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같지 않은 기적
기적같지 않은 기적
  • 김종배 상임 논설고문
  • 승인 2016.10.23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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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장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아직도 왜, 도대체, 어째서라는 의문이 가시지 않는다.

우리도 저럴 수 있었어. 우리도 저래야만 됐었어.

그날 그 바다에서 우리는 ‘아주 짜릿한 수학여행을 보냈지’라며 웃으며 얘기할 수 있었는데…

 

영화 ‘허드슨 강의 기적’을 보고 나온 사람들의 후기이다. 러닝타임 1시간36분 내내 가슴이 먹먹하지 않은 사람이 있었을까. 2년전 세월호를 기억하고 있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죄책감에 부끄러웠다. 그러나 영화 ‘허드슨 강의 기적’은 영화의 제목처럼 기적을 보여주는 영화가 아니다. 그렇다고 억지로 눈물을 강요하거나 감동을 요구하는 영화도 아니다. 연출자는 절제된 감정을 통해 한 편의 팩트를 찍어 전달했고 관객은 다큐를 봤다.

 

허드슨 강의 기적

그러나 영화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당연히 해야 할 일들을 보여줬다.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이가 성실하면 그리고 힘을 합치면 기적을 충분히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줬을 뿐이다. 이 기적같은 실화에는 사건의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기 위해 소집된 미국의 연방교통안전위원회의 집요한 추적과 조사과정도 나왔다. 우리에겐 그같은 조사과정도 부러움의 대상이었지만 진실을 규명하려는 국가 전체의 노력이 안전에 대한 사회의식을 공유한다는 사실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304명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가 전남 진도군 병풍도 앞 시퍼런 바닷속에 침몰된지 2년이 지났으나 제대로운 진실조차 규명되지 않은 채 사고선박 인양을 미루고 있는 한국에선 그저 딴나라 같은 얘기들이다.

우리도 할 수 있었다. 국민들은 충분히 준비되고 있었다. 손을 내밀면 언제든지 일어설 수 있었고 다시 뛸 수 있었다. 국정을 운영하고 안전을 책임진 당국자의 의식만 제대로 박혀 있었던들 우리는 해낼 수 있었고 저래야만 됐었다. 무엇이 중헌디 그 아이들을 구하지 못했을까. 무엇이 중했으면 그냥 기다리라고 했을까.

지금도 숱한 의문들은 풀리지 않은 채 세월 속으로 묻혀가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세월호 얘기를 그만하자는 이들도 많다. 지겹다고 하고 경제가 중하다고 한다. 맞다. 우리는 먹고 사는 일이 급하다. 그러나 진실은 밝혀져야 한다. 그래야 우리와 우리 아이들이 안전하게 사는 사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기 5년전인 2009년 1월15일. 영하 6도의 날씨 속에 뉴욕 라과디아 공항을 떠난 US 에어웨이 항공기가 이륙하자마자 새 떼와 충돌, 허드슨강에 불시착했다. 승객 155명을 태운 여객기가 비상착수할 때까지 걸린 시간은 3분 28초. 탑승객 전원을 구조하는 데에 소요된 시간은 불과 24분이었다.

구조작업이 조금만 늦어도 모두가 위험할 수 있는 살얼음같은 상황에서 기장은 허드슨 강에 여객기를 비상착수시켰다. 사망자 한 명없이 구조될 수 있었던 것은 동료 승무원과 긴급구조에 나선 유람선 선장, 경찰 등이 각자 자기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 했기에 가능했다. 그것은 기적이 아니었다.

 

아직도 재난 후진국

세월호 참사가 있고난 뒤 한국 사회는 외형상 많이 달라졌다. 국가적 재난을 관리하는 총괄부서로서 장관급인 국민안전처가 만들어졌고, 60년 역사의 해경이 사라져 국민안전처 산하의 해양경비안전본부로 격하됐다.

충격요법을 쓴다고 국민 모두가 안전한 것은 아니다. 그후 일어난 대형 사고의 대부분이 인재였고, 사전에 충분히 감지할 수 있었던 사고인 점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재난후진국에 살고 있다. 에어웨이 기장 설리는 “세상이 나를 판단하는 것은 그날의 208초였다. 그러니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최선을 다 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설리의 말처럼 언제 어디서든 각자가 최선을 다 하는 것, 그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국민이 품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의문에 답할 수 있는 나라에서 살고 싶다.

[제주일보=김종배 기자]

김종배 상임 논설고문  jongbae10@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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