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의 변화를 주목한다
농협의 변화를 주목한다
  • 신정익 기자
  • 승인 2016.10.26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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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일보=신정익기자] 얼마 전 제주도의회 임시회 추경예산안 심의 과정에서 권영수 제주도 행정부지사의 답변을 들은 도의원들이 발끈했다.

지난 5일 제주를 강타한 제18호 태풍 ‘차바’의 피해를 입은 농업인들에 대한 지원 대책을 묻는 의원들의 질의에 권 부지사가 다분히 원론적인 답변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사유시설은 농업재해보험에 따라 지원하는 게 원칙이라면서 자동차보험처럼 안전장치 차원에서 농가들의 보험가입을 적극 유도하겠다는 수준에서 멈췄으니 그럴 만도 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지만 나름 성의 있는 답변을 기대했던 도의원들은 권 부지사의 답변에 답답한 표정을 지었다. 최소한의 성의도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듣다 못한 한 의원은 “의료보험 가입을 안 했다고 아픈 사람을 가만히 놔둘 수 있냐”며 지나치게 규정 탓을 하는 행정 책임자에게 충고했다. 생업의 터전을 유린 당해 막막한 농심에게 우선 어떤 식으로든 위로와 함께 지원을 해 줘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주문인 셈이다. 법과 규정을 인정하지만, 그에 앞서 ‘인지상정(人之常情)을 얘기한 것이다.

몇 년 만에 태풍이 관통하면서 제주땅 곳곳에는 예상보다 깊고 넓은 생채기가 남았다. 특히 농업 분야에서는 월동무와 당근, 시설감귤 등이 큰 피해를 입어 폐작 위기에 내몰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과정에서 농협중앙회가 예전에 볼 수 없는 신속한 복구 지원에 나서 주목을 받고 있다.
태풍 ‘차바’가 휩쓸고 간 직후인 지난 6일 오후 서둘러 제주를 찾은 김병원 농협중앙회장은 7일까지 머물면서 도내 곳곳을 찾아 농가들을 만났다.

김 회장이 현장을 확인한 후 농협이 내놓은 대책은 선제적이면서도 구체적이었다. 침수피해를 입은 월동무 농가들에게는 재파종을 위한 종자대 전액을 무상으로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농경지 침수로 병충해가 발생한 월동무 밭에는 방제 비용도 전액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월동무는 10월 5일 전후가 재파종 한계여서 맥주보리로 작목을 전환하면 생산량 모두를 수매하겠다는 의사도 피력했다.

통상적으로 자연재해 현장을 방문하는 인사들은 두루뭉술한 언급으로 농가들을 달래는 게 일반적인 모습이다. ‘최선을 다하겠다’거나 ‘적극 검토하겠다’는 수준에서 현장의 목소리를 수렴하는 양 한다. 그에 비하면 김 회장의 행보는 명쾌하다고 할 수 있다. 권 부지사와는 다른 상황인식의 결과다.

김 회장에 이어 농협경제 대표도 계열사 대표들과 함께 지난 15일 제주를 찾아 김 회장이 밝힌 지원책을 재확인했다.

농협은행도 금융부문에서 실질적인 대책들을 내놨다. 복구자금을 신규로 지원하고 기존 대출금은 상환을 연장해주기로 했다. 연말까지 이자납입도 유예했다.

농협중앙회 수뇌부가 제주 현장에서 바로 농가들에게 구체적인 지원 방안을 내놓을 수 있었던 것은 강덕재 본부장을 중심으로 한 제주본부의 치밀한 준비도 한 몫 했다는 후문이다.

시기적으로 대체파종이 가능한 작목과 종자 공급 여력을 파악해 중앙본부 차원에서 바로 대책이 나올 수 있도록 했다. 종자와 농약 공급이 신속하게 이뤄지는 것은 농우바이오와 농협케미컬 등 계열사의 제주사무소와 평소 유기적인 관계를 지속하고 있어서 가능했다.

사실 농협은 농업인들의 기대수준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는 지적을 받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태풍 등 재해나 특정 농산물의 처리난이 발생했을 때 ‘좌고우면(左顧右眄)’하는 모습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다보니 농협은 주인인 농업인들에게 어쩌면 애증(愛憎)의 대상이었는지 모른다.

이번 태풍 ‘차바’의 피해를 복구하는 과정에서 보여 준 농협의 역할은 앞으로 중요한 사례가 될 것이다. 현장에서 답을 찾고, 그걸 바로 실행하면서 달라지는 모습은 농협이 농업인들에게 신뢰를 회복하는 길이 먼 데 있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확인시켜 준 셈이다.
변화의 진정성은 말로 드러내는 것이 아니다.

 
 

신정익 기자  chejugod@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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