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 낙하산, 그리고 김영란법
공모, 낙하산, 그리고 김영란법
  • 김태형 기자
  • 승인 2016.10.12 19: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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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일보=김태형 기자] 국토교통부 산하 국가공기업인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이하 JDC)를 이끌어갈 수장을 선임하기 위한 재공모 과정이 다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도내·외에서 무려 19명의 인사가 대거 지원하면서 배경 등을 놓고 ‘설왕설래’로 이어지는가 하면 ‘내정설’로 파행을 빚었던 지난 1차 공모의 잘못된 전철을 되풀이할 우려마저 불거지고 있다.

돌아보면 지난 1차 공모에서는 도내 시민사회단체들까지 나서 “공정하고 객관적인 이사장 추천 심사를 진행하라”고 촉구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로 번지며 파국을 맞았다. 결과적으로 출범 15주년을 맞는 JDC는 차치하고 도민 입장에서도 부끄러운 오점으로 남게 된 결말이 아닐 수 없다.

그로부터 불과 3개월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재공모가 이뤄지고 있지만 이번에 달라지는 것은 과연 무엇인지 의문만 커지고 있다.

무려 19명의 인사가 자발적으로 국가공기업을 제대로 맡아 보겠다고 당당하게(?) 응모했다. 이들의 지원서에는 당연히 “난항에 빠진 휴양형주거단지 프로젝트 정상화와 영어교육도시 내 대학 유치 문제, 항공우주박물관 적자 해소, 제주 발전과 연계된 국가사업 발굴 등 산적한 JDC 현안들을 풀어낼 적임자”임을 스스로 자처하는 내용이 담겼을 것이다.

하지만 중차대한 역할을 맡겠다는 이들 ‘JDC 예비 해결사’의 포부와 달리 도민사회 일각에서는 이렇게 반문한다. “국가공기업을 맡겠다며 당당하게 응모한 사람들이 공개되지 않는 이유는 뭐라?…결국 또 낙하산이라?”

JDC는 개인 신상 문제 등을 이유로 도내 인사 11명과 도외 인사 8명이 지원했다는 내용만 공개했다. 여기에서 개인 신상 문제라면 ‘공기업 공모’ 취지를 되짚어봐야 한다.

공기업 공모는 관료 뿐만 아니라 민간기업·학계 전문가 등 각계각층 인사들에게 문호를 넓혀 최적의 적임자를 선출하기 위한 개방형 인사라 할 수 있다. ‘공개 모집’이라는 말 뜻 그대로 ‘정보 공개’라는 의미가 함축돼 있는 셈이다.

따지고 보면 국가공기업의 수장을 맡겠다는 인사들이 오히려 공개를 꺼려한다는 자체가 ‘우스운 넌센스’가 아닐 수 없다. “공기업의 존재 가치를 정치적 굴레에 예속시키는 그릇된 관행의 연속”이라는 따가운 질책과 비판들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응모자가 누군지 제대로 공개되지 않다 보니 갖가지 추측들과 함께 ‘낙하산 인사’로까지 귀결시키는 논란거리마저 적지 않게 나온다. 심지어 1차 공모에서 탈락했던 인사까지 다시 들먹거리면서 ‘내정설’ 재발을 우려하는 말까지 심심치 않게 들린다.

기관장을 둘러싼 낙하산 논란은 비단 JDC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 공공기관 곳곳에서 불거져온, 암묵적으로 용인돼온 고질적인 병폐이자 관행이다. 특히 이번 JDC 이사장 선임 향방은 앞으로 있을 굵직굵직한 공공기관장 인선 향방을 가늠할 수 있는 바로미터로도 볼 수 있어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이는 이번 재공모 역시 ‘내정설’ 또는 ‘낙하산’ 논란에 휩싸일 것으로 우려되는 또 다른 배경이기도 하다.

하지만 1차 공모 당시와 전혀 다른 변수가 있다. 이른바 ‘김영란법(부정청탁법)’이다. 시행 첫날부터 공직사회 전반에 파장을 불러온 김영란법의 영향력이 낙하산 인사로까지 번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권익위원회 성영훈 위원장은 지난 10일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김영란법 적용 대상에 있어 ‘낙하산 인사’도 포함될 수 있다는 발언을 했다. “일률적으로 판단하기 어렵지만 경우에 따라서 ‘낙하산 인사’가 부정청탁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다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성 위원장 발언의 핵심이다.

‘경우에 따라서’라는 단서가 붙긴 했지만 자격이 안되는 인사 추천과 공모 절차 위반 등을 통한 청탁 행위가 확인된다면 김영란법의 첫 케이스도 될 수도 있다는 내용으로, 관행적인 낙하산 인사에 제동을 거는 장치로 작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관행’과 ‘습성’이라는 게 쉽게 바꾸지 않겠지만 이번 JDC 이사장 재공모는 과정부터 결과까지 달라진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응모자와 심사 과정을 적극적으로 공개하고 후보자 역시 정정당당하게 평가받을 때 JDC 위상이 새롭게 서고, 제주의 자존심도 되찾을 수 있다. 이는 어쩌면 김영란법 시대에 함께 상생하는 길이기도 하다.

김태형 기자  sumbad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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