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생하지 않는 기업은 결코 세계적 기업 될 수 없어"
"공생하지 않는 기업은 결코 세계적 기업 될 수 없어"
  • 변경혜 기자
  • 승인 2016.10.18 20: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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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고경찬 벤텍스 대표이사…고학생으로 젊은 시절 보내고 세계최초 섬유기술 보유
고경찬 벤텍스 대표는 협력업체와 상생하면서 지구환경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글로벌 최강 섬유기술 기업’의 밑거름을 만들었다.

[제주일보=변경혜 기자] 소설같다. 성공한 사업가들이, 혹은 주목받는 사업가들에게 있을만한 그런 일들의 연속이다. 고경찬 벤텍스 대표(56)의 이야기다. 거기에 고 대표에겐 한가지가 더 들어있다.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 정글 같은 경쟁시대에 옆도 보고, 뒤도 돌아보았다는 것이다. 협력업체와 상생하지 않으면, 지구환경을 생각하지 않으면, 좀 더 거창하게 말해서 기업은 인류의 삶을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조력자’여야 한다는 그의 경영철학은 결국 ‘글로벌 최강 섬유기술기업’으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얼마 전 서울 잠실에 있는 벤텍스에서 그를 만났다.

 

고 대표가 설립한 벤텍스는 ‘1초만에’ 마르는 섬유 등 기능성 섬유원단으로 노스페이스, 나이키, 아디다스, K2, 휠라, 뉴발란스, 컬럼비아스포층 등 세계 유수의 기업에 수출하는 기업이다. 특허만 100여개를 보유할 정도로 업계에선 ‘기술덩어리’로 통한다. 앞으로 생활용품, 건축자재, 군수용품, 입는 화장품 출시까지 예정돼 있다.

1초만에 마르는 섬유도 신기했지만 오리털을 대신하는 인공발열 충전재 쏠라볼에 대해 먼저 묻자 그는 “덕다운 제품 한 벌을 만들기 위해서는 35마리 이상의 오리털이 필요합니다. 덕다운 생산공장은 많은 오리의 희생이 필요하고, 털도 빠지고 손빨래의 까다로움도 있습니다. 환경오염에 조류독감 우려까지 있지요. 그래서 화학섬유 소재로 스스로 열을 내는 충전재를 개발하게 된 거죠”라고 말했다.

‘동물사랑’이라는 슬로건을 담은 쏠라볼은 소재 자체가 가볍고 가격도 덕다운보다 저렴해 글로벌기업들로부터 수많은 러브콜을 받았다. 2010년의 일이다. 사람의 땀을 ‘열’로 전환시키거나 아토피 증상이나 가려움증을 예방할 수 있는 피부섬유 개발, 안쪽의 땀은 내보내고 외부의 습기는 침투하지 못하는 소재개발 등 최근 시장에 나오는 기능성 섬유 등은 모두 벤텍스를 통해 세상에 나왔다. 조만간 우리 군인들도 벤텍스의 기능성 동계운동복, 침낭, 발열조끼를 착용할 예정이라고 했다.

회사설립 과정을 묻자 고 대표가 잠시 뜸을 들였다. 한경면 고산리가 고향인 그는 고등학교 시절, 수학여행에 대한 기대조차 하기 어려울 정도였다고 했다.

“어렵게 서울에서 대학생활을 시작했죠. 학비가 없어서 1학년을 마치고 입대를 했습니다. 첫 휴가를 나왔는데, 갈 데가 없어 용산의 ‘용사의 집’에서 20일을 겨우 보냈지요. 당시만 해도 첫 휴가 복귀 때면 양손에 음식을 가득 싸가지고 가는 것이 관례였는데, 빈손으로 복귀했지요. 결국 고참에게 엄청 맞았던 기억이 납니다”

고학생의 처지가 그렇듯 고 대표는 온갖 일을 하며 대학생활을 이어갔다.

교재를 살 돈이 없어 도서관의 문을 열고 닫는 아르바이를 하면서 강의 교재를 미리 빌려 공부해야 했다. 덕분에 그의 졸업성적은 최상위였다.

“여름방학이 되면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부산으로 갔지요. 부전시장, 진시장, 자갈치시장을 돌며 양말장사, 김장사, 밤장사, 배추장사, 선풍기 커버장사 등을 했죠. 그러다 마지막에 했던 게 샤워기장사였어요. 500원에 사다가 1000원을 주고 팔았어요. 양쪽 어깨에 50개씩, 100개를 들면 50킬로가 넘었죠. ‘시원한 샤워기 왔어요’라고 외치면서, 소매상에게 팔았죠. 장사가 잘 될 때는 하루에 10만원도 벌었습니다. 당시 한학기 등록금이 40만원 정도였으니까, 나중에 부산시장이 포화상태가 돼서 마산, 울산, 창원에 가서 아파트를 돌며 물건을 팔기 시작했어요”

20대 초반의 대학생의 장사길이 평탄하지만은 않았다.

