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과 선을 추구하는 사회
행복과 선을 추구하는 사회
  • 뉴제주일보
  • 승인 2016.10.18 19:5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봉오 수필가

[제주일보] 수천 년 동안 우리 민족은 도덕적 가치를 으뜸으로 숭상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물질문명의 노도(怒濤)에 밀려 윤리도덕은 들어설 자리를 잃고 황금만능의 배금사상만이 인간사회의 모든 가치를 압도하고 있는 현실에서 단 한군데도 성한 데가 없이 사회 곳곳에는 부패의 악취가 코를 찌르고 있다. 사회적 양심의 마지막 보루라 믿었던 법조(法曹)의 세 바퀴(三輪) 중 일부가 금품과 향응을 받고 치부에 몰두하고 있다는 비참한 현실에서 과연 우리는 어떻게 삶의 보람을 찾아 살아가야 할 것인가? 인생의 목적이 최종적으로 행복과 선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어떠한 삶이 행복 된 삶을 찾아가는 것인지 참으로 막막하다.

‘국어사전’은 행복에 대하여 ‘심신욕구가 충족되어 만족감을 느끼는 정신상태’라 정의하고 있다. 또한 세계적인 철학자들의 학설에 의하면 쾌락주의자들이 말하는 ‘감각상의 만족’을 위주로 하는 입장과 플라톤이 말하는 ‘최고의 선(善)을 희구하는 것’, 아리스토텔레스의 ‘전인격의 완성’, 쇼펜하우어처럼 ‘불쾌와 고통이 없는 상태’를 행복이라고 보는 학설도 있다. 국어사전의 정의나 쾌락주의자들의 견해처럼 심신욕구의 충족으로 만족하는 상태를 행복이라 한다면 인간의 무한한 욕심의 충족을 위해서는 플라톤의 최고의 선과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전인격의 완성을 훼손할 우려가 많고 사회질서와 도덕적 가치를 무너뜨리게 되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음을 떨쳐버릴 수 없다.

인간의 선천적 소유욕

우리 인간은 선천적으로 소유욕을 가지고 있지만 특히 물질의 욕구와 명예욕 그리고 이성에 대한 정복욕이 있다. 물질지상주의의 현대사회에서 특히 젊은 세대들은 더더욱 행복의 가치를 물질에만 의존하고 황금의 마력에 분별없이 몰입되어있다. 과연 방법을 가리지 않고 취득한 치부가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을까? 소유욕이 시작되면 끝이 없이 확대되어 결국 탐욕을 낳게 되고, 탐욕은 부정비리로 덕(德)의 씨를 말려버려 결국, 부정과 비리로 인해 사회질서와 인륜의 도덕가치는 황폐화하여 종래는 자신까지 파멸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때문에 성인(聖人) 공자(孔子)께서는 “눈앞에 이익을 보거든 먼저 그것을 취함이 의리에 합당한지를 생각하라(見利思義)”는 말로 청렴을 강조하였으며, 이에 더하여 “잘못은 할 수 있으나 잘못을 고치지 않는 것이 더 큰 잘못이다(過則勿憚改)”라고 역설하였던 것이다.

안분신무욕(安分身無辱)

행복은 탐욕스런 물질이나 과분한 명예 등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스토아학파의 논리처럼 욕심을 자제하고 지족하며 자신의 분수를 따라 지족(知足)하는 길이 아닐까 싶다. 안분신무욕(安分身無辱)하고 지기심자한(知機心自閑)이라 했다. 분수를 편안하게 하면 자신에게 욕됨이 없고 기틀을 알고 처신하면 마음이 스스로 부담 없이 한가롭다는 말이다. 자신이 확신하고 있는 능력의 범위 내에서 매사를 기획 추진한다면 세상사에 불가능할 것이 없다. 이것이 자신의 분수를 아는 처신이요 지족(知足)하는 일이다.

고대 중국의 사상가 노자(老子)는 만물은 도에 따라서 있는 그대로 있지만 인간은 자기 욕망 때문에 도에서 벗어나 불행을 초래한다 하였다. 무위(無爲)와 무욕(無慾)으로 무위자연(無爲自然)하고 유약겸하(柔弱謙下)하는 처신이 행복을 가져온다 하였다. 무위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도에 어긋나지 않게 하는 것을 말한다. 유위기교(有爲技巧), 억지로 술수를 부리게 되면 후환이 따르게 되는 게 결국은 세상의 이치인 것이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Tag
#N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