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4·3 화해·상생…특별법 개정·국가 추념일 지정
[창간특집]4·3 화해·상생…특별법 개정·국가 추념일 지정
  • 현봉철 기자
  • 승인 2016.09.29 18: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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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일보로 본 제주현대사<2>

[제주일보=현봉철 기자] ▲1990년대-제주공항서 대한항공 여객기 사고

1992년 5월 20일 제주대 맥킨리 원정대가 제주대학교 개교 40주년을 맞아 북미 최고봉인 맥킨리 정복에 나섰다가 악천후를 만나 원정대원 6명 중 3명이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1992년 8월 23일 제주시내 한 고교생이 납치돼 살인을 당하는 끔직한 사건이 발생했다.

범인은 납치된 고교생 아버지 회사의 임시 고용됐던 서모씨(당시 32세)로 노름빚에 쪼들려 끔직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나 제주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당시 경찰은 연인원 1만여 명을 동원해 수사를 벌였고 대대적인 피해 고교생 찾기 운동과 특별반상회가 열렸다.

1994년 8월 10일 오전 11시20분쯤 승객 152명과 승무원 8명을 태운 대한항공 여객기가 제주국제공항에 착륙을 시도하다 활주로를 이탈, 폭발하면서 전소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다행히 탑승객 전원은 인근 전경부대의 도움으로 모두 탈출에 성공해 인명피해는 없었다.

1996년 1월 8일 선원 8명을 태우고 고기잡이에 나섰던 성산포 선적 대영호(39t)가 갑자기 통신이 두절돼 실종됐다.

같은 달 28일 북한 평양방송은 대영호가 제주도 성산항을 떠난 후 북상, 동해의 김책항에 도착했다고 공식 발표함으로써 월북사실이 알려졌다.

1999년 말 제정된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2000년 1월 공포와 함께 특별법 후속사업이 본격 시행됐다.

특히 같은 해 6월 8일 4·3특별법 시행조례가 공포됨과 동시에 진상규명의 첫 걸음인 4·3희생자 신고접수가 이뤄져 제주인 가슴의 응어리로 감춰졌던 4·3이 화해와 상생을 위한 제주 미래의 발전 토대로 거듭나는 첫 단추를 꿰게 된다.

▲2000년대-최악의 물난리…보육교사 살인사건

2003년 10월 31일 제주를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은 제주4·3사건과 관련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으로서 과거 국가권력의 잘못에 대해 도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정부차원의 공식사과를 표명했다.

국정 책임자의 이 같은 사과로 한국 근대사의 최대 비극 중 하나인 제주 4·3사건의 매듭을 반 세기만에 풀 수 있는 전기가 마련됐다.

2004년 1월 15일 치러진 제11대 제주도교육감 선거는 ‘돈 선거’로 얼룩지면서 교육감 당선자를 포함해 후보자 4명이 전원 구속되고 불법선거에 관련된 학교운영위원 등 43명이 구속되고 77명이 불구속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져 제주 교육계의 뼈를 깎는 반성이 요구되기도 했다.

2007년 3월 16일 학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던 초등생이 실종됐다 39일만에 싸늘한 주검으로 되돌아왔다.

범인은 숨진 초등생의 이웃주민이었고, 시신이 발견된 곳은 집과 불과 150여 m 밖에 떨어지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 제주사회뿐 아니라 전국에 큰 충격을 줬다.

경찰은 실종아동을 공개 수배하는 ‘앰버 경보(AMBER Alert)’를 최초로 전국에 내렸으며, 이후 아동 납치 등 반인륜적 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기로 했다.

2007년 9월 16일 제주를 강타한 나리 태풍은 ‘사상 최악의 물난리’로 기록될 만큼 제주지역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1959년 사라호 태풍이 제주를 덮친지 꼭 48년이 되는 이날 시간당 100~150㎜의 폭우를 쏟아부으며 대부분의 지역에서 기상관측 이래 1일 최대 강수량을 기록했다. 1959년 사라호 태풍의 1일 최대 강수량 267.5㎜의 2배가 넘는 수준이었다.

