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검(勤儉)과 화목(和睦)이 요구되는 시대
근검(勤儉)과 화목(和睦)이 요구되는 시대
  • 뉴제주일보
  • 승인 2016.10.24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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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바다. 하멜리서치코리아 대표 / 시인

[제주일보] 지난 주 필자는 경기도 남양주시에 자리잡은 다산 정약용의 고향 사당과 실학 박물관을 찾았다. 이 날은 6·25 피난길에서 없었진 하피첩이 206년만에 고향에 돌아온 것을 기념하는 고유제(告由祭)가 있었다.

하피첩이 고향에 돌아오기까지는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행사장 중심에 ‘하피첩의 귀향, 노을빛 치마에 새긴 다산 정약용의 가족 사랑’이란 제하로 쓴 글체에 주목할 수 있었던 것은 하피첩에 대해 다산이 남긴 이야기 때문이다. “내가 강진에서 귀양 살고 있는데 병든 아내가 다섯폭짜리 낡은 치마를 부쳐왔다. 시집올 때 입은 분홍빛 활옷이다. 붉은 빛은 이미 바래 옅은 황색이 되었다. 서본으로 쓰기에 맞춤했다.” 잘라서 작은 첩을 만들고, 손길 따라 훈계의 말을 지어 두 아들에게 준다. 훗날 글을 보고 감회를 일으켜 양친의 꽃다운 은택을 떠올린다면 뭉클한 느낌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으리. 이름하여 하피첩이다. 붉은 치마를 바꿔 말한 것이다. 이 하피첩은 문화재청 보물 1683-2호에 올라 있을 정도로 이 날의 감회를 말해 주고 있다. 하피첩은 다산이 강진 유배생활 10년에 접어들 때, 고향에 남아 있는 부인 홍씨가 시집 오는 날 입었던 붉은 치마 속에 생이별의 아픔들을 읽을 수 있었다. 너무도 감동스러운 순간이었다. 이 붉은 치마폭을 조각내어 두 아들과 딸에게 참을 수 없는 그리움들을 적어 놓았으니 말이다. 두 아들에게는 어머니를 잘 모시고 가계를 잘 지켜 나갈것을 당부하고 있다. 시집간 딸에게도 매화와 새를 그린 매화병제도(梅花倂題圖)를 그려서 보냈다. 유배생활에서 아내가 입었던 붉은 치마폭을 조각내어 하피첩을 만들어 화답한 다산의 애틋하고 절묘한 발상에 크게 감동을 받고 돌아왔다. 아내에게 바치는 최고의 사랑 고백과 맹서로 보였다. 두 사람만이 선택할 수 있는 극적인 선물이었으리라.

필자는 이 첩속에 새겨 보낸 그림과 사연에 주목한다. 다산은 두 아들에게 근면함과 검소한 생활을 주문하고 있다. “근면은 부를 생산하고, 검소는 가난을 구제한다. 근면과 검소 두 가지를 버리고는 시작할 곳이 없다. 집안을 다스리고 몸을 바르게 하는 방법으로 근(勤)과 검(儉) 두 글자를 버리고는 손 댈 곳이 없을 것이니 너희들은 반드시 가슴 깊이 새겨두도록 하라. 이 두 가지는 좋은 전답보다도 나아서 한 평생 쓰고도 남는다. 근(勤)은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않는 것이며, 검(儉)은 꾸밈 없이 소박한 것이다. 의복은 몸을 가리기 위해 취할 뿐이니, 가는 베로 만든 옷은 해어지기만 하면 세상없이 볼품없어지고 만다. 그러나 거친 베로 만든 옷은 비록 해어진다 해도 볼품없진 않다. 한 벌의 옷을 만들 때마다 모름지기 이후에도 계속해 입을 수 있느냐 여부를 생각해야 하는데 가는 베로 만들면 해어지고 말 뿐이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면 고운 베를 버리고 거친 베로 만들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라고 당부하고 있다.

또한 부모 형제뿐만 아니라 친족 간의 화목과 가문의 번성을 위해서 애써야 할 일들도 명시하고 있다. 경직의방(敬直義方)을 강조한 것이다. 즉 ‘윗어른에 대해 공경하는 마음과 바르고 정의로운 행동으로 살아가라’는 삶의 표상을 당부하고 있다. 비록 폐족이 됐지만 실망하지 말고 몸과 마음을 바르게 닦으라는 내용이다. 다산은 ‘영광과 치욕이 다르지 않고 곤궁함과 형통함은 오직 운명에 달려 있다’며 아들에게 위로를 하고 있다. “사대부는 조그만 재물이라도 탐해 양심을 저버려서는 안 되며 매사에 언행을 조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사람이 천지간에 살면서 귀히 여기는 것은 성실한 것이니 조금도 속임이 없어야 한다. 하늘을 속이는 것이 가장 나쁘고, 임금을 속이고 어버이를 속이는 데서부터 농부가 농부를 속이고 상인이 상인을 속이는 데 이르기까지 모두 죄악에 빠지는 것이다. 오직 하나 속일 게 있으니 바로 자기의 입이다.” 본분을 지키며 살아갈 것을 강조하고 있다.

하피첩 속에 여러 훈계들은 이 사회에 큰 가르침과 덕목이 아닐 수 없다. 오로지 근검과 정의로운 삶은 오늘날에 이르러서도 우리에게 크게 일깨워 주는 금과옥조(金科玉條)가 아니런가.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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