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망진창 속의 보석-애정
엉망진창 속의 보석-애정
  • 뉴제주일보
  • 승인 2016.10.04 19: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은숙 서울가정법원 상담위원/숙명여대·가천대 외래교수

[제주일보] 아버지를 폭력 가해자로 신고했던 해돌이는 상담에 의뢰되어서도 상담에 나타나지 않았다. 고등학교 2학년. 아버지와 오랜 갈등이 있던 터라 함께 지내지 않고 근처 원룸에서 혼자 지낸다고 하였다. 간간이 엄마가 반찬을 챙겨 갈 때, 혹은 용돈이 필요할 때 문자 메시지를 주고 받는 정도의 연결이 있을 뿐이라고 했다. 혼자 지내는데 학교는 빠진 적이 없다고 했다. 상담과 교육을 받으면서 부모 역할의 부족함을 깨달은 부모가 해돌이의 마음을 돌려보고자 어떻게든 상담에 참여시키고자 하면서 해돌이와 나의 만남은 시작되었다.

전화통화를 하고 약속 시간을 잡을 때는 달려올 듯이 이야기했다. 하지만 약속시간이 10여 분 지나도 도착하지 않아 전화를 해보면 전화기가 꺼져있다는 응답이 있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부모의 간곡한 설득 끝에 해돌이는 상담실 문을 열었다.

해돌이가 어릴 때부터 해돌이 아버지는 술을 자주 마셨다. 그 끝은 항상 어머니에게 가해지는 폭력이었다. 그 폭력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해돌이 아버지가 술을 마시지 않을 때 경제적인 어려움을 호소하는 어머니의 잔소리가 있었다. 잔소리에 대한 대처를 하지 못한 해돌이 아버지는 조금 후 술을 마신다. 그리곤 폭력이 이어지고…. 부모, 서로 갈등의 순환을 겪고 있을 때 해돌이는 동생들을 자주 때렸다. 부모 자신들의 싸움보다 자녀들의 싸움 소리가 커질 때 해돌이 부모는 “그런 걸로 싸우냐?” 며 별스럽지 않은 듯 그냥 넘어갔다. 그러다 소리가 더 커지면 그저 윽박지르거나 아이들을 때려서 부모가 직접 그 상황을 그저 조용하게만 만들었다.

이때 해소되지 못한 아이들의 분노 에너지는 쌓이기 마련이다.

해돌이를 상담장에서 만나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화난 마음을 공감해 주는 것이었다. 마음 속에 있는 분노를 소리내어 이야기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부모만남 시간을 병행하면서 실질적인 양육 코칭의 시간을 가졌다.

화난 마음을 공감해 주지만 자녀에게 그래도 때리는 것은 안 된다는 강력한 경고도 잊어서는 안된다. “화난 마음을 말로 하는 것은 괜찮아. 하지만 진짜 때리는 것은 안된다” 라고 말하며 말은 풀어주고 행동은 막아야 한다. 그래야 자녀의 분노가 가라앉는다.

이런 상황을 자주 경험하게 해주는 데도 자기 주장 기술이 약한 사람들이 있다. 해돌이 아빠도 그랬다. 이런 경우 보통 지나치게 자신의 주장을 강하게 펼치거나 떼를 쓰는 식으로 과장된 표현을 많이 한다.

사실, 그 내면은 어떤 말로 실마리를 풀어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저 “ 잘해봐라”라고 이야기 해주어도 어떻게 하는 것이 잘 하는 것인지 모르는 것이다. 구체적인 방법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손쉽게 할 수 있는 방법으로는 자주 경험하게 되는 상황을 몇 가지로 나누어 대처하는 방법을 대본에 써서 준비한다. 그리고 부부, 부모와 자녀 서로 녹음을 하면서 자기 목소리를 반복해서 들어본다. 한 두 번의 연습으로 되지 않는다. 하지만 반복하다보면 어느 새 실제 생활에서 올바른 방법을 사용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 연습의 과정에서 재촉해서는 안된다. 천천히 기다려주고 성공의 경험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해돌이 아버지와 어머니도 어린 시절 폭력적인 부모 밑에서 성장했고, 그 과정에서 예기치 않은 부모의 죽음도 겪은 터였다. 부모 양육 코칭 시간에 우선 부모 자신이 힘들더라도 먼저 자신보다 어리고 약한 자녀의 마음을 먼저 읽어주고 느끼는 것이 “부모의 가장 으뜸인 역할”이라는 것을 안내했다.

그리고 부모 내면에 자꾸 돌아보고 위로해 주어야 할 어린아이가 있음을 인정하도록 하였다. 상처 받은 시절을 돌아보며 그때 무척 힘들었겠다고 스스로를 안아주는 시간을 갖도록 하였다. 부모 자신이 이러한 과정을 거치다보면 아이를 향한 부정적인 언행은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줄어든다. 쉽지 않은 과정이지만 가능한 일이다.

엉망진창이 되었을 때 진심으로 믿어주고 따뜻하게 손 잡아 주는 이가 한 명만 있어도 그 애정은 살아갈 이유가 된다. 그 존재, 부모가 먼저 되자.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Tag
#N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