“하루는 울산석유화학단지, 지금은 SK로 바뀌었는데, 그땐 유공이었어요. 퇴근시간에 맞춰 나가면 샤워기 인기가 좋았습니다. 그런데 3일째 되던 날 수위한테 뺨을 맞았어요. 다른 데서 팔라고. 나중에 코오롱에 입사해 정전기방지분야에서 최고의 전문가로 인정받아 강의를 하러 다니는데, 하루는 공항까지 마중나와 거수경례를 하던 분이 바로 그 수위였지요. 뭉클 했습니다”

고 대표가 뺨을 맞았던 그해 또다른 일화도 있다. 수돗물로 주린 배를 채워가며 일했는데 장티푸스, 법정 1호 전염병에 걸려 격리수용당했고 샤워기를 팔며 모았던 돈도 다 날아갔다.

어려웠던 만큼 반전도 있었다고 했다.

“첫 회사, 코오롱에 입사했어요. 당시 회사에서 주력분야가 있었는데, 저는 제외됐죠. 담당과장이 ‘가난하게 자라서 도둑을 할 수도 있다’고 국내에선 아무도 하지 않는 정전기방지분야를 저에게 맡겼어요. 결국 3년만에 그 분야 국내시장 95%를 점유했죠. 그 과장님이 저의 스승이죠. 그땐, ‘아침이 왜 이렇게 늦게 올까? 빨리 일해야 하는데’하는 심정으로 살기도 했습니다”

그의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은 계속 이어졌다. 빚을 잔뜩 떠안고 주변에선 ‘미쳤다’는 소리를 들으며 1999년 현재의 벤텍스를 창업했고 열정과 근성은 성공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섬유는 제2의 피부’라는 신념으로 의학박사까지 취득한 고 대표의 그것이 어느정도인지 짐작케 했다.

하지만 그는 무엇보다 기업가들에게 필요한 것은 상생정신이라고 했다.

“단순히 기술만으론 성장할 수 없죠. 도전정신이다 뭐다 하지만, 기업가의 근저에 깔려 있어야 하는 것이 바로 상생의 정신입니다. 국내 섬유의류분야에서 왜 세계적 기업이 나오지 않느냐라고 질문하면 저는 상생의 전략없이 갑을관계, 지배구조 때문이라고 대답합니다“

그는 공생하지 않는 기업은 세계적 기업이 될 수 없다고 확언했다.

기업은 사회와 사회를 연결시키는 통로라는 결론을 얻었다는 고 대표는 ‘성공은 좋은차, 좋은 집이 아니’라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제주성장을 위한 조언을 부탁하자 “요즘 중국의 자본, 중국 관광객 이야기를 많이 한다. 제주인들만의 끈끈한 정신, 제주를 지켜온 얼이 있다. 그걸 지키며 자생력 있게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 제주도다워야 한다. 또 지역경제성장의 결과물이 반드시 도민에게 돌아가야 한다. 그게 원칙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고 대표는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자산이 건강한 몸과 열정으로 가득찬 DNA, 도전과 긍정의 마인드였다”며 “제주인들에게는 그런 자산이 내재돼 있어서 그 자산을 잘 활용할 수 있는 저력 또한 가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고경찬 벤텍스대표는

1960년생으로 한경면 고산리가 고향이다. 제주일고(22회)를 졸업, 성균관대에서 고학으로 섬유공학을 전공한 뒤 대학원에서 유기소재 공학박사에 이어 중앙대의과대학원에서 의학박사까지 취득했다. 1999년 첨단기능성 섬유화학 전문기업인 주식회사 벤텍스를 설립한 이래 세계 최초의 섬유기술을 다량 보유하고 있다. 지식경제부 산업원천기술개발사업 기술위원(2007년), 지식경제부 전문위원(2009년), 특허청 IP R&D 단장(2013년), 산자부 테크플러스포럼 한국대표SPEAKER(2014년), 이노비즈 글로벌포럼 한국대표 SPEAKER(2016년) 등 국내 산업기술분야에서 경계를 넘어 폭넓은 역할을 하고 있다. 국무총리상, 지식경제부장관상, 대통령상, 대한민국 기술대상 동탑산업훈장 등 다양한 수상경력을 갖고 있으며 현재 경영능력과 경영철학을 접목한 활발한 강연도 병행하고 있다.

변경혜 기자  bkh@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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