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의원 vs 헌법소원
지방의원 vs 헌법소원
  • 정흥남 논설실장
  • 승인 2016.10.27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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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일보=정흥남 기자] 상대의 치명적 약점을 지칭하는 말로 ‘아킬레스 건’이 있다. 아킬레스건은 발뒤꿈치에 있는 힘줄(건)이다.

이 말의 유래는 고대 그리스 시대로 거슬러 간다. 고대 그리스 바다의 여신 테티스는 자신의 아들 아킬레스를 무적의 장수로 만들기 위해 아들의 몸을 저승의 스틱스 강에 담근다. 테티스는 아들 아킬레스를 강물에 담그면서 단 한 곳 아킬레스의 발목 부분은 담그지 못했다.

이 때문에 발목 뒤 힘줄은 아킬레스가 상처를 입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 됐다. 이후 아킬레스는 트로이 전쟁에서 발뒤꿈치에 화살을 맞고 죽었고, 여기서 ‘아킬레스건’이 탄생했다.

최근 한 제주도의원이 타지방 돼지고기 반입을 금지한 제주도의 정책을 대상으로 일부 주민들이 추진 중인 헌법소원 제기를 우려한다는 내용의 언론 기고가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이 도의원은 타지방으로부터 돼지열병 청정지역인 제주로 병원체가 유입되는 것을 막기 위한 방역조치의 일환으로 타지방 돼지고기 반입이 금지되고 있는 현실을 설명했다.

이 도의원은 또 방역 때문에 이뤄지고 있는 타지방산 돼지고기 제주반입 금지 조치인 만큼 방역상의 이유로 헌법소원이 제기되는 것은 몰라도, 돼지고기 가격이나 다른 문제를 붙여 해제하려고 하는 것은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 도의원은 이어 양돈장 악취문제에 대해서는 시설투자와 냄새저감 방지시설을 강화해 마을주민과 상생하는 업계의 자구노력이 병행돼야 된다고 덧붙였다.

 

#평등·행복추구 헌법정신에 위배

“의원님 양돈악취 마을에서 한 달 만 창문열고 살아 본 뒤 기고해 주세요. 청정지역 좋죠. (양돈)농가는 도민들에게 무엇을 했나요” “(도의원 기고)글의 주장은 일부 악덕 양돈업체를 대변하는 것으로, 도민들의 권리와 행복을 무시하고 업신여기는 처사입니다”

이 도의원의 기고는 축산악취에 시달리는 주민들의 성난 감정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됐다. 현재 헌법소원을 추진하고 있는 주민들은 대부분 양돈장 인근마을에 살고 있지만, 이들에 공감하고 호응하는 도민 또한 한둘이 아니다.

이들은 타지방산 돼지고기의 제주반입을 막는 조치가 평등의 원칙과 나아가 행복추구권을 보장한 헌법정신에 위배된다고 강조한다. 외국산 돼지고기처럼 타지방 돼지고기도 들어오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표면상 이유이고 실제 이면을 들여 보면 이게 아니다. 돼지를 사육해 막대한 수입을 챙기면서 악취발생에 무관심한 ‘악덕농가’를 응징하겠다는 일종의 오기가 깔려 있다.

타지방 돼지고기가 들어오게 되면 자연스럽게 제주농가와 타지방 농가 사이에 경쟁이 이뤄지고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악취를 발생시키는 농가는 자연스럽게 도태된다는 논리다.

제주지역 양돈장 299곳 중 악취 저감시설을 갖춘 곳은 절반이 안 된다. 이 때문에 악취에 시달리는 도민과 관광객이 한 둘이 아니다.

 

#‘기득권’ 모든 것에 앞설 수 없어

제주라는 사회는 60만명이 넘는 구성원들이 살아가는 거대 조직이다. 이들 구성원의 첫째 의무는 자신에게 부여된 역할을 다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자신의 역할로 인해 다른 구성원들을 불편하게 만들어선 안 된다.

오래전부터 지금의 위치에 터 잡아,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돼지를 사육해 왔다는 ‘기득권’ 이 모든 것에 앞설 순 없다. 우리사회가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는 ‘공존’이다.

혼자가 아닌 다른 구성원들과 함께 살아야 한다. 이는 한 사회가 유지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때문에 양돈농가도 더는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줘선 안 된다.

양돈농가가 소수여서가 아니다. 이쯤에서 악취의 역겨움과 고통을 참고 살아가는 다수의 선량한 도민들의 삶을 들여다봐야 한다. 시쳇말로 지금 제주양돈업은 최고의 호황기를 맞고 있다. 이는 일차적으로 양돈농가의 노력의 결과지만, 제주의 청정 환경을 지켜온 제주땅 구성원 모두의 헌신과 희생이 결과물이기도 하다.

오죽했으면 주민들이 제주 양돈산업의 ‘아킬레스 건’을 정조준 했을까.

한 네티즌이 이 지방의원 기고에 의미 있는 댓글을 달았다. “의원님의 의견이 헌법소원을 생각치도 않았던 일반인들까지 동참하도록 촉발시키는 불쏘시개가 됐습니다”

정흥남 논설실장  jhn@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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