럼 작고 딱딱해진다는 사실에 근거해 유래했다고 한다. 곧, 중국에서는 회수가 귤 재배의 북방한계선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이규보도 제주 감귤 관련 시에서 ‘귤화위지’라는 고사성어를 인용했던 것이다.

시문의 내용을 음미해 보자면, 이규보는 최자가 제주수령의 임기를 마치고, 바다를 건너 한반도 육지부로 오면 그로부터 감귤선물을 다시 받을 수 없음을 서운해 하면서도 최자 이후 제주수령으로 가는 사람에게도 감귤을 받아먹을 수 있기를 기대하는 자신의 마음을 시에 담았을 듯싶다. 또한 이규보의 시구를 통해서도 고려시대 때 감귤재배의 북방한계선이 제주 지역이고, 그에 따라 한반도 육지부에서는 감귤이 나지 않았던 사실도 드러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김일우 문학박사·㈔제주역사문화나눔연구소장

 

 

▲감(柑)과 귤(橘)의 껍질인 귤피-“껍질마다 약리효과 달라…한의학, 기와 맛으로 분석”

제주는 지금 ‘귤림추색(橘林秋色)’의 계절이다. 귤림추색은 제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십경(十景)의 하나로 손꼽아 왔는데, 최근 들어 난개발로 퇴색되어 버렸다. 이 와중에 예술적 삶을 살다간 소암(素菴) 현중화(玄中和)선생님의 귤림추색 관련 서예작품을 한 번 회상해 보자.

‘滿樹玲瓏照夕陽(만수영롱조석양)/家家籬落黃金色(가가리락황금색).’ 온 나무에 영롱하게 저녁 햇살 비추고/집집마다 울타리엔 황금빛 떨어진다. 제주의 빼어난 풍경을 노래한 귤림추색에서 보듯이, 귤은 제주의 대표적 과일이다.

한편 감귤 모양의 열매는 헤스페리디움(Hesperidium)이라 일컫는다. 이들은 껍질을 벗기면 향기로운 방울이 안개처럼 피어오르는 선계(仙界)의 과일이라고도 한다. 이들의 외과피(外果皮)는 약간 강인하고 유선(油腺)이 풍부하며, 중과피는 연하며 스펀지 같고, 내과피 속에 과즙이 차있다. 그 중 ‘귤(橘)’은 밖이 붉고 속은 노랗듯이 글자 기원도 ‘이운색(二色雲)’ 곧 두 가지 구름을 뜻하는 ‘율(矞)’에서 따왔다.

종래 헤스페리디움에 대해 ‘산해경(山海經)’은 ‘귤유(橘柚)ㆍ지(枳)’, ‘신농본초경’은 ‘귤유(橘柚)·지실(枳實)’로 나누었다. 이후 ‘감자(柑子), 귤, 유자(柚子), 등자(橙子), 지실, 지각(枳殼)’으로 나뉘었다. 이윽고 송대(宋代)의 ‘귤보(橘譜)’는 27종으로 분류했다. 현대에 와서는 다나까〔田中〕가 금감속(屬), 탱자속, 감귤속의 3개로 나누고, 다시 감귤속을 5개(orange, mandarin, lemon, lime, grapefruit)로 구분했다. 이로써 감자, 귤, 유자, 등자, 지각이 감귤속에 들어감으로 분류가 거의 정리됐다.

이들 헤스페리디움 껍질은 모두 약재로 쓰이나, 그 약리효과가 다름으로 구분할 수밖에 없다. 특히 귤피 경우는 오직 감(柑)과 귤의 것만 유효하다. 곧, 온주밀감 껍질도 귤피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한편 귤피의 약효를 현대약학의 관점에서는 성분의 함량으로 따지나 한의학에서는 기와 맛, 즉 기미(氣味)로 분석한다.

김태윤 한의학 박사·(재)제주한의약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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