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부조화
인지부조화
  • 김종배 상임 논설고문
  • 승인 2016.10.30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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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에 보면 ‘인지부조화의 원리’가 있다. 어떤 사람이 내린 합리적인 결론이 이전에 철석같이 믿었던 생각이나 의식과 정면으로 충돌될 때 그 결론은 부조리하더라도 기존의 생각에 부합한 것으로 여긴다는 이론이다.

간단히 말해서 자기합리화이다. 인간은 어리석은 선택을 하고 난 후에도 어떻게든 그 선택이 불가피했던 것으로 믿으려 애쓰고, 명백한 판단착오였음에도 끝까지 자신의 선택이 옳다고 우기는 게 인지부조화이다. 가장 좋은 예가 이솝우화 ‘여우와 포도’이다. 포도가 높이 달려 있어 먹을 수 없게 된 여우는 돌아서면서 어차피 시어서 먹을 수 없다고 말한다. 이처럼 여우건 사람이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자신이 내린 결정을 합리화하려 한다. 인지부조화는 사생활의 사소한 결정에서부터 국정을 운영하는 중대한 결정까지 예외없이 적용된다.

 

역린

온 나라가 최순실 게이트로 요동치고 있다. 지난달 중순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의 강제모금 얘기가 솔솔 나오면서 재단에 최순실이라는 이름이 붙고, 그녀의 딸 정유라의 이화여대 편법입학 등의 얘기가 연일 터져 나왔다. 불 위에 올려놓은 냄비가 설설 달아 오르는가 싶더니 최순실의 뒤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있고, 최순실은 역대 대통령의 비선 실세를 훨씬 능가하는 절대 권력자로서 국정을 농단해온 일들이 세상에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아바타로 빗대는 이도 있었다. 아바타는 꼭두각시와 유사한 뜻으로, 시키는대로 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최순실이라는 이름은 누구도 입 밖에 내서 안 되는 박근혜 대통령의 역린(逆鱗)이었다. 역린이 무엇인가. 역린은 군주만의 약점, 즉 용의 가슴에 거꾸로 난 비늘로서 이를 만진 사람은 누구도 살아남지 못한다. 그 역린을 잘못 건드렸던 문화체육관광부 국장과 과장이 박 대통령으로부터 ‘참 나쁜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한직으로 몰린 뒤 ”아직도 근무하고 있어요?“라는 대통령의 한 마디로 옷을 벗었다.

그때 터진 것이 개헌 추진이었다. 개헌 제안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핵급 폭탄이었다. 우병우 수석과 최순실, 백남기 농민으로 악화된 여론이 청와대의 목줄을 서서히 죄어오자 경동맥이 불거지고 깊은 호흡이 필요한 때였다. 누가 봐도 청와대의 목줄을 열어줄 긴급 구호조치였고 국면전환용이었다. 당시 박 대통령의 지지도는 역대 최저치인 21%를 기록했다. 백 명의 사람이 있으면 팔십 명은 박 대통령으로부터 등을 돌렸다.

 

제주 역시 예외는 아니

정국은 느닷없는 개헌 제안에 요동쳤다. 올해 초만 해도 논의조차 거부하던 박 대통령은 국회를 찾아 갑자기 군사작전 같은 개헌 의지를 밝혔다.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가 개헌 운운했다가 불벼락으로 석고대죄를 통해 용서받았던 것이 불과 몇 달전이었는데도 말이다. 그런 박 대통령이 낯빛 하나 바꾸지 않고 개헌하겠다며, 그것도 구국의 결단이라는 이름을 걸고 나왔다. 대표적인 인지부조화이다. 상황이 달라졌다는 전형적인 자기합리화이다. 그러나 개헌 제안은 하루가 지나기 전에 최순실로 덮여졌고 나라는 혼란 속에 빠져들었다.

우리 제주는 어떤가. 원희룡 도지사가 당선될 때만 해도 청정과 공존이라는 도정 모토에 ‘자연과 문화와 사람의 가치를 키우는 제주’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곤 기회가 닿을 때마다 무분별한 개발을 지양하고 비도덕적인 중국자본을 들여놓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금의 제주는 한라산 턱밑과 서귀포 주상절리 머리 위에 조성되는 대규모 건설사업에 행정이 앞장서는 모양새이다. 상황이 바뀌었다고 말한다. 이전의 논리로 설명하지만 그 또한 전형적인 인지부조화이다. 도민들의 의식수준은 어제오늘이 다르다. 결코 똑똑하지 않지만 스마트폰을 열면 모든 세상일을 살펴 볼 수 있다.

조직은 질서와 시스템이다. 질서가 무너지면 시스템이 붕괴되고 조직도 결국 파괴된다. 사회도 마찬가지이다. 일괄된 질서가 없으면 조직까지 무너진다.

 

 

 

김종배 상임 논설고문  jongbae10@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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