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감사를 지켜보며
국정감사를 지켜보며
  • 한국현 기자
  • 승인 2016.10.25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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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일보=한국현 기자] 국정감사가 사실상 끝났다. 올해 국정감사에서도 새누리당 ‘친박’ 의원들은 박근혜 대통령과 주변 사람들을 온몸으로 방어했다. 박 대통령과 권력을 향해 쓴소리하는 의원은 없없다. 그야말로 ‘철통 방어’였다. 야당 의원들은 ‘철통 방어’를 뚫지 못했다.

여야 가릴 것 없이 막말을 하거나 허위사실을 폭로해 눈총을 받은 의원들도 있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지난 18일 20대 국회 첫 국정감사를 ‘사상 최악‘의 국감으로 혹평하며 막말과 허위폭로로 물의를 일으킨 의원들의 사례를 들었다. 한선교ㆍ이은재ㆍ정운천 새누리당 의원과 어기구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다. 한선교 의원은 국정감사 중 유은혜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내가 그렇게 좋냐“는 성희롱성 발언을 해 국회 윤리위에 제소됐다. 이은재 의원은 서울시교육청의 MS오피스 구입과 관련, 조희연 교육감에게 일방적으로 고함을 치며 사퇴를 촉구해 입방아에 올랐다. 정운천 의원은 청년실업 대책을 거론하며 청년 10만 명을 위험 국가로 분류된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의 오지로 보내야 한다는 어의 없는 발언을 했다. 어기구 의원은 최동규 특허청장이 아들의 취업 청탁을 했다고 주장했지만 대상자는 최 청장의 아들이 아닌 동명이인으로 드러나 머쓱해 했다.

국정감사장에 출석한 일부 증인들도 ‘사상 최악’ 국감에 한몫을 했다. 증인들의 답변은 웃기다 못해 슬펐다. 단연 압권은 ‘코너링’.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의 아들이 ‘꽃보직’인 경찰청 운전병으로 배정받은 것과 관련,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우 모 상경의 당시 운전실력이 남달라서 뽑았다. 특히 코너링이 굉장히 좋았다”고 설명했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박종철 열사 때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경찰의)변명 이래 가장 희한한 변명이다. 이제 수없이 많은 의경 지원자들이 밤새 코너링을 연습하게 됐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야당 의원들이 미르ㆍK스포츠재단과 관련한 의혹을 묻자 “검찰에서 수사 중인 사안이라 답변 드리기가 어렵다”는 똑같은 대답만 20여 차례 되풀이하면서 의원들의 속을 뒤집어 놓았다.

이기동 한국학중앙연구원장은 의원의 질의가 진행되는 도중인데도 감사장을 떠나 화장실에 가서는 “새파랗게 젊은 것들한테 이런 수모를 당하고”라는 발언을 해 논란을 빚었다. 이 원장의 나이는 73세다. 특히 이 원장은 제주 4ㆍ3사건의 억울한 희생자인 제주도민을 폭도로 모는 망언을 해 물의를 일으켰다. 이 원장이 망언에 제주출신 오영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어떻게 억울하게 희생된 1만4000 제주도민을 폭도로 몰 수 있나. 공산 폭도라서 죽어도 좋단 말인가?”라며 거칠게 항의했다. 이어 유족들과 제주도민께 사과하라고 요구했고 이 원장은 버티다가 오 의원에게 사과했다. 그러나 오 의원은 “저한테 사과는 필요없다. 희생자와 제주도민 앞에 당장 사과하라”고 끈질기게 요구해 이 원장으로부터 사과를 받아냈다.

국정감사에서 보았듯이 권력자를 향해 할 말은 하는 여당 의원이 없는 현실을 지켜보면서 노무현 정부 시절 보건복지부장관을 지낸 고 김근태(1947∼2011) 의원이 새삼 떠오른다. 김 전 장관은 서울대 재학시절 학생운동을 주도했고 박정희ㆍ전두환ㆍ노태우 정권까지 재야 단체에서 활동하다 수배와 투옥을 반복했다. 1985년 9월엔 민청학련 사건으로 이근안 경감에게 모진 고문을 받았다. 고문 사실을 세상에 알리면서 1987년 로버트 케네디 인권상을 수상했다. 정치에 뛰어들어서는 3선 국회의원과 열린우리장 의장 등을 지냈다.

김 전 장관은 2004년 총선 당시 열린우리당이 공약으로 제시한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를 노무현 대통령이 반대하자 “계급장을 떼고 치열하게 논쟁하자”며 직격탄을 날렸다. 당시 여당 의원 중 대통령에 반기를 든 것은 그가 유일했다.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도전이었다. 그는 “선거 당시 내건 공약을 함부로 바꿀 수 없다. 특히 서민들의 삶과 직결된 민생문제는 더욱 그렇다”라며 대통령과 맞섰다. 2년 후 참여정부는 부동산정책 실패라는 거센 비판에 직면한다. 마침내 노 대통령은 분양원가 공개에 대해 “반대할 수 없게 됐다. 거역할 수 없는 흐름”이라며 물러섰다. 김 전 장관의 완승이었다.

대통령에게 흠(欠)이 있어도 쓴소리를 못하는 여당 의원들이 판치는 2016년 정치 시계, 살아있는 권력을 향해 “아닌 것은 아니다”라며 대통령과 맞장을 떴던 김근태, 그가 그립다.

 

 

 

 

 

 

한국현 기자  bomok@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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