태풍 피해 집계 결과 제주지역 인명피해는 사망 13명, 부상 1명이었으며, 재산피해는 1307억4600만원에 이르렀다.

정부는 제주도 전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으며, 도민은 물론 2000여 명의 다른 지역 군 장병이 제주를 찾아 피해 복구에 나섰다.

2009년 2월 8일 제주시 애월읍에 있는 오름 근처 농로에서 실종됐던 어린이집 보육교사 이모씨(27·여)가 실종 8일 만에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이씨가 실종됐던 곳에서 시신이 발견된 곳까지 이동경로로 예상되는 곳의 폐쇄회로(CCTV) 등을 분석해 용의자들을 압축했으나 직접적인 증거를 찾지 못해 결국 미제사건으로 남았다.

▲2010년대-재선충병과 전쟁…세월호 참사

2011년 2월 23일 오후 복통과 고열로 실신한 응급환자를 이송하던 해경 제주항공대 소속 AW-139 헬기가 제주시 한림읍 인근 해상에서 추락, 기장과 부기장, 정비사, 응급환자 등 5명이 숨졌다.

같은 해 7월 28일에는 인천공항을 출발해 상하이로 비행하던 아시아나 화물기에 화재가 발생, 제주공항으로 오다가 제주공항 서쪽 130㎞ 해상에 추락해 승무원 2명이 숨지기도 했다.

2012년 7월 12일 전국에 ‘걷기 열풍’을 일으킨 제주올레 1코스인 서귀포시 성산읍에서 40대 여성 여행객이 실종됐다. 8일 뒤인 7월 20일 제주시 구좌읍 만장굴 입구 버스정류장 인근 풀숲에서 실종된 여성이 운동화와 잘린 오른쪽 손이 발견되면서 전국을 경악케 했다.

결국 경찰에 검거된 범인은 사건이 벌어진 현장 인근에 살던 주민 강모씨(47)로 여성을 성폭행하려다가 반항하자 목 졸라 살해하고 시신 일부를 훼손, 유기한 것으로 드러났다.

2013년은 소나무 재선충병과의 전쟁이었다. 2004년 제주시 오라동에서 처음 발생한 소나무 재선충병은 2013년 가뭄과 고온 현상 등으로 본격적으로 확산됐다. 제주도는 1·2·3차 방제작업을 통해 고사목 154만3000그루를 제거하고 1300억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했지만 아직도 재선충병 원천 차단에 한계를 보이고 있다.

2014년 3월 ‘제주4·3희생자 추념일’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됐다. 국가기념일 지정 이후 4월 3일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에서 제66주년 4·3 희생자 추념식이 유족과 도민, 각계 인사 등 1만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엄숙하게 봉행됐다.

기념일 지정은 4·3을 금기의 역사에서 공식화된 역사로 전환하는 의미를 갖고 있으며, 이는 4·3의 완전한 해결을 위한 시작이다.

2014년 4월 16일 인천에서 제주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진도 인근 해상에서 침몰하면서 승객 등 295명이 숨지고, 9명이 실종됐다. 대한민국의 ‘안전 불감증’을 여실히 드러낸 이번 참사에서는 꽃다운 청춘들이 ‘가만 있으라’는 어른들의 말만 믿고 있다가 참변을 당했다.

그날의 진실을 밝히기 위한 진상위원회가 구성됐지만 정치권 등의 첨예한 갈등으로 진상 규명의 길을 더디기만 한 상태다.

2014년 8월 13일 김수창 제주지검장이 제주시 이도2동의 한 음식점 앞에서 음란행위를 한 혐의로 경찰에 붙잡혀 충격을 줬다.

2015년 9월 5일 오후 추자도 신양항을 출항해 전남 해남 남성항으로 가던 낚시어선 돌고래호가 전복돼 탑승자 21명 가운데 3명만 구조되고 15명은 사망, 3명은 실종됐다.

현봉철 기자 hbc@jejuilbo.net

사진 출처=제주도·제주시·연합뉴스

현봉철 기자  hbc@